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대화
모두가 입을 가리니
비로소
눈이 보이네.
# ‘세 치의 혀가 백만 명의 군대보다 더 강하다’. 뛰어난 말재주를 ‘삼촌지설’ 또는 ‘삼촌설(三寸舌)’이라 하였는데,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평원군열전(平原君列傳)에서 유래한다. 중국 진나라가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공격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보내 초나라와 합종의 의견을 나누었으나 한나절이 지나도 결정이 나지 않았다. 그때 평원군의 식객 모수(毛遂)가 스스로를 추천(毛遂自薦)하여 사신단으로 갔었는데, 그는 협상장으로 칼자루를 든 채 초나라 왕 앞으로 나아가 담대한 언변으로 초나라의 왕을 설득하였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세 치의 혀를 말할 때는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데 쓰이곤 한다. ‘모든 재앙은 입에서 나온다. 입을 지켜라, 맹렬한 불길이 집을 태워 버리듯 입을 삼가지 않으면 입이 불길이 되어 온몸을 태우게 될 것’이라고 석가모니께서도 경고하였다. 겨우 세 치 밖에 안되는 혀지만, ‘혀 아래 도끼 들었다’와 같은 속담이 있는 것은 그만큼 말 한마디가 가져오는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상대의 영혼을 파괴하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마음의 문을 닫게 한다. 영국 속담에 사람의 눈이 둘인 것은 많이 보라는 뜻이며, 귀가 둘인 것은 남의 말을 많이 경청하라는 뜻이고, 입이 한 개인 것은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입”은 신생아가 처음 타자를 의식하는 기관이다. 태어나서 2세경까지 유아의 리비도는 입에 집중되어 있다. 어머니의 젖을 빨고, 울고, 소리치고, 칭얼거리고, 웃고,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고, 먹고, 뱉어내는 행동이 이루어지는 곳이 입과 구강(oral cavity)이다. 신생의 눈과 청력은 입보다 나중에 발달하기 때문에 입과 구강의 행위로 타자인 엄마를 인식하며, 신생아가 만나는 엄마의 젖의 체험이 곧 세상을 만나는 첫 경험이 되는 것이다. 구강 흡수적 성격은 지식이든 물건이든 무언가 획득하려는 것이고, 구강가학적 성격은 이빨이 나기 시작하는 시기에 형성되는데, 어머니의 젖을 깨무는 행위가 고착되면 성인이 되어 매사에 논쟁적이고 비판적이며 지나치게 냉소적이고 부정적이며, 자신에게 필요할 때까지 타인을 이용하거나 지배하려 하고, 풍자나 조롱, 야유 같은 말을 즐겨 쓰게 된다고 보았다. 최근 일인 방송 유튜브의 발달과 SNS 등에서 의사 표현의 기회가 확대되면서, “마스크”를 씌워주고 싶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으로 의심되는 말들이 미세먼지처럼 날아다닌다. 시인은 얼마 전 코로나가 덮쳐 “마스크”를 썼을 때, “모두가/입을 가리니” “비로소” 상대의 “눈이” 보였다고 전언한다. 의사소통의 방법 중에는 “눈”으로 나누는 대화도 있다.
사람들이 대화하는 상대의 얼굴을 볼 때, 응시 시간의 43.4%는 눈을 바라보고, 12.6%는 입 주위를 바라본다고 한다. 눈은 뇌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 이유로, 눈은 응시 방향과 눈 크기의 변화를 통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4년 제네바대학 볼몬트(Bolmont) 교수팀은 ‘사랑은 눈’에 있다는 것을 검증했다. 사랑을 느끼면 몸보다 얼굴을 바라보는데 5배가량 시선을 투자하는 반면에, 성욕을 느낄 때는 얼굴과 몸을 거의 비슷하게 본다는 것을 밝혔다. 2014년 스웨덴 룬트대 파르나메츠(Parnamets) 교수팀은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할 경우, 의사결정 직전에 그 사람의 눈이 어느 쪽을 더 오래 응시하고 있느냐에 따라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규명했다. 두 가지 대안의 가치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시선의 지속시간은 바로 그에 대한 선택 내지는 호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눈은 관심 있는 자극에 대해 눈을 그 방향으로 돌리거나 눈을 크게 뜨는 방식으로 반응하고, 혐오스러운 것을 보면 눈을 다른 데로 돌리거나, 눈을 가늘게 뜨는 방식으로 마음을 드러낸다.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거나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할 때는 상대방의 의중을 의심해봐야 한다. 숨기는 것이 많거나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눈을 비비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행위는 자신의 거짓말을 듣고 있는 상대방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경우다. 또한 눈을 오래 감고 있거나 자주 깜빡인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눈으로 하는 의사소통은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소란스럽지 않다. 미세먼지나 황사 때문만이 아니라, 칼을 품은 세 치 혀를 조심하기 위해서라도 “마스크”를 쓴 마음으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눈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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