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내가 머문 자리

홍사라 | 기사입력 2024/01/04 [11:39]

[홍사라의 풍류가도] 내가 머문 자리

홍사라 | 입력 : 2024/01/04 [11:39]

  © 홍사라

 

최근에 이사를 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집을 하나 더 얻었다. 지금은 서울과 제주를 왔다 갔다 하며 살고 있다. 돈이 많아서도 물려받을 재산이 있어서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이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어쩌다 보니. 나는 내 동생의 표현에 따르면 ‘쓸데없이’ 양쪽 집에서 각종 관리비를 물어가며 두 집 살림을 하는 중이다. 

 

새로 얻은 제주집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 개월간 비워 두었다가 이번 달이 되어서야 내려올 수 있었다. 전혀 모르는 지역에서 집을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올여름 몇 번에 걸쳐 제주에 와서 집을 알아봤으나 마땅한 집이 없었다. 위치가 안 좋거나, 가격이 안 맞거나,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이거나. 도무지 내가 살만한 집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하필 그 시기가 국제학교에 아이들이 입학하는 시기라 그 동네 근처 집값은 말 그대로 천정부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고 있었다. 아니 제주도에, 그것도 시내도 아니고 국제학교 근처라는 이유로 30~40평대 아파트 연세가 4000-5000만원씩이나 한다니. 처음엔 입이 떡 벌어졌다.

 

생각해보라. 1년 연세가 4800만원이라면 1달 월세는 240만원이 된다. 보증금이 작긴 하지만 강남을 제외한 서울 경기권의 월세를 생각해보면 너무 비싸다 싶었다. 제주도의 특성상 주변에 백화점이나 대형병원, 코스트코는 고사하고 다이소만 가려고 해도 차를 끌고 10분은 가야하는데, 한달 월세가 200이 넘다니. 내 기준에는 너무 비쌌다. 게다가 나는 요즘 한사람 건너 하나씩은 있다는 일인가구다.

 

사정이 있어 이쪽 동네에서 살기는 해야하는데, 국제학교에 보낼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어다주는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월세는 비싸도 너무 비쌌다. 반경을 넓혀 몇 번에 걸쳐 알아봤지만, 가까운 주변도(가깝다고 해도 걸어서나 대중교통으로는 힘들고 자차로 10~15분은 가야 했다. 3000만원 정도는 하는 듯했다. 비싼 금액에 번번히 아무 소득없이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이번에도 못구하면 포기하자’ 라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제주에 내려갔을 때는 그냥 차를 몰고 가다가 아무 부동산이나 보이면 들어가 물어봤다. 이러이러한 비슷한 조건의 집이 있겠느냐고. 이제껏 카페에서 정보를 얻어 돌아다녀 봤으나 별 소득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그냥 맨 땅에 헤딩을 해본 것이다.

 

그러다 마주친 한 부동산 사장님. 부부가 같이 운영하는 부동산이었는데, 사장님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사모님에게 물었다.

 

“아 왜 거기 OO 형님댁 있잖아. 거기 괜찮을 것 같던데.”

“아 거기? 그러네, 일단 보러 가요”

 

이 말부터 심상치 않았다. 전셋집을 여러 번 옮겨 다니며 구해봤지만 이런 식으로 집을 소개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OO 형님댁? 아는 사람인가? 나중에 안 사실인데 부동산 사장님 부부도, 집주인도 모두 제주 토박이이고, 서로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집은 사모님이 안내하셨다. 집까지 가는 길에 그 집에 관한 이야기나 아이스브레이킹쯤 되는 잡담을 하면서 갔다. 나는 어린 시절 지방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그 부동산 사장님 부부도 아이들 교육 때문에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고 했다. 이런 우연이. 동향 아닌 동향 사람을 제주도에서 만날 줄이야. 아, 드디어 하늘이 집을 주려나. 괜히 느낌이 좋았다.

