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생활언어학자 / 차주일

서대선 | 기사입력 2023/11/06 [10:21]

[이 아침의 시] 생활언어학자 / 차주일

서대선 | 입력 : 2023/11/06 [10:21]

생활언어학자

 

길거리 한데에 생활사전 한 권 널브러져 있네.

맞춤법 어긋난 자세들이 펼쳐져 있네.

옻나무를 옷나무로

햇볕에 말린을 말인으로

고춧잎은 고추입으로

바람이 읽기 좋은 자세로 기울어져 있네.

누가 저리 당당하게 적어 놓으셨을까.

좌판 옆에 언어학자 한 분 잠들어 계시네.

맞춤법 어긋난 자세가 참 편안하시네.

어린 새끼에게 맞춤법 이르듯

편한 자세에 끼어들어 바른자세 곧추어 볼까.

공책 삼아 내 그림자로 얼굴 덮어드리는데

그가 이미 고쳐 쓰고 눌러 쓴 주름

풀이말들로 가득하시네.

어두워야 잘 보이는 사전이 있네.

쉼표와 마침표가 관절인 손으로 눈 비비시네.

찌그러진 눈에서 태어나는 자세를 보네.

더듬더듬 산나물 담으시네.

삭풍에 맞서던 불손한 나물들이

노파의 손안에서 공손하시네.

몸으로 자모음을 깨친 수도자 앞에,

제 몸을 베껴 쓰는 생활언어학자 앞에,

감히 무얼 이르겠는가. 죄송히

노구의 상형문자를 암송하며 되돌아오네.

삐끗삐끗, 바른걸음이 불편해지네.

 

# ‘많으면 데쳐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된장찌개에 넣어도 돼’. “쉼표와 마침표가 관절인 손으로” 양푼 가득 담겼던 호박잎을 비닐봉지 속으로 쓸어 담아 주시며, 먹고 남는 호박잎 보관 방법까지 일러 주신다. 소문난 설렁탕집 마당 한쪽에 좌판을 차린 할머니는 호박잎을 ‘호박입’으로 동부팥을 ‘동부팓’으로 잘라낸 종이박스 조각에 삐뚤빼뚤 적어두고, 늦가을 아침 설렁탕 집 마당으로 들어서는 자동차들이 먼지 바람 휙휙 일으키는 마당 한 귀퉁이에서 쪽파를 다듬고 계셨다.

 

호박잎 쌈을 좋아하기에 반갑게 할머니 좌판으로 다가갔다. 끝물 호박 이파리들은 조금 거칠고 달걀만한 크기의 호박도 매달고 있었는데, 대여섯 끼는 족히 먹을 정도의 양이 삼천 원이란다. 둘이서 먹기엔 양이 많았지만, 양푼 안에 있는 것을 모두 사겠다고 했더니, 혹여 남겨 버릴까 봐 저장방법도 일러주셨다. 좌판 한쪽에 곱게 다듬어 놓은 쪽파도 샀다. 쪽파도 살짝 데쳐 돌돌 말아 초고추장과 함께 상위에 올리고 호박잎 쌈도 곁들이면, 가슴 따스해지는 밥상이 되리라.    

 

“맞춤법은 어긋나”도 좌판에 “당당하게 적어 놓은” 글자들을 바라보며, 할머니께서 문맹이 아니어서 좋았다. 문맹(文盲, illteracy)은 배우지 못하여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상태,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로 순 우리 말로는 까막눈이라 한다. 광복 직후 남한의 문맹률은 12세 이상 전체 인구의 약 78%(7,980,922명)로 높았었다. 1945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문맹 퇴치를 주요과제로 삼아 국문강습소를 설치 운영하였으며, 공민학교를 설치하여 학령기를 초과하여 초등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아동, 청소년 및 성인들을 위한 교육정책도 펼쳤다.

 

우리나라에서 문맹인 경우는 대부분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며, 특히 할머니들이 교육의 기회를 놓친 경우가 많았다. 문맹으로 인한 사고 중에는 농약 같은 독극물 중 가루 형의 경우 밀가루로 착각해 요리에 넣었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액체로 된 경우 드링크 종류로 착각하여 마시는 사고도 발생하곤 했다. 최근 각 지자체나 봉사단체에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글을 깨우쳐 드리고, 시도 써서 발표하는 행사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최근 국제현대무용제( 2023 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에서 세계 정상의 무용팀들과 국내 대표적 무용단들의 축제가 열렸었는데, 그 축제의 피날레(finale) 작품이 ‘홀소리 닿소리’였다. 한글을 무용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국내외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탄성을 이끌어냈다. 무용수들이 몸으로 만들어 내는 “자음과 모음”을 보며 한글은 이미 우리 국민의 몸동작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으며, 일상 속에 “생활 언어”로 내장되어 있어 누구라도 쉽고 편하게 익히고 쓸 수 있는 아름다운 글자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맹을 탈출하여 살아가는데 필요한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할머니께서 마치 어머니의 구음을 따라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듯 구어체로 쓰인 글자들로 농사지은 먹걸이의 이름을 써 놓은 것을 본 시인은 표준어가 아닌 것을 탓하는 것 자체가 죄송하고, 하찮은 일임을 전언한다. “삭풍에 맞서던 불손한 나물들이/노파의 손안에서 공손”해지는, “제 몸을 베껴 쓰는 생활언어학자 앞에” 놓인 먹거리들을 보며  마음도 몸도 낮아진다. 너무도 소박한 값으로 건네주시는 농산물을 두 손으로 받으며, 할머니의 노동과 땀과 거친 손마디와 “노구의 상형문자”를 향해 공손히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