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홍사라 | 기사입력 2023/03/22 [07:10]

[홍사라의 풍류가도]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홍사라 | 입력 : 2023/03/22 [07:10]

  © 홍사라

 

우리는 누구나 언젠간 죽는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태어났다면 죽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산다. 살아있다는 것, 살아서 숨을 쉬고,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거리를 걷고, 내 곁의 누군가와 대화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당연스러운 일인 양 그렇게 매일을 흘려보낸다.

 

갑자기 왜 이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하냐고? 감성 터지던 깜깜한 밤에 보았던 어떤 드라마 때문이다. 요즘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들을 조금씩 보고 있다. 시간이 없어서 못 보고 찜해둔 드라마들 중 하나를 골라 잠들기 전에 한편씩 보다가 잔다.

 

그런데 며칠 전 봤던 드라마에서 단짝 친구가 아직은 한창인 삼십 대에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말을 듣는 장면이 나왔다. 너무 슬픈 장면이라 펑펑 울면서 보다가 ‘나도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거야’라는 당연한 사실이 마음에 훅 들어왔다. 굳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생각할 일이 없는 그 새까만 검은색 같은 ‘죽음’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젊을 때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나랑은 상관없을 것 같은 그런 머나먼 단어. 나도 어릴 때는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문자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 지인들의 자연스러운, 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슬프게도 어떤 ‘노화의 징후’라고 여겨지는 것도 몸으로 조금씩 체감하고 되고. 나 또한 그러다 보니 문자로만 알고 있었던, 저 반대편 어딘가에 있던 ‘죽음’이란 단어에 한 발짝쯤은 좀 더 가까워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드는 만큼 시간이 흘렀으니 그만큼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은 너무나 명백한 팩트이기도 하고.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게임으로 말하자면 HP 게이지가 점점 닳아가고 있는 것 같은 거랄까. 

 

많은 사람들이 죽음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궁금해한다. 영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고, 현실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요즘 사후세계에 대해 탐구하는 유튜브도 성행 중이다. 그 미지의 세계가 무척 신비롭고 매력적이라 궁금한 생각도 들지만 난 다른 것이 더 궁금했다.

 

“앞으로 나에게 남아있는 날이 얼마나 있을까?”

 

이공계생답게 현실적으로 계산을 해보았다. 사람의 수명을 예측하다는 것은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우리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유전적 질병이나 나의 생활 습관, 건강검진 결과들, 이런저런 거들을 생각해 대충 이 정도는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다가 한때 유행했던 ‘사망 타이머’라는 앱이 기억났다. 몇 가지 종류의 사망 타이머에 나의 정보들을 입력해 보니 내가 언제 죽는지 결괏값을 도출해서 보여주더라.

 

재미로 보는 앱이지만, 신기하기도 했고, 좀 무섭기도 했다. 그것이 현실이라면 나에게 남은 시간이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적었다. 게다가 어릴 때보다 몇 배 속으로 빨리 가는 요즘의 시간을 생각하면, 어릴 때는 영원처럼 생각했던 ‘삶’이 생각보다 짧게 끝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아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십 년을 생각해 보니 너무 빨리 지나갔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빨리. 그렇다면 사망 타이머에서 보여주던 나에게 남은 삼십몇 년은 얼마나 쏜살같이 지나가게 될까. ‘남은 시간’이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짧은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잘 산다는 건 뭘까?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는 진부하게만 여져기던 문장, 여기저기서 늘 등장하던 그 말이 나는 참 마음에 와닿지 않은 말이었는데, 갑자기 그 문장이 마음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 시간이 짧던 길던 ‘남은 시간’은 유한하다.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은 정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뻔한 이야기 같겠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은 실은 기적 같은 일이다. 생명과학을 공부하면서 가끔씩 정말 생명이란 게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수없이 많은 생물학적 난관들을 뚫고 불가능에 가까운 적은 확률로 하나의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인데, 그 수정란이 엄마의 배속에서 열 달을 무사히 지나 지구에 발을 들이고, 말을 배우고, 아직도 무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모든 순간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생각하며 가끔씩 감탄한다.

 

그런 기적 같은 시간들을 어떻게 채워나가야 하는지 아직 다는 모르겠다. 다만 모든 것의 밑바탕에 사랑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는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 모든 시간이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면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잘못 산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드라마에서처럼 죽음은 언제와도 급작스럽다 느껴질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한한 인생이다. 나 자신과 나의 가족, 주변 사람들을 오늘 한 번 더 들여다보며 그렇게 사랑을 전하며 살면 그걸로 좋은 삶이 되지 않을까? 재미삼아 앱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보면서 오늘을 더 잘 살아내야겠다 다짐해 보는 것도 좋고.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 모두가 기다렸던 봄이다. 날씨만큼이나 따뜻하게 사랑하는 하루하루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사랑이 있는, 반짝이는 봄이기를 바라본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