 

그 집은 차로 내가 자주 다녀야 하는 동네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어서 거리상으로도 큰 무리가 없었다. 너무 시골이고 밤이면 깜깜하겠지만 가격도 거리도 다 마음에 들었다. 집에 가보니 지어진 지 얼마 안되는 집이라 컨디션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큰 가전이 모두 옵션이고 거기다 새것으로 구비되어 있어서 나에겐 딱이었다. 새로 가전을 살 필요가 없어졌으니 편하고 좋았다. 난 그 집이 마음에 들었다. 같이 간 가족들도 모두 딱이라며 마음에 들어 했다. 그 자리에서 계약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입주하는 날, 짐이 비워진 집에 들어와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종류의 각종 벌레에, 새집이라고 했는데, 먼지도 많고, 구석구석이 지저분했다. 방문을 열 때마다 벌레들이 슉슉 지나가는데, 놀라서 소리를 버럭 지를 정도였다. 나는 벌레를 정말 싫어한다. 한두 마리 정도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여기서 만난 벌레는 족히 몇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시골임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많았다. 보면 볼수록 한숨이 나왔다.

 

세상에나. 어떻게 집을 쓰면 이렇게 되지. 아니 새집이라면서. 어휴-. 몇 년 전 이사했던 집이 생각났다. 가구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짐이 비워진 집 상태를 보고 정말 기절할 뻔한 적이 있다. 이삿짐이 들어와야 하는데 정말 집 상태가 너무 엉망진창이라 짐을 넣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집주인에게 와서 보셔야겠다고, 이거 어떻게 좀 해결을 해 달라고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집에 들어가 살면서도 청소와 정리만 몇 달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집보다는 상태가 나았지만,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게 정리는 될까 싶었다. 

 

짐을 밖에 둘 수는 없으니까. 청소를 대충이라도 하고 일단 짐을 들이고, 정리를 하나씩 하면서 정말 기분이 울적했다. 아니 이러려고 돈 들여가며 여기 온 건 아닌데…. 싶은 마음에 며칠 청소를 하면서도 내내 심란했고. 그러다가 내 스승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투자 분야에서 성공하신 분인데, 이사를 많이 다니다 보면, 어떤 집은 지저분하고, 어떤 집은 마치 입주청소를 한 것같이 광이 난다고 하셨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전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던 간에, 그 사람이 나가고 나서의 집 상태를 보면 앞으로 어떨지가 보인다고 했다.

 

남의 집이지만 내 것같이 대하고 아껴가며 사용했던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 다음 집으로 갈 때 집을 사서 가거나 더 좋은 집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고. 나도 여러 전셋집에 살다 보니, 그 말이 참 잘 맞는 말이다 싶었다. 이사가는 날 집 상태가 깨끗했던 집은,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이 좋은 일이 생겨 더 좋은 곳으로 이사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는 나도 이사 나올 때 짐이 다 빠지면 다시한번 쓸고 물걸레질도 한 번 더 하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집에 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 전까지는 못도 슬쩍 박아서 쓰고 했었는데, 지금은 못도 박지 않는다. 원래 상태 그대로 돌려두고 나오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스승님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어떤 이가 지나간 자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으니까.

 

이사 오고 나서 벌레가 돌아다니는 걸 보고 심란하고 우울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동안 대우받지 못한 집을 제대로 대우해주면서 쓸고 닦고 예뻐해 주다 보면, 지금 있는 많은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자 일단 그다음 날에 바로 세스코를 부르고 환기를 하고 꼼꼼하게 청소를 시작했다. 할 수 없는 것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이 집에 새로운 기운, 좋은 기운을 넣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 사는 기간이 1년이 될지, 아니면 좀 더 지내게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있는 동안 귀하게 대해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갈 때 가장 말끔한 모습으로 남겨두고 떠나기로. 그렇다면 나도 좋은 일로 좋은 곳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여러모로 봐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싶다.

 

또다시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지금 지내고 있는 집, 그 집이 내 집이 아니라도 깨끗하고 소중하게 대하면서 지내보면 어떨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은근히 어려운 일이다. 스승님 말씀으로도, 내 경험으로도 그것은 결국 나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일인 것 같다. 내가 떠날 때,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도 좋고 내게도 좋은 일이라면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머무는 공간을 소중히 대하는 일부터 시작해보면 에너지 좋은 한 해가 펼쳐질 거라 믿는다. 모두 새해 좋은 에너지와 복 많이 받으시길.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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