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봄밤 / 김수영

서대선 | 기사입력 2024/02/19 [09:48]

이 아침의 시 봄밤 / 김수영

서대선 | 입력 : 2024/02/19 [09:48]

이 아침의 시/김수영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

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

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 ”마음에 서둘지 말라“는 아버지의 조언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콩쿠르(concours)를 준비하던 아들은 ‘프로메테우스’를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먼저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서적을 구해 정독하더니, 프로메테우스에 관한 시를 찾아 읽고, 영화도 참조하고 작품 속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를 받쳐줄 음악을 섭렵했다. 

 

아들에게 푸로메테우스가 되어 그에게 닥쳤던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때가 올 때까지,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고 자신의 작품 속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라고 했다. 서너 달이 지난 후, 아들은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던 조지아의 코카서스 산맥 중 카즈베기(Kazbegi)산에 대한 감정이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모도 가보지 못했던 해발 5,047m의 웅장한 산, 약 4000m 높이에 솟아있던 바위에 홀로 묶여, 새로운 간이 재생되는 밤을 지낼 때의 심정을 어떻게 느끼게 해줄지 머리를 맞대었다. 

 

아들의 고등학교 시절, 지리산 종주(縱走) 체험을 떠올려 보도록 했다. 고등학교를 입학했던 첫 여름방학, 아들은 아버지 제자들이 종주하는 지리산 등반에 참여했다. 척추 통증의 재발로 지리산 초입까지만 동행했던 아버지의 격려를 가슴에 품고, 아들은 선배 형들과 함께 지리산을 올랐다. 

 

장터목 산장에서 하룻밤을 묶었던 아들은 깊은 밤 홀로 산장 밖으로 나와 어둠에 쌓인 산맥과 능선들의 역사를 느끼고, 고개를 들어 광막한 우주를 바라보며 난생처음 지리산과 우주 속을 유영하는 실존적 체험을 했다고 했다. 지리산을 종주한 후, 아들은 심리적 이유기(離乳期)를 벗어났으며 훨씬 깊어지고 지구력도, 의지력도 자기 절제력도 강화되었다. 깊은 밤 지리산 속에서 홀로 느꼈던 감정을 프로메테우스에 이입해보았던 아들은 작품구성에 몰입했고 콩쿠르는 훌륭하게 마무리 되었다.

 

탈무드(Talmud) 중 피르케이 아보트 편을 보면 ‘누가 강한가?’라고 묻고, ‘자기 욕망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답한다. 우리 삶에서 “절제(discipline)”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어떤 것에 매몰되지 않고 자기 의지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이 바로 절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절제력”을 강화 시키려면 우선 자기 의지력(意志力)을 훈련 시켜야 한다. 의지력은 근육과 같다. 

 

의지력은 뇌가 나타내는 하나의 반응으로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대뇌는 우리 육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려면, 마치 운동을 통해 근육을 단련시키듯, 일정기간 동안 완전히 체화될 때까지 반복해야 한다. 의지력을 연구한 바우마이스터 교수는 아이들에게 절제력을 키워주려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규칙을 제시하고 아이가 그 규칙을 따르도록 훈련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의지력은 근육처럼 총량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의지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의지력을 잘 관리하려면 영양이 잘 조화된 식사, 적절한 수면, 체력 향상, 매일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 갖기와 일기 쓰기 등의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의지력은 일단 형성되면 어느 한 분야에서 “자기 절제력(self-discipline)”이 강해지고, ’성장형 마음가짐(growth mindset)’이 형성되어 삶의 전 분야에 의지력이 발휘되는 효과가 있다. 

 

일상 속에서 자기 ”절제력“을 향상 시키려면, 첫째, 만족 지연을 높이는 습관을 들인다. 예컨대, 일차적인 욕구를 참아내고 더 가치 있고 수준 높은 과제를 먼저 달성한 다음, 그 보상으로 일차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둘째, 끈기 향상을 돕는 놀이와 악기를 익히면 좋다. 예컨대, 퍼즐 맞추기 놀이, 블럭 쌓기,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를 선택하여 꾸준한 레슨을 받는 것도 좋다. 셋째, 강도 높은 육체적 활동을 함께 즐기는 방법으로 좋아하는 스포츠나 등산, 트래킹도 의지력 향상과 더불어 자기 절제력을 강화시킨다.  

 

만약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고 시인은 전언한다. 남들은 목표를 향해서 마구 달려가는데, 나만 홀로 모든 문이 닫힌 곳에 있다고 느낀다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고 아직은 “눈을 뜨지 않은 땅 속의 벌레같”은 자세로 묵묵히 고전(古典) 속에서 길을 찾는 “봄밤”을 건너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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