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혈액형과 MBTI

홍사라 | 기사입력 2023/10/16 [09:48]

[홍사라의 풍류가도] 혈액형과 MBTI

홍사라 | 입력 : 2023/10/16 [09:48]

  © 홍사라


올해 취미를 하나 더 추가했다. 처음에는 원데이 수업을 들었는데, 첫 수업에 매료되어서 그 뒤로도 맘에 드는 공방을 찾아 계속하고 있다. 우리 반에는 한 분의 선생님과 네 명의 학생이 있다. 편의상 우리는 서로를 모두 쌤이라 부른다. 다들 나이도 제각각이고 하는 일도 다 다르다 보니 누구누구 씨라고 정없이 부르는 것보다는 쌤이라 부르는게 여러모로 편한고 좋다. 내가 그 공방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 올 초쯤이니까 벌써 8~9개월을 함께 한 사이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하고, 어릴 때 만난 사이가 아닌 다 커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보니 경계 아닌 경계도 했었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한 것을 제외하고는 서로 말이 별로 없었고, 열심히 그림만 그리다 가기를 한참을 반복했다. 일주일에 수업이 한 번이라 빨리 친해지기도 어려웠지만, 모인 사람들 모두가 다소 내성적인 성향이라 서먹한 시간이 더 길었다. 바로 다가가기보다는 서로를 염탐(?)하는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그런 시간을 지나고 언젠가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만나면 두서없이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오간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관심 있는 연예인들의 근황 얘기나 요즘 과자는 뭐가 맛있다더라, 그 과자를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같은 아주 소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야기도 자주 꺼내는 주제다. 처음의 시작은 요즘 MZ들은 누구나 다한다는 MBTI에 관한 이야기 였었던 것 같다.

 

서로의 MBTI가 무엇인지 맞춰보겠다며 다들 그동안 봐왔던 사람들의 면면을 기억하고 맞춰보고 맞았다고 깔깔대고 틀렸다고 또 깔깔대고. 그때 어떤 쌤이 나에게 J는 아닌 것 같다고 P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해도 아주 가끔을 제외하고는 극강의 P라서 또 웃었다. 그게 드러났냐며. 서로의 MBTI는 이미 오래전에 파악이 끝난 터라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만났을 때는 나이가 좀 있는 옛날 사람들답게 혈액형이 주제가 되었다. 한 쌤이 다른 사람들의 혈액형을 맞추겠다며 한 사람 한 사람 지긋이 바라보다가 ‘쌤 O형이죠?’ 이런 식이었다. 다른 쌤들의 혈액형을 맞추는 시간이 다 지나가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내 시선은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 종이 위에 있었는데도 우리 반 쌤 둘이 동시에 나를 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왠지 무안해 그림을 더 열심히 그리는 척했다. 두 분이 한참을 이럴 것 같다 저럴 것 같다고 얘기하시더니 ‘쌤은 왠지 B야, 아니면 O??’라고 나름대로 확신에 차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매력이 있어서??? 라고 하시는데 음…, 그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 것 같고. 

 

보통 A형은 아주아주 소심하고 잘 삐지고 뭐 그런 사람이라고 하고-오죽하면 트리플A라는 말이 있을까- O형은 누구와도 잘 쉽게 어울리고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B형은 뭔가 매력은 있는데 똘끼도 동시에 가지고 독특한 사람이라고들 하며, AB형은 그냥 도라이...라고 하지 않나. 하하. 그러니까 내가 B형처럼 보인다는 말은 좋게 말하면 매력이 있다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똘기가 있다는 말이된다. 그 순간 든 생각. 큼. 내가 그런가.

 

사실 난 B형이 아니다. 우리 가족은 3대가 2명 빼고 다 A형이다. 그러니까 그 말은 조금 유식하게 유전학적으로 말하자면, 할머니가 AA, 할아버지가 AO이고 그 아래 자식들은 AA거나 AO가 1:1의 확률로 나타났을 거란 말이 된다. 우리 엄마도 A형이니 A형인 아빠와 만나 자식들 세명이 모두다 A형. 그러니까 집안 전체가 아주아주 찐한 A형이란 말이다. 세상에서 바라보는 A형에 관한 인식대로라면, 우리 집 사람들은 다정하지만 소심하고, 고집이 세지만 정에 약한 그런 존재들이란 말이 된다.

 

그런데 MBTI가 이렇게까지 유행하기 전에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고 B형 아니면 O형이라고 말했다. 다른 식구들도 A형의 성격과는 거리가 멀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모두 자신이 A형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을 때도 난 다정한 고집쟁이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B형에 대해 찾아보니 이렇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개성이 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자존심이 강하고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사람. 이 중에서 몇 개는 맞고 몇 개는 틀리다. 

 

사실 혈액형별로 성격이 다르다는 이론은 일본의 우생학자인 후루카와 다케지에 의해 발생한 이론이다. 대중심리학이라고도 하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유사과학이라고도 한다. 유사과학이라는 말은 말이 좋아 유사과학이지 사이비랑 친구 정도 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B형은 포유류에게 많고 인간과 침팬지에서는 A형이 발견된다는 연구(?)나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B형이 더 많아 열등하다는 식의 우생학을 뒷받침하는 근거같이 사용되기도 한 게 혈액형이다. 그러니 혈액형별 성격을 믿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미개한 일이다.

 

그저 재미로 본다면 모를까. 지금은 혈액형별 성격 차를 믿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은 이런 혈액형별 성격이 MBTI로 대체된 것뿐이라 생각한다. 요즘 MZ의 사람을 나누는 커다란 틀이 MBTI 같아 보이니까. 이렇게 재미로 혈액형이나 MBTI를 보는 게 그래서 나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재미로 보고 웃어넘긴다면 아이스브레이킹 용으로도 이만큼 좋은 소재도 없다. 단지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혈액형이나 MBTI로 규정짓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고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매우 열정적이며 고집이 세고 정이 많다. 힘든 일은 잘 참는 편이지만 한번 터지면 무서워진다. 공상도 창의력의 한 종류라면 나는 창의력이 아주 뛰어나며, 개성이 강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솔직한 편이지만 때론 감정을 숨기기도 한다. 호기심은 우주 대마왕 수준이며 사랑에 잘 빠진다. 지는 걸 매우 싫어하고 게으른 완벽주의자이자 낙천주의자이다. 그리고 매우 매우 엉뚱하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A, B, O, AB형이 골고루 다 들어있다. 

 

나는 원래 천성적으로 남의 눈치를 잘 보지 않는다. 내가 좋으면 남들이 뭐라 생각하든 그만이다. 그런 나도 누군가가 나를 이러이러하다고 규정지을 수 있는 혈액형이나 MBTI를 맞춰보겠다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는 왠지 괜히 긴장되기도 한다.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게 싫기도 하고. 한데 언젠가부터 만나는 사람들마다 ‘I에요? E에요? 난 E는 어렵던데….’ 라고 묻거나, ‘F 성향 사람은 친해지기가 힘들더라고요.’ 등과 같은 말들을 한다. MBTI를 그린 만화나 이야기가 유튜브나 책에서도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고. 그리고 가까운 지인 중에도 MBTI를 신봉하는 사람이 여럿 있다.

 

MBTI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웃기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너무 적은 인간형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 그러니 재미로만 즐기기로 하자. 우리를 혈액형이나 MBTI 따위로 묶기에는 세상엔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니까. 즐겁게 즐기되 그 안에 나를 가두지도 남을 가두지도 않으면 좋겠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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