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종소리 안에 네가 서 있다 /장옥관

서대선 | 기사입력 2023/11/20 [08:46]

[이 아침의 시] 종소리 안에 네가 서 있다 /장옥관

서대선 | 입력 : 2023/11/20 [08:46]

 

종소리 안에 네가 서 있다

 

조약돌 주워 호수에

 

퐁!

 

던졌더니

동그랗게 무늬가 생긴다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

끝도 없이 생긴다

 

종소리 같다

 

물무늬처럼 번지는 종소리

종소리처럼 번지는 내 마음

 

종소리 안에 온종일 

네가 서 있다

 

# ‘토토’하고 가만히 불러 본다. 마음속에 “동그랗게” 물무늬가 생긴다.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가 파문을 일으키며 가슴 속에 “종소리”가 울린다. 삽살개 토토가 처음 새끼를 낳던 날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던 추운 이월 초였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다섯 마리를 낳았다. 유전자 속에 각인된 육아 프로그램이라도 있는 것처럼, 새끼들의 몸을 보송하도록 깔끔하게 핥아 주곤 동그랗게 몸을 말아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품고 있었다. 고생했다고 가만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선한 눈을 들어 쳐다본다. 어미의 젖이 잘 돌도록 얼른 미역국을 끓였다. 

 

새끼들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두툼한 담요로 바닥을 깔아 주고, 백 촉짜리 전구를 천장에 달아 주었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이 어미 품에서 꼬물거렸다. 알맞게 식힌 미역국을 가져오니 그제야 새끼를 품었던 몸을 풀고 허겁지겁 미역국 국물을 들이켰다. 어미가 된 토토는 새끼들을 살뜰하게 보살폈다. 음식을 먹을 때 말고는 종일 몸을 둥글게 말아 새끼들을 품어 주고 젖을 물리고, 새끼가 내놓는 배설물을 제 입으로 받아 삼켰다. 옛날 야생의 시절 다른 짐승들에게 들키지 않으려 새끼의 배설물을 삼키던 습관이 남아 있는지, 다섯 마리의 새끼가 내놓는 배설물을 받아 삼키는 어미의 모습에 뭉클해졌다.

 

한 달여 동안 젖이 잘 돌도록 미역국을 끓여준 효과가 있었는지, 한겨울 추위에도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삼월이 오자 눈을 뜬 새끼들은 우리 밖으로 나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뒤뚱거리며 주변을 탐색하였다. 어미 토토는 새끼들이 마당에서 호기심을 채울 때, 웅크렸던 몸을 풀며 쉬었다. 태어난 지 두 달이 되자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새끼들은 서로서로 어울려 장난을 치며 서열을 가리기도 했고, 어미 밥을 넘보기도 했다. 현관문을 열면, 마치 경주하듯 소리 지르며 달려와 반갑게 알은 채를 했다. 우리 집 마당은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새끼 삽살개들로 수선화도 피어나고, 봉숭아도 채송화도 달맞이꽃도 눈을 떠 강아지들과 고물거렸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강아지들은 모두 성격이 달랐다. 이미 서열이 정해져 대장 노릇을 하는 아이, 유난히 사람에게 살갑게 구는 아이, 먹보 아이, 호기심이 많아 여기저기를 탐색하다 비탈에서 떼굴떼굴 굴러떨어지는 아이, 어미 곁을 맴도는 수줍은 아이가 이야기를 몰고 왔다.

 

생강나무꽃과 매화꽃이 다녀가고, 산벚꽃이 흩날리고 백목련과 자목련, 별목련이 꽃 등불을 켜는 동안 강아지들은 어미 젖을 떼고 온 마당을 내달리며 우리 사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불두화가 피어나고 보랏빛 라일락이 필 무렵 삽살개 세 마리가 집을 떠났다. 강화도에서 양로원을 운영하는 부부가 페이스북에 올린 삽살개를 보고 간절히 원했다. 사람에게 친화적인 삽살개는 양로원에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양로원의 모습을 올려 강아지들이 잘 지낼 수 있는 환경임을 알렸고, 이미 삽살개를 키운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양된 강아지들은 며칠 후 페이스북에 사진이 올라왔다. 너른 마당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강아지들의 근황도 사진으로 올려 소식을 주었다, 토토에게 새끼들의 사진을 보여 주며, 집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식들을 생각했다.

 

십 오 년을 우리 곁에서 함께 했던 어미 삽살개 토토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사람 못지않게 어미 노릇을 잘 해내던 토토의 황금빛 털, 가까이 가면 벌떡 일어서서 사자 발처럼 크고도 튼실했던 발로 내 다리를 끌어안고 바라보던 토토의 총명하고, 선하고, 따스했던 눈빛이 마음속에서 “동그라미 안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끝도 없이” 번진다. 사랑하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 했다. 토토와 함께 바라보았던 굴참나무숲과 둔덕, 텃밭과 연꽃과 꽃나무들, 눈 내린 새벽 물까치들이 시냇물처럼 흘러들던 하늘에서 “물무늬처럼 번지는 종소리”, “종소리 안에 온종일/네가 서 있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