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검열 / 주영국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2/09 [09:06]

[이 아침의 시] 검열 / 주영국

서대선 | 입력 : 2019/12/09 [09:06]

검열

 

 어떤 죄를 지어 감옥에 온 남자가 딸이 보내온 편지를 읽

고 있다 아빠, 올봄에는 묵은 밭을 일궈 해바라기라도 심을

까 해요

 

  남자는 답장을 쓴다 얘야, 그 밭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

아빠가 거기 묻어놓은 것이 있단다

 

  딸의 편지를 다시 받은 남자 아빠, 어제는 어떤 아저씨들

이 오더니 하루 종일 밭을 파주었어요, 그런데 갈 때는 욕을

하고 갔어요

 

  남자는 이제 답장을 쓴다 얘야, 이제 너의 생각대로 꽃씨

를 뿌리렴 아빠가 사람들을 시켜 밭을 일구어주었으니 해바

라기들도 잘 자랄 것이다.     

 

# 날마다 우리는 들키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정보통신기술(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ies) 이라는 거대한 ‘빅 부라더(Big Brother)’의 “검열”과 감시망 아래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풍 길을 따라 강원도를 여행할 때였다. 갑자기 문자 메시지가 떴다. ‘멧돼지 포획 작전이 실시되고 있으니 깊은 산속을 함부로 들어가지 말아 달라’는 안내 메시지였다. 문자 안내가 고마웠지만 순간 마음이 서늘해졌다. 스마트폰의 위치추적을 부탁한적 없건만, 여행 내내 위치가 노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죄를 지어 감옥에 온 남자”는 수형생활 중이기에 외부로 보내는 편지를 밀봉 한 상태로 내보낼 수 없었던 것이리라. 딸아이와 주고받는 편지의 내용도 “검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남자는 자신의 부재로 인해 묵정밭이 되어버린 “묵은 밭”을 일구어 “해바라기”라도 심으려 한다는 딸아이의 편지가 안쓰럽기만 했으리라. 아버지는 ‘반간계(反間計)’를 쓰기로 한다. 자신의 편지를 “검열”하는 자들에게 가짜 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얘야, 그 밭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아빠가 거기 묻어놓은 것이 있단다”. 예상은 적중했다. 낮선 남자들이 들이닥쳐 묵은 밭을 파헤쳤던 것이다. 

 

오늘날 정보통신산업의 순기능이라면, 시간적 공간적 제약의 타파로 서비스가 다양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산업경제의 지능화, 공공서비스의 지능화에 따른 삶의 질과 양상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 그러나 역기능 또한 만만치 않다. 개인의 정보도, 사생활도 이전 보다는 더욱 쉽게 노출 될 수 있고, “검열” 당할 수 있다. 또한 가짜 정보의 범람도 걸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보통신산업을 장악한 자들이 ‘빅 부라더(Big Brother)’가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 자체가 거대한 수형시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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