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까마중 / 신대철

서대선 | 기사입력 2018/07/17 [06:16]

[이 아침의 시] 까마중 / 신대철

서대선 | 입력 : 2018/07/17 [06:16]

까마중

 

나이 들면서 까마중이 자주 눈에 띄는군요. 풀 중에서

도 흔하던 풀인데 그동안 어디 숨어 있다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는지요. 지치고 배고프고 외로울 때 까만 열매 씹

으며 단물에 녹아들던 몸, 그때 우리의 꿈은 냇물을 건너

보는 것이었지요. 앞산 꼭대기 소나무에 올라가 보는 것

이었지요.

 

  냇물은 웅더이만 남아 있고

  소나무 베어지고 산 무너진 자리엔

  쓰레기 둔덕이 생기고 까마중이 군락을 이루었군요.

 

  다시 쓰레기 둔덕을 넘고 또 무엇을 넘으면

  앞산 소나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까요.

 

# “나이 들면” 우리는 실향민이 된다. 한 번도 고향을 떠난 적이 없던 사람조차도 실향의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더 이상 유년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없으며, “지치고 배고프고 외로울 때” 따먹던 “까마중”이 있던 유년의 공간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 떠난 적 없고, 떠나겠다고 한 적도 없건만 어느새 낯선 곳에서 “나이 들어” 향수에 젖게 되는 것이다.

 

‘망각의 역현상 효과’란 “나이 들어”가면서 오래된 과거의 기억이 최근 기억보다 더 많이 떠오르는 현상을 의미한다. 나이든 시인에게도 유년 시절을 상기시키는 “까마중”이 “풀 중에서/도 흔하던 풀인데 그동안 어디 숨어 있다가 가는 곳마다/나타나는”것이다. 그러나 향수에 젖은 시인이 찾아간 유년의 공간은 “냇물은 웅덩이만 남아 있고/ 소나무 베어지고 산 무너진 자리엔/ 쓰레기 둔덕이 생기고”, “까마중”만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유년의 공간은 이미 “쓰레기 둔덕”으로 변해 있건만, ‘망각의 역현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까마중”을 보게 되면서 “그때 우리의 꿈은 냇물을 건너/보는 것이었”고, “앞산 꼭대기 소나무에 올라가 보는 것/이었”다고 회상한다. 재미있는 현상은 과거를 회상할 때마다 우리의 기억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삭제, 첨가, 수정을 통해 새로운 복사가 이루어져 가장 오래된 기억도 마치 최근 기억처럼 생생해진다는 것이다. “다시 쓰레기 둔덕을 넘고 또 무엇을 넘으면/앞산 소나무 꼭대기에 오를 수 있을까요.” 라는 시인의 전언 속에 그리운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것이다. 고향은 실향민들이 복원 시키고 싶어 하는 심리적 공간이며, 새롭게 각색해 나가는 기억 속의 공간이기에 더욱 눈에 밟히고,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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