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세상의 맑은 곳일수록 햇살 밝은 날일수록
내 삶의 무게만큼 내려놓고 싶다
# ‘내 친구지만 왜 저렇게 속물일까’. ‘쥐뿔만한 완장 찼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왜 그렇게 참을 수 없이 밉고, 혐오스럽고,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를까? 우리가 무엇을 싫어하고 혐오하고 화를 낼 때,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자신의 그림자를 똑바로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것으로 투사(projection)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자는 아무리 떼어 내려 해도, 찰싹 달라붙어 따라다니는 자신의 일부이기에 우리는 그림자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다. 그러므로 ‘타인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혐오가 솟구친다면,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가 투사된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이 문제를 대하며 내가 느끼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계속 내버려 두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 이 문제는 나에게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포기하거나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더럽고, 추하고, 혐오스러운 것을 자신의 그림자로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의 질서와 유지를 위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아가야 하므로 “그림자”에게 조정당하는 비난(blame)이 아니라, 객관적인 자료 검증을 통한 비판(criticism)이 필요하다. 심리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그림자를 나의 것으로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서 통합된 존재로 향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누구도 절대 선일 수는 없고, 절대로 정의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림자는 완전하게 없앨 수도 없거니와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된다. 최선의 방법은 그림자와 화해(reconciliation)하는 것이다. “세상의/맑은 곳일수록/햇살 밝은 날일수록”, “내 삶의/무게만큼” 같은 무게의 더럽고, 추하고, 혐오스런 자신의 “그림자”를 햇빛 속에 꺼내놓고 실체를 마주하며, ‘내가 나를 용서하듯 당신을 용서해야 하고, 당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듯, 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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