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너머 저편으로…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서승석 | 기사입력 2022/11/14 [11:25]

검은색 너머 저편으로…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서승석 | 입력 : 2022/11/14 [11:25]

평생 동안 검은색을 통하여 빛을 탐색해온 프랑스 현대화가 피에르 술라주가 2022년 10월 26일, 향년 102 세로 별세하였다. ‘검은색의 달인’이라 칭송되며 사랑받던 그의 서거를 애도하기 위하여, 루브르는 11월 2일 국민적 추모행사를 거행하였다.

 

2019년 겨울 어느 날, 필자는 ‘루브르 술라주 100세 기념전시회’를 참관하며 그의 미지의 검은 세계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 “나의 그림을 보는 사람은 나의 그림 속에 있다 Qui regarde ma peinture est dans ma peinture”라고 그는 말하지 않았던가? 빛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긴 세월동안 빛에 천착하며 어둠 속에 침잠하였을 화가의 숭고한 탐구여정을 유추해보며, 채광에 의하여 검정 화폭에 부딪치고 흡수되고 반사되고 튀어 오르며 명멸하는 빛의 조화를 한참동안 요지경 속을 바라보듯이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관람자의 시선의 움직임과 보는 각도에 따라서 빛은 형형색색으로 부서지고 흩어지며 조형적 효과를 훌륭히 연출하고 있었다. 그 빛을 오래 주시하고 있노라면, 거울처럼 제시된 공간인 적멸처럼 고요한 검은 화폭 앞에 서서, 우리는 잠시 호흡을 멈추고, 일순간에 생성되었다가 소멸되는 인간 실존의 허망함을 직시하게 된다. 

 

술라주의 회화의 묘미는 이렇듯, 검은색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온갖 색을 은닉한 검정색이 빛을 만나 피워 올리는 불꽃놀이 같은 현상학적 실존적 체험에 있다. 루브르 박물관 드농관에서 열리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특별기획전시회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생존 작가 술라주의 회화 세계를 우연히 엿보게 된 이 뜻밖의 행운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문인화를 배우며 먹 향에 익숙해진 필자로서는 술라주의 작품세계가 더욱 친숙하게 여겨졌다. 선불교적인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는 술라주의 그림은 그 후 서울에 돌아와서도, 때로는 새까만 연못 수면 위에 번지는 파문처럼 잔잔히 다가오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산사의 미풍에 스치는 대나무 잎새의 속삭임으로 고요히 다가오기도 하며, 명상의 세계로 필자를 유도하였다.        

 

술라주는 1919년 프랑스 아베롱의 로데즈, 장인들이 사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폴 세잔과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미술학교에 입학하려고 1939년 파리에 왔으나,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하다가, 나중에 ‘에콜 데 보자르 드 몽플리에’에서 수학하였다. 1940년, 나치 점령기간에는 창작활동을 중지하고 몽플리에 근처에서 농사를 지었다. 이 시기에 소니아 들로네를 만나 추상미술에 대한 관심을 갔게 되었다. 1946년 파리에 정착해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1949년 5월 25일 리디아 콩티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밝은 배경 위에 검은색 물감으로 강하고 두터운 붓터치로 그린 비구상작품을 선보인다. 1950년에는 더욱 강한 힘과 에너지를 발산하는 검고 굵은 직선으로 역동적인 작품을 선보인다. 1979년 이후 그는 화폭이 완전히 검은색으로 뒤덮인 ‘우트르누와르’ 시대를 연다. 

