[이 아침의 시] 문지방 / 김금용

서대선 | 기사입력 2021/11/08 [09:20]

[이 아침의 시] 문지방 / 김금용

서대선 | 입력 : 2021/11/08 [09:20]

문지방

 

문을 열어야 그에게 갈 수 있다

문을 열어야 그에게 말 걸 수 있다

문은 등 뒤에서 강물로 넘치다가도

문은 번번이 등 뒤에서 수갑을 채운다

문 앞에 선다

문고릴 잡고 선 시간 속으로

공기 벽이 견고하게 잠기는 걸 듣는다

침묵이 터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

제 홀로 채워지는 걸 듣는다

문지방 하나 건너가면 될 걸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불면증에 시달려 보지 못한 문이 낄낄거린다

꽃피기를 기다려 보지 못한 문이 혀를 찬다  

 

# 안 넘는 걸까? 못 넘는 걸까? 넘으라고 있는 “문지방”이건만, 누군가에게는 “강물로 넘쳐”넘는 것이 겁나고, 누군가에게는 “문지방” 앞에만 서면 “등 뒤에서 수갑을 채우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는 곳일 수 있다. 

 

Seligman(1991)은 무기력(無氣力)학습 실험에서, 재갈을 물리고 가죽끈에 묶인 채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충격을 경험하게 된 실험용 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충격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었을 때, 깊은 좌절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 개를 묶었던 줄을 풀어놓고, 재갈도 벗겨주었지만, 탈출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버리는 무기력(Lethargy)을 학습하게 된다고 하였다.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이 스스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통스런 경험을 반복해서 당하게 되면, 무기력해지고 좌절하여 낙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무기력을 학습한 사람 중에는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외적요인 때문이라고 인식하게 되어 현실에서 “문지방”을 넘어 새로운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어도 “문지방” 앞에만 서면, “공기 벽이 견고하게 잠기는 걸 듣”거나 보이지 않는 강력한 고압 전류가 흐르고 있다고 느낀다. 살아가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넘어서기 망설이게 되는 저마다의 “문지방(Threshold)”을 갖게 될 수 있다. 가장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과 극심한 불통의 벽을 느끼게 되면 어느새 “문지방”이 만들어 지고, “침묵이 터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제 홀로 채워지는 걸” 씁쓸하게 견디기도 해야 한다. 또는 타인에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당하거나 지속적인 폭력과 공포분위기 속에서 바깥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면,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다닐 수 있는 “문지방”이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곳이 되기도 한다.

 

“문지방 하나 건너가면 될 걸/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수도 없이 반복된 무기력 학습 속에 자신의 내면 깊숙하게 묻혀버린 ‘자유의 의지’를 꺼내어 쓰지 못한 채, “문지방” 너머의 세상은 절대로 자신이 갈 수 없는 네버랜드(Neverland)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의지(freedom of will)’를 갖은 존재라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