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상아孀娥여신 / 한승원

서대선 | 기사입력 2019/11/11 [10:31]

[이 아침의 시] 상아孀娥여신 / 한승원

서대선 | 입력 : 2019/11/11 [10:31]

상아孀娥여신

-이천 말향고래 시인에게

 

한밤에 울산 반구대에 갔는데

하얀 만월이 중천에 떠 있었는데

아득한 옛날 암구대의 제사 음식 받아먹던

달에 사는 상아여신을 만났는데 나는

그 여신의 아리따움과 향기에 반해서 그녀의

신금神琴을 연주하며 내내 황홀했는데

암구대 호수의 모든 물고기들이

그녀와 내가 수면에 흘린

반짝거리는 사랑 찌꺼기들을 쪼아 먹었는데

 

거기 새겨진 말향고래, 꽃사슴, 노루, 호랑이의

그림자들이 물에 잠기고 있어서

상아여신은 새벽녘에 헤어질 때

사제들이 바친 음악과 춤과 향기로운 술과 차를

즐기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로 그녀의 흰 달빛옷자락이 얼룩지고 있어서 나는

그녀를 아픈 가슴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네

 

# ‘남극에서 노래하면 북극에서 화답하는 고래처럼’, 장흥에서 노래하면 이천에서 화답하는 말향고래들의 우정이 진하게 담겨져 있음을 알겠다. 전남 장흥의 소설가 한승원과 경기도 이천의 시인 이건청은 육십 여 년 동안 “신금神琴을 연주”하듯 우정을 나누는 문학청년 때 부터의 친구이다.     

 

한국의 소설과 시에서 우뚝한 업적을 쌓아올린 두 예술가는 육천 년의 역사를 가진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기 위한 사회운동에도 열정을 모두고 있다. 육천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이 반구대 바위에 “말향고래, 꽃사슴, 노루, 호랑이”등은 물론이며, 고래를 잡는 도구들과 잡은 고래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사용 되었던 부구와 배와 창살들을 새겨 둔 삶의 기록은 우리 정신문화의 유산이며, 자존감과 정체성 형성의 중요한 요소라는 걸 후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다.   

 

노년에 이르러서도 안일과 타성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두 원로는 시로, 전화로, 때론 먼 길을 달려가 마음을 나누기도 한다는데 “하얀 만월이 중천에 떠 있는” 반구대 암각화 아래서 “음악과 춤과 향기로운 술과 차를” 나누며 “꽃사슴, 노루, 호랑이”도 불러내어 “달에 사는 상아여신”의 “신금神琴” 소리까지가 한데 흐드러진 것 같다. 소설가 한승원과 시인 이건청의 우정 풍경이 바위에 깊게 새겨져 암각화로 남으리라는 걸 생각해보곤 하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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