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생선 조리기 / 원재길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9/11 [10:24]

[이 아침의 시] 생선 조리기 / 원재길

서대선 | 입력 : 2023/09/11 [10:24]

생선 조리기

-노자(老子)가 말하길

 

나랏일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

작은 생선 조리듯

자꾸 뒤적이거나

들쑤시지 말기.

 

다 잊고

내버려두었다가

문득 생각나면

들여다보고

 

물기가 너무 많다 싶으면

장작 하나 더 넣고

졸아붙는다 싶으면

물 좀 붓고,

 

안달복달

속 끓이며

볶아치지 않기.

되는 대로

느긋하게.

 

# ‘다시 하면 되네’. 굴비의 흩어진 살점이 묻은 뒤집개를 들고 난처하게 웃는 동서 등을 두드리며 새 굴비를 내어 주었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이라 정성이 필요한 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그만 조급증에 진 것이다. 차례상에 올릴 나물을 준비하는 동안 데크에서 굴비를 후라이팬에 지지도록 동서에게 부탁하며, 무슨 동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스마트폰에 열중하다 자칫 태울까 봐 굴비 한쪽이 익는 동안 좋아한다는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을 이 절까지 마음속으로 읊조린 후, 후라이팬을 십 오도쯤 기울여 보고 굴비가 아래쪽으로 조금 미끌어지면 뒤집개를 살짝 굴비 배 밑으로 넣어 뒤집어야 한다고 일렀다. 중간 불에 천천히 익혀야 굴비가 속살까지 익으면서 겉이 노릇노릇하게 보기 좋으려면 “자꾸 뒤적이거나/들쑤시지 말”아야 한다. 좋아하는 동요를 읊조리면 시간의 아름다움이 음표 갈피마다 일렁여 생선이 익는 동안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급증(Impatience)은 조급해하는 버릇이나 마음을 말한다. 조급증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기다리거나 어떤 일을 마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는 일을 맡게 되면 신경질을 부리며, 기다릴 마음이 없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한다. 왜 조급해할까? 조급함은 불안(Anxiety)과 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불안한 마음과 과도한 걱정 등이 사라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떠올라 강박적 사고를 낳고, 강박 행동으로 이어진다. 물론 조급증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조급증은 일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게 하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단지 적당한 긴장이 아니라 과도한 긴장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게 되면, 조급한 마음이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커지고, 강박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게 되고, 화를 내는 일이 잦아지게 된다.  

 

조급한 성격은 몸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조급한 셩격으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우리의 뇌는 ‘응급신호’로 해석하여 교감신경계를 작동시켜 아드레날린(Adrenaline)을 분비하도록 한다. 아드레날린은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호흡을 증가시켜 우리 몸이 스트레스에 적응하도록 하는데, 이런 반응이 지속되고 과도하게 증폭되면 혈압이 오르고, 동맥경화나 심장병을 촉진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조급증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며 주변의 사소한 자극에도 긴장감을 느껴, 주위 사람에게 적대감을 잘 느끼고 쉽게 화를 낸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이 감소하게 되는데, 이를 보상하기 위해 과식, 과음, 흡연에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2022년 11월 4일, 경북 봉화군 아연 채굴 광산 매몰사고 열흘째, 사고 221시간 만에 지하 190m 갱도에 고립되었던 두 명의 광부가 ‘스스로 걸어서’ 나왔다. 매몰되었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뎠다고 했다. 매몰된 광구 속에 남겨졌을 때, 구조를 기다렸던 기다림의 시간은 두렵고, 외롭고, 시간의 흐름도 다르게 느껴졌으리라. 그러나 그 광부들은 초조함을 참고,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 서로서로 격려하며 의지하였고, 바깥에서 기다리는 가족의 사랑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다져가며, 자신을 구하려는 전문가들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온 마음과 온 힘을 다해 기다렸기에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리라.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아름드리 큰 나무도 작은 싹에서 자라나고, 아홉 층 높은 다락도 한 삼태기 흙에서 세워진다’고 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덕과 인품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처음부터 뛰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훌륭한 모델을 모방하고, 고난과 역경도 묵묵히 견디며,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긴 시간 자신을 갈고 닦았으리라.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옷을 꿰맬 수는 없는 것처럼, 물 한 방울이 바위를 뚫는 자세로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덕을 쌓을 때, “안달복달/속 끓이며/볶아치지 않”고 자연의 이치와 순리에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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