 

▲ Soulages au Louvre  © 서승석


‘우트르누와르Outrenoir’*1)란 술라주가 만든 합성어로서, ‘검은색 너머’ 혹은 ‘검은 그릇’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결국 그는 검은색이 ‘빛을 담는 그릇’으로서, 그의 작품이 검은색 이상의 그 무엇을 상징하는 세계를 함유하고 있음을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1) Outre : “...을 넘어서, 저쪽에, 이상으로, 이외에”를 뜻하는 전치사, “지나쳐서, 더 멀리”를 뜻 하는 부사, “(술·물 따위를 넣는) 가죽 부대, [비유] 그릇”을 뜻 하는 여성 명사

        

술라주는 루브르 전시회 때, 작품 설명으로 ‘우트르누와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힌다 : “우트르누와르 : 검은색은 밝음의 발신자가 된다. 그것은 바로 빛을 사로잡거나 거부하면서 회색빛 검은색들이나 짙은 검은색들을 태어나게 하는, 윤기 있고, 질기고, 고요하고, 펴지고, 어지러운 구조들의 차이들이다. 결과적으로 반사광 광택은 회색이고, 작품의 동화된 일부가 되어버린다 : 그곳에 빛이 들어가 회화를 받아내고, 검은색에 의하여 재생된 자신의 색채와 함께 회화를 재현한다.”*2)

*2) 텍스트 in <Soulages au Louvre>, Du 11 décembre 2019 au 9 mars 2022. l’expession est forte.”고 그가 말했듯이...  

 

요컨대 술라주의 그림은, 유화물감이나 아크릴 물감이라는 마티에르에 따라서 때로는 윤기 있게 매끄럽고, 때로는 거칠게 단단한 화면 위에, 마치 모래 위에 남긴 빗자루 자국같이 패인 흠집, 팽팽하게 당겨진 듯한 직선들, 출렁이는 물결 같은 곡선들 사이에서 산란되는 빛이 공간과 상호침투하며 이루어지는 현상학적인 회화의 세계다. ‘지각의 현상학’의 저자 메를로 퐁티가 언급하는 ‘인상으로서의 감각’을 체험하며, 순간적 순수감각의 우연적 특성을 실감하였다.

 

검은 화폭 위에서 생성되고 스러지는 이 신비로운 술라주의 빛은 또한 ‘죽음이 한낱 소멸이 아니라, 아름다움이 익어가는 과정’이라는 미의식을 일깨워주는 와비사비의 미적개념을 상기시켰다. 그는 일본에 관심이 많았고, 일본으로부터 1992년 ‘프리미엄 임페리얼Praemium inperiale’ 세계문화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동양적 철학의 향기가 묻어나는 이유이리다. 그는 또한 프랑스 정부로부터 2015년, 최고명예훈장 ‘그랑 크와 드 라 레지옹도뇌르Grand-croix de la Légion d’honneur‘를 수훈하였다.

 

술라주는 프랑스 표현주의미술 엥포르멜Informel과 같은 동시대의 예술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여 우리나라 이응로 화백에게 영향을 주기도 하였고, 한스 하르통, 세르주 폴리아코프, 니콜라 드 스타엘, 마크 로스코, 이브 클랭 그리고 페르낭 레제 등과도 교류하였다. 

 

1986년~1994년 사이에, 술라주는 자신이 처음으로 화가로서의 소명을 확인하였던 셍트 프와 드 콩크Sainte-Foy de Conques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실현한다. 이 작품은 투명하지 않고 반투명한 특별한 규격의 커다란 스테인드글라스 창이다. 

 

고향 로데즈에 위치한, 2014년 5월에 개관한 술라주 박물관에는 그가 기증한 250여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초기 작품으로부터 최근 작품까지를 망라하여 그의 예술적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으며, 특히 1947년~1948년에 갈색의 호두껍질 염료brou de noix를 사용하여 제작한 작품들도 대부분 여기에 보관되어 있다. 술라주는 100세에도 대작 3점을 구상하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행운을 누렸다.    

 

술라주의 예술세계는 어쩌면 선불교적인 무의 세계로서의 현전, 인간의 주관이나 이성에 의한 그 어떤 의미도 찾아볼 수 없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삼라만상의 현전을 보여주고자 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회화는 검은색 하나를 선택한 미니멀리즘적인 기교로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방법이 제한될수록, 예술적 표현력은 더욱 강하다Plus les moyens sont limités, plus l’expession est forte.”고 그가 말했듯이...  

 

서승석(미술평론가, 불문학박사, 한불문화예술협회 회장)

 


평론가(문학·미술)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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