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그럼 그렇지.

홍사라 | 기사입력 2023/08/01 [09:22]

[홍사라의 풍류가도] 그럼 그렇지.

홍사라 | 입력 : 2023/08/01 [09:22]

  © 홍사라

 

모든 연령대의 아이들은 다 귀엽고 예쁘다. 그중 유독 아기가 어린이가 되기 전, 그러니까 대략 3-6세쯤의 나이는 정말 깨물고 싶을 정도로 귀엽고 보고만 있어도 힐링이 된다. 말을 배우기 시작해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계속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고, 거부할 수 없는 얼굴로 ‘사랑해’, ‘안아줘’를 연발하고, 어디서 빵 터지는 건지 갑자기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는 듣는 사람의 기분도 좋게 만든다.

 

그리고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기 냄새. 그건 정말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 세상 어느 향수보다 보드랍고 달콤한 향기다. 게다가 이 연령대의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겠지. 그래서 아이가 나에 대해 표현하는 모든 말은 거짓이나 가식은 1도 없는 순도 100%짜리 진실이다. 뭘 모르고 그 순간의 감정에 대해 표현한 것이겠지만, 그때 들었던 말은 그때도 지금도 감동이고 힐링이다. 예를 들면 내가 조카로부터 매일 받았던 편지에는 이런 말들이 쓰여있었다.

 

’나는 이모를 진짜 사랑해‘

‘이모는 사랑이모라고도 불룰 수 있을 것 같아, 포딘‘

“이모생일 축하해요, 이모는 꽃잎같아, 사랑해”

‘이모는 최고에 어른이에요’

‘이모가 내 친구면 조켓써요’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삐뚤빼뚤, 가끔 영문을 알 수 없는 단어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그 순도 높은 순수함과 진실함은 언제나 나에겐 최고의 응원이자 선물이었다. 

 

조카가 7살이 넘어가던 어느 날 무언가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느꼈다. 먼저 가족의 개념이 좀 더 분명해졌다. 조카가 그리는 그림에는 늘 내가 있었는데, 언젠가 내가 빠진 그림을 발견해서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조카는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가족을 그린 거야.” 내가 물었다. “가족이 뭐야? 왜 이모는 없어? 맨날 있었는데 사라졌네?” 조카가 말했다. “이모! 가족은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야. 이모는 나랑 안 살고 강아지들이랑 살잖아, 그러니까 여기 없지.” 

 

‘아.. 그렇구나.’ 점점 커가는 과정이겠지만, 순간 너무 서운해서 나도 끼워달라고 졸랐더니 절대 안 된단다. 나 원 참. 절대일 것 까지는 또 뭐람.

 

아이가 조금 더 자라니 이제는 상대의 감정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말한다. 어른처럼 처세술을 펼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가 감정을 상해한다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최근에 동생 가족이 조금 멀리 가게 되었다. 며칠 뒤 조카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속 목소리는 뭔가 불만이 가득한 볼멘 목소리였다. 그래서 왜 그런지 물었더니 “이모, 이모도 여기 올 거야?” 하고 물었다. 나는 ‘아~ 이 꼬맹이가 그래도 멀리 떨어지니까 내가 보고 싶구나!’하고 내심 기쁘고 뿌듯했다. 그래서 “이모가 보고 싶구나?”라고 했더니, “다들 여기서 짐만 정리하는 데 나는 너무 지겨워~ 그래서 아까도 울었어~ 심심해!!.”라고 하더라. 아 진짜, 그럼 그렇지 ㅋㅋㅋ 완벽한 나의 오해였다. 그래서 나도 솔직하게, “흥! 난 또 내가 보고 싶은 줄 알았네~”했더니만, “아니 그게 아니고... (보통 내가 삐진척하면 조카가 변명을 할 때 쓰는 전치사다.) 심심하기도 하고. 이모도 보고 싶고, 둘 다란 얘기지~~~”라고 하더라.

 

동생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저녁에 사진을 두 장 보내왔다. 이게 조카의 진짜 마음이라나. 그 사진 속에는 조카가 저녁 내내 그리고 쓴 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다. 내용인즉슨,

 

“Love is always together, 이모가 여기 올 수 있다면 나는 너무 좋을 것 같아. 추석 때 만나, 사랑해, 건강해, 놀러 와”라고 쓰여있었다. 이렇게 귀여운 꼬마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내가 졌다. 그래, 너에게 만큼은 내가 평생 져줄게. 사랑해 꼬맹아.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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