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겸손과 교만사이

홍사라 | 기사입력 2023/06/20 [14:36]

[홍사라의 풍류가도] 겸손과 교만사이

홍사라 | 입력 : 2023/06/20 [14:36]

  © 홍사라


몇 년 전쯤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내가 속한 부서의 부장이 내려왔다. 일단 믹스커피를 한잔 내어드렸더니 다같이 잠시 쉬었다 하자고 했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도 마침 쉴 시간이라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모두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요즘 일은 어떤가?”, “진행 중인 일들은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나?”와 같은 평범한 말들이 오갔다. 나도 으레 그렇듯 적절하게 대답을 건넸다.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다가 부장이 갑자기 나를 가르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실장님, 실장님은 자기가 자기 분야에서 잘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뛰어나게?” 맥락에서 많이 벗어난 갑작스러운 질문이기도 했고, 어떤 대답을 해도 본전을 찾기 어려울 것 같은 질문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대답은 해야 하니 잠깐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뛰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 당시 나는 내 분야의 유명인사 중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는 몇 사람에게 빠져있었다. 다른 대륙에 살고 있고, 직접 만날 수 없어서 그들이 했던 일의 포트폴리오나 인터뷰, SNS를 팔로우하면서 꾸준히, 조금은 집착적으로 들여다보다 잠드는 것이 나의 루틴이던 시기였다. 압도적으로 규모가 큰 그들의 업적에 비하면 내일은 뭔가 규모가 좀 작게 느껴졌고, 오랜 시간 해온 일이라 몸에 익은 일임에도 부족한 것이 산더미처럼 느껴졌었다. 그들처럼 되려면 배워야 할 것도 경험해야 할 일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 실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의 나는 내 전공 분야도, 어릴 적부터 하던 일도 아닌데 자격증 하나 없이 시작해서 나름 인정받고 성공해서 소위 잘나가던 시기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했어.’라며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어릴 적부터 들으며 자랐기에 급작스러운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저 정도 수준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내 대답을 들은 부장은 나에게 “뭐라고 대답하는지 궁금해서 한번 물어봤어”라고 말했다. 다르게 대답했어야 했나 싶어 뭔가 찝찝했지만, 그때는 그저 잘 넘어갔다 생각했던 잊고 있었던 대화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예전의 그 대화가 떠오르게 된 일이 있었다.

 

주변 사람 A는 자신의 업적(?)에 대한 일화들을 늘어놓으며 꽤 근사하게 포장을 해서 실제로는 자랑을 하고 있음에도 마치 자랑이 아닌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듣는 내내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그냥 대충 들어보면 ‘이런 일이 있었는데, 글쎄 이렇더라고요.’ 정도지만, 잘 들어보면 ‘ 이런 일이 있었는데, 쟤는 저걸 못했는데 나는 했어요. 세상에나 내가 정말 대단하죠?’ 였다. 자기 자랑을 저런 식으로 하는구나. 자기 일인데 저렇게까지 말하다니 좀 뻔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우러러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나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와 그때의 A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스스로 해낸 일을 먼저 꺼내어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실제로 큰 업적을 내도 입 밖에 내거나 자랑을 하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것이다. 다른 사람이 먼저 알아주는 것이라면 몰라도 굳이 내가 이룬 것에 대해 스스로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겸손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런 생각이 든다, 자기 PR 시대인 요즘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자랑이든 무엇이든 내가 나의 강점을 좀 의도적으로 내보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나 이러 이런 것도 했어요.’라고 말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가만히 있어도 당연히 알아주겠거니 싶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 자신도 타인을 대할 때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다.

 

타인에 대해 모를 때는 그저 그런 주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어느 날 누군가에게 또는 당사자에게 ‘저 사람 회사 규모가 어떻다더라, 어디서 일했다더라, 누구랑 친하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늘 알던 그 사람이 종종 달라 보이는 경험을 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설사 그게 스스로 하는 자랑이어도 말이다. 그러니 정보의 부족에서 생기는 그 ‘모름’이 때로는 누군가를 좀 쉽게, 너무 편하게 바라보게 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자랑을 살짝살짝 좀 해야 하는 건가? 과연 어디까지가 겸손한 걸까? 그럼 자신감은 어떻게 드러내야 겸손을 해치지 않으면서 딱 적당하게 보일 수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분명 그 어딘가에 경계는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지만 ‘겸손하다’와 ‘자신감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교만하다’라는 분명 다른 말이니까. 시원하게 ‘딱 이만큼이 가장 좋다’라고 답을 해주고 싶지만 나는 답을 모른다.

 

어쩌면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답이 다를지도 모르고. 내가 나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겸손과 교만에 대해 어떤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 나에겐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겸손과 교만사이 그 어딘가의 가장 적당한 영역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당신은 어디쯤에 있는가? 적당한 지점을 찾았을까?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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