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불화 / 한영옥

서대선 | 기사입력 2024/03/18 [09:42]

[이 아침의 시] 불화 / 한영옥

서대선 | 입력 : 2024/03/18 [09:42]

불화

 

불같은

불화가 남았으나

나쁘지 않다

 

문제를 질질 끌다

벌게진 언어들

고쳐 쓸만하다

 

설컹거리지 않는

협상이 있을까

 

가랑비 옷 적시다

얼굴도 적시면서

모락모락 흰 김 오를 때까지

 

잘 돌보면 되는 거

맞잡고 불화를

잘 키워내면 되는 거. 

 

# ‘글쎄, 소 모가지나 어울릴 걸 목걸이라고 내놓더라니까’. 청국장을 맛나게 끓이던 집에서 점심을 먹으려 기다리고 있었는데, 낡은 점퍼를 입은 아저씨가 들어와 쭈뼛거리더니 아주머니에게 얼마의 돈을 받아 들고는 황급히 나갔다. 장모인 청국장집 할머니는 사위의 뒷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식사 중인 서넛 동네 사람 들으란 듯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가끔 드라이브하던 시골 마을에서 만난 조그만 청국장집은 소박하지만 맛있었다. 반찬도 어머니 집밥처럼 멸치볶음, 콩자반, 시절에 맞는 나물과 콩나물, 김치 정도였지만 맛깔스러워 수년째 들리곤 했다. “불같은/불화가 남은” 사연은 자신의 딸에게 도통 선물이라고는 할 줄 모르던 사위에게 아내 생일을 챙기라고 했더니, 오십 돈이나 되는 금목걸이를 선물했다는 것이다. 사위의 선물 속에 억하심정이 들었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손님들 앞에서 “벌게진 언어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세상은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는 로벨리(Carlo Rovelli)의 전언에 의하면, 시간은 독립적이지 않고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고 하였다. 시간은 공간과 얽혀 있으며, 공간은 물질과 한 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라는 공간에서 물질의 형태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관계 속에 얽혀 있을 수밖에 없다. 청국장집 아저씨가 장모와 “불화”하였던 모습 속에는 아마도 식당이라는 공간 속에서 음식을 만들며 공고히 결탁해온 아내와 장모 사이의 체계 속에서, 주변인으로 보조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기에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아저씨의 “설컹거리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장모의 속내가 식당 손님 앞에서 터져 나왔던 것이리라. 

 

일반적으로 사람은 서로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상대방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에 서기가 어려워진다. 상대와 “불화”하면, 상대가 말하는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태도 때문에 자기 방어기제(防禦機制)가 작동하게 된다. “불화”로 상처받지 않으려면, 싸우고(Fight), 도피하고(Flight), 가장하고(Fake), 접어두는(Fold), ‘4F’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싸우기의 내적 동기는 상대를 협박해 자신이 좀 더 사랑받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협박은 관계에 대한 신뢰만 악화시킬 뿐이다. 둘째, 정면돌파를 피하려 현실에서 도피해 어떤 화제나 대화도 회피한 채 납작 엎드려있는 경우다.

 

이런 도피 행동은 자신의 잘못이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행동으로 비치기에 “가랑비에 옷 적시다/얼굴도 적시면서/모락모락 흰 김 오를 때까지” 상대방을 더욱 화나게 하고 상처를 준다. 셋째, 정면 대결이 가져올 상처가 두려워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만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원망이 늘어난다. 넷째, 시비를 따지는 것이 귀찮아 양보하는 행동을 보이면, 애정이 깊어 상대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불화”하는 이유는 상대방으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랑은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여자의 경우는 목표지향적이기보다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에 여자의 기분을 무시한 채, ‘만능 수리공’이 되어 오로지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하려는 태도를 보여주기보다는 함께 공감해주고 들어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남자는 가슴 속 가장 깊숙한 곳에 자기가 훌륭하지도 못하고 무능력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숨기고 있는 경우, 그가 청하지도 않은 충고와 비판을 가해 그의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즉, 남자는 인정받아야 행복하고 여자는 사랑받아야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만약 “불화”가 지속 되어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서로 “맞잡고 불화를” “잘 돌보기” 위해, 감정에 경도되기 쉬운 말 대신 편지쓰기 기법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자신의 가슴 속에 차올랐던 분노, 슬픔, 두려움, 후회, 사랑의 감정을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다. 그리곤 상대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을 직접 답장으로 써 본다. 서로의 편지와 답장을 함께 펼쳐 놓고 상대와 대화를 나눠본다. “설컹거리지 않는/ 협상이 있을까”마는 대화를 통해, 상대의 어린 시절 가족과의 관계에서 무의식 속에 억압된 트라우마를 이해해야 한다. 또한 현실에서 겪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한 “불화”의 문제점을 객관화하여, 자신이 원하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을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는 것이다. ‘모든 아담의 후예는 한 몸을 형성하며/동일한 존재다.//시간이 고통으로 그 몸의 일부를/괴롭게 할 때//다른 부분들도 고통스러워한다.//그대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던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Saʾdi, 1209-1291)의 전언을 가슴속에 새겨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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