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분골쇄신(粉骨碎身)

송금호 | 기사입력 2024/03/27 [15:50]

[송금호의 고사성어와 오늘] 분골쇄신(粉骨碎身)

송금호 | 입력 : 2024/03/27 [15:50]

“분골쇄신(粉骨碎身)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이런 맹서(盟誓)를 자주 듣는다. 대게 윗사람에게 충성심을 내보이거나,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심정을 표현할 때 쓰이기도 한다. 진짜로 그런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마는.

 

어찌됐든 이 말은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을 부술 정도의 정성과 노력함을 이르는 것인데,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내건 것이어서 이보다 더 한 각오(覺悟)는 없을 것이다.

 

한데 이 분골쇄신은 사랑의 맹서로 쓰였다. 중국 당(唐)나라 때 장방(蔣防)이 쓴 전기소설(傳奇小說) 곽소옥전(霍小玉傳)은 당나라의 시인 이익(李益)과 기생 곽소옥 사이에 얽힌 비극을 묘사한 글이다.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 이익은 지방의 명문가 출신인데. 나이 스물에 진사시험에 합격한 뒤 관리시험을 기다리면서 장안(長安)에 머물고 있던 중 조선의 황진이 같은 명기(名妓) 곽소옥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져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곽소옥은 이익이 지방 관리에 임명되어 이별하게 되면 자신을 잊어버릴까 걱정했고, 이에 이익은 혼인을 하자면서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이때 이익이 불안해 하는 연인 곽소옥을 안심시키면서 한 말이다.

"내 평생의 소원을(平生志願 평생지원)

오늘에야 이루게 되었는데(今日獲從 금일획종)

몸이 부서져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粉骨碎身 분골쇄신)

그대를 버리지 않으리라 약속하오(誓不相舍 서불상사)“

 

분골쇄신(粉骨碎身)이라는 말은 이처럼 깊고 깊은 사랑의 맹세를 하면서 쓰였다. 물론 삼국지에서 조조(曹操)가 동탁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후 도주하면서 자신을 살려준 은인을 얘기하며 쓴 말이기도 했지만 이  때 ‘분골쇄신’의 의미는 ‘참혹한 죽음’을 뜻한다. 하여간 이 말은 무슨 일에 온힘을 기울여 매진(邁進)한다는 의지를 표현할 때 주로 쓰였는데, 목숨을 건 맹약이어서 함부로 쓰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요즘 300명의 선량(選良)을 뽑는 국회의원 선거 열기가 뜨겁다. 그런데 많은 후보자들의 입에서 ‘분골쇄신’이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터져 나온다. 국민과 지역 유권자들을 위해서는 몸이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는 다짐이니, 이 보다 더 한 국민과의 약속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제 명예와 권력을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나불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우리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권력과 명예를 잡고 나서는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오만한 태도로 변해버리는 권력자,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분골쇄신’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럼 분골쇄신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연인에게 사랑을 맹세한 이익이라는 남자는 약속을 지켰을까. 지방 관리에 임명된 이익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어머니가 미리 정해둔 여인과 약혼을 해버렸다. 약속을 저버린 이익은 곽소옥이 자신을 단념하도록 일부러 연락까지 끊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을 잊지 못한 곽소옥은 오직 이익(李益)만을 생각하면서 그를 찾아다니고, 급기야는 가진 돈을 다 써버려 가난해지면서 병까지 걸린다.

 

세월이 흐르고, 이런 사연을 안 곽소옥의 동네사람들이 일을 꾸며서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익이 곽소옥의 집에 당도한 날, 그녀는 연인(戀人)의 배반과 자신이 평생 겪었던 불행을 노래로 읊다가 숨을 거두고 만다. 그 후 이익은 곽소옥의 혼령에 시달리면서 평생을 불행하게 보냈으니, 그럴듯한 말로 사랑을 약속했지만 배신을 한 이익의 인생 말로도 안타깝다.

 

시간여행을 끝내고 오늘로 돌아와 보자. ‘분골쇄신’을 외치면서 표를 달라는 오늘 대한민국 국회의원후보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분골쇄신’이라는 말로 사랑을 맹세했지만 끝내는 배반을 하고 말았던 이익(李益)의 이야기는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송금호(소설가)

※외부 필진의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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