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삶은 찰옥수수 먹는 저녁 / 장하빈

서대선 | 기사입력 2019/05/20 [06:26]

[이 아침의 시] 삶은 찰옥수수 먹는 저녁 / 장하빈

서대선 | 입력 : 2019/05/20 [06:26]

삶은 찰옥수수 먹는 저녁

 

부부 싸움한 날은 찰옥수수 사러 불로시장 간다

길바닥 난전에 쌓여 있는, 굵고 단단한 놈들 골라

한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수염 거꾸로 잡아채고 한 겹 두 겹 속곳 벗긴다

볼썽사나운 알몸들 펄펄 끓는 냄비에 한식경 삶아

밥상보 씌워 식탁 한쪽에 밀쳐놓았다가

시무룩하게 들어오는 남편 저녁상에 올린다

-삶은 찰옥수수예요!

-삶∙∙∙은∙∙∙찰옥수수 ∙∙∙라고?

찰옥수수 하나씩 통째로 집어 든 채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서로 지그시 바라보면

웃니 빠진 갈가지 모습 떠올라 절로 웃음 짓거니와

-찰지고 쫀득쫀득한 이 맛이 바로 삶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속 앙금이 원앙금으로 바뀌고

그런 날 저녁은 요요한 달빛 깔린 자리 나란히 누워

찰옥수수 잎 수런대는 소리 밤도와 듣는다

 

# 화해하고 싶다면, 진정한 화해를 하고 싶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의 드라마를 쓸 수 있어야한다. 부부가 싸움을 자주 하게 되는 이유 중하나는 한 쪽은 ‘피해의식으로 가득찬사람’의 역할을 하고, 상대는 ‘비위나 맞추는 사람’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숙하지 못한 부부관계에서는 이 두 가지 역할을 반복하며, 끝나지 않는 악순환의 드라마를 지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숙하지 못한 부부는 다투고 난 후, 서로 눈치만 보거나 침묵으로 무언의 시위를 하다가 귀찮거나 불편하니까 좋은 것이 좋다는 생각으로 ‘가짜 화해’를 시도하게 된다. 이런 경우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문제를 덮은 것에 불과 하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같은 문제로 다투게 되고, 또 다시 갈등을 그냥 덮어 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해결되지 못했던 감정이 곪을 대로 곪아 결국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성숙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려면 ‘진짜 화해’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드라마를 쓸 수 있어야 한다. 다투게 된 이유와 내용 속에 자신의 좌절된 욕구와 손상된 감정을 서로 이야기 하는 ‘회복 대화(repair talk)’를 통해 다투었던 내용을 객관화 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부부 싸움한 날은 찰옥수수”를 산다고 전언한다. 찰옥수수를 맛있게 삶아 “밥상보 씌워 식탁 한쪽에 밀쳐놓았다가/시무룩하게 들어오는 남편 저녁상에” 올린다. 서로 마주 앉아 삶은 “찰옥수수”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며 서로 지그시 바라보면/웃니 빠진 갈가지 모습 떠올라 절로 웃음”짓게 되는 정서적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함으로써 일차적 욕구도 만족 시키는 새로운 전략을 통해 ‘회복 대화’를 시도한다. 부부는 서로 마주 앉아 찰옥수수를 먹으며, 지난밤 다투었던 내용을 객관화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리라. 찰옥수수를 사이에 두고 ‘회복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마음속 앙금이 원앙금으로 바뀌고/그런 날 저녁은 요요한 달빛 깔린 자리 나란히 누워/찰옥수수 잎 수런대는 소리 밤도와 듣는” 부부의 여름밤이 ‘톰방톰방 은하수’를 건너게 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