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역려(逆旅) / 이해존

서대선 | 기사입력 2023/10/23 [09:19]

[이 아침의 시] 역려(逆旅) / 이해존

서대선 | 입력 : 2023/10/23 [09:19]

역려(逆旅)

 

돌아갈 곳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 때까지

머물기로 했다

 

문득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야 할 길과 남겨진

발자국 사이에 우두커니 그림자가 서 있다

 

출렁거리는 물통처럼 나는 지금 굽이치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어서

 

깨진 물잔처럼 안과 밖이 하나가 될 때

  

돌아갈 곳이 없어도 어디든 흘러갈 수 있다

 

# ‘철새들이 도착하기 전 마당에 걸어둔 철새 먹이통을 살펴봐야 겠어요.’ 차를 마시며 큰 오색딱다구리가 둔덕 굴참나무 가지를 두드리는 낭랑한 소리를 듣다가, 마당에 걸어 놓았던 겨울 철새 먹이통 한쪽이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두 개의 먹이통 속에는 빗물과 먼지와 바람에 날아온 검불들이 조금 엉겨 붙어 있었고, 먹이통을 매단 쇠줄을 만져보니 먹이통을 걸고 있던 쇠줄의 고리가 삐걱거렸다. 가는 철사로 부실한 고리들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먹이를 놓았던 바구니 속 쟁반을 꺼내어 물로 깨끗하게 씻었다. 양촌리 우리 집으로 곧 찾아올 철새들을 “역려과객(逆旅過客)”으로 맞이할 준비를 끝내고, 먼 북쪽에서 출발했을 철새들의 고된 여정을 생각한다.  

       

“역려(逆旅)”는 <장자> 신목편에 나온다. 역참은 관리의 이동, 사절의 왕래 때 행렬이 쉬고 말을 교체하는 나라의 시설이었다. 이때 역참 관리들은 사절이나 귀빈을 멀리까지 나가서 마중했다. 이 행위가 역(逆)이다. 역(驛)으로 오는 행렬(旅)을 거슬러 가서(逆) 맞이하는 “역려”에서 여관의 뜻이 파생하였다. ‘나그네를 맞이한다’는 “역려(逆旅)”는 원래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 의 첫 문장인 ‘무릇 천지란 만물이 머무는 여관이요, 세월은 백 년을 두고 흐르는 나그네와 같다’는 말에서 나왔다. ‘역려과객’의 사설은 천황, 지황, 인황씨로부터 시작하여 중국 역대의 성인군자, 영웅호걸, 문장 재사의 사적을 열거하고 나서 ‘이런 만고 영웅들은 사적이나 있건마는, 우리네 같은 초로인생이야 한번 아차 죽어지면 청초 우거진 데 처량한 것이 넋이로구나’하는 구절로 마무리된다. 인생이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라는 인생무상을 노래한 단가에서 시적 제재를 차용한 시인은 “돌아갈 곳이 있어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 때까지/머물기로 했다”며, 돌아갈 곳도 머물기로 한 곳 어디에도 정처를 두지 않고 있음을 전언한다.   

  

‘어 와 세상, 벗님네들, 이내 한 말 들어보오, 인간이 모두가 팔십을 산다 해도, 병든 날과 잠든 날, 걱정 근심 다 제허면, 단 사십도 못 산 인생, 아차 한번 죽어지면, 북망산천의 흙이로구나’라는 사철가를 읊조리며, 삶의 매 순간들의 뒷모습은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했던 선인들은 현실에서의 삶을 “역려과객”의 시간으로 여겼다. “출렁거리는 물통처럼 나는 지금 굽이치고 있다 아직/남아 있는 것이 있어서” “가야 할 길과 남겨진/발자국 사이에” “문득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는 시인은 잠시 “역려”에 머무는 과객 같은 삶일지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나약한 삶을 살지는 않겠다고 한다. “깨진 물잔처럼 안과 밖이 하나가 될 때”, 삶과 죽음도 “안과 밖”이며 “하나가 될 때”, 갇힌 “물잔” 속에서 밖을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깨진 물잔” 속에 놓인 자아가 스스로 작고 좁은 “물잔” 같은 현실에서 유연하게 벗어나 자신의 자유의지로 “돌아갈 곳이 없어도 어디든 흘러갈 수 있다”고 전언한다. ‘삶이 있는 곳에 의지가 있다(Where there is life, there is will)’던 니체(Friedrich Nietzsche, 1984,10-1900,8)의 말을 새겨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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