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황혼의 엘레지…유종호 시집 ‘충북선’에 부쳐

서승석 | 기사입력 2022/08/12 [17:07]

보랏빛 황혼의 엘레지…유종호 시집 ‘충북선’에 부쳐

서승석 | 입력 : 2022/08/12 [17:07]

영문학자 유종호 교수님께서 이번에 두 번째 시집 ‘충북선’을 상재하셨다. 2004년, 첫 시집 ‘서산이 되고 청노새 되어’를 일흔 살에 선보인 이후, 2015년에서 2021년 사이에 쓰이어진 시들을 여기에 수록하였다. 

 

서문에서 “고령자의 소년회귀를 관대하게 보아주시길” 당부하며, 그에게 있어서 시 쓰기는 “시와 모국어를 향해 건네는 소소한 애정의 헌사요 정신 노화에 대처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라고 밝힌다. 아울러 “나이 들면서 삶이란 죽음으로부터의 도망이요 둔주”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조그만 일에 몰두하는 것이 도망자의 공포를 조금은 희석시켜 주리라는 기대에서 글쓰기를 멈추지 못 한다고 실토한다. 

 

 유종호 시집 충북선 (서정시학 출판)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죽음 속에 담긴 모든 무거움과 완만함에는 카롱(*1)의 낙인이 찍혀 있다. 넋을 가득 실은 나룻배는 언제나 가라앉으려 하고 있는 법. 죽음이 죽기를 두려워하고 물에 빠진 자가 난파를 두려워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이 놀라운 이미지! 죽음은 절대로 끝나지 않는 하나의 여행이다. 그것은 끝없는 위협의 조망이다. 카롱의 배는 언제나 지옥으로 가고 있다”(*2)고 말하였다. 

 

잔인한 시간의 파괴력의 위력을 절감하게 만드는 이 시집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역임하신 바 있는 평론가의 20여권의 비평적 에세이를 접하던 친숙한 독자들에게, 그의 새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지혜롭게 죽음의 공포에 맞서는 방법을 암시한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둔주’(「충북선을 내면서」), ‘그적의’(「백동전 네 잎」), ‘미거한’(「마음 가난하니」) 등 잊히어져 가는 어휘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황혼, 문득 온 세상이 숙연해지는 그 고즈넉한 시간. 한낮의 소란이 잠잠해지고, 어느덧 찬란한 태양이 자취를 감춘 뒤, 불현듯 돌아가야 할 집이 그리워지는… 그 때 바람이 귀엣말처럼 속삭인다 : 

 

따라오지 않으련?

지나가는 바람이 내 귀에 소곤댄다.

 

같이 가지 않으련?

지나가는 바람이 또 귀에 소곤댄다.

 

- ‘지나가는 바람이’ 전문 

 

이 인용 시는, 소년처럼 순수한 시적 화자가 신선처럼 하얀 백발을 휘날리며, 유유자적하게 바람과 소통을 하면서 자연과의 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풍경을 보여주는 시이다. 얼마나 찬연한 황혼기인가? 

 

찬장 앞에 서서

왜 왔는지 퍼뜩 생각나지 않아 

돌아온 거실 탁자엔 찻잔이 하나

그제야 생각나는 흑설탕 한 개

 

삶의 한복판에서도

왜 왔는지

왜 아픈지 모르고

우두커니 서 있었던 게 아닌가

 

허리를 다친 친구의 

부음 전화를 받고

아들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우두커니 앉아 있던 초저녁

눈에 들어온 달력엔

내 살날이 또 하루 줄어있다.

 

- ‘우두커니’ 전문 

 

짜릿하고 톡 쏘는 콜라나 사이다 맛이 아니라, 은은하고 감미로운 식혜나 구수한 숭늉 맛이 풍기는 시이다. 어둠은 빛이 드러냈던 사물의 실체를 지워버린다. 죽음 또한 그러하리니… 늙어간다는 일은 삶의 한복판에 서서도 왠지 몰라 우두머니 서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일까? 청회색 날개를 단 죽음의 천사가 입맞춤을 하면 우리는 조용히 따라 가야한다. 하루하루 줄어드는 좋은 날들.

 

충북선은 내 마음의 

자연사 박물관

출발의 셀레임은 언제나

종점의 허망으로 끝나고

달려와 사라지는 풍경에 끌리어

혼자만의 낮꿈을 즐겼지.

(중략)

충북선은 여전히 3등 노선

내 고독의 자연사 박물관

잃어버린 시간의 잔설殘雪이 푸르구나

 

- ‘충북선 忠北線’ 부분 

 

한 인생의 여정을 충북선에 몸을 실은 나그네의 심경에 빗대어 축약한 시이다. ‘설렘’으로 가득 찬 출발은 늘 ‘허망’하게 끝나버리기 마련이다. ‘남몰래 흘린 눈물’이며, 그 많던 ‘스러진 꿈’들도, ‘이르지 못할 그리움’처럼 어느덧 멀어지고(「남몰래 흘린 눈물」), ‘지갑이 앏아서 책장이나 뒤’지며 살아온 인생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종점을 향하여, 밤의 끝으로... 김종길 교수님을 비롯한 좋아했던 사람들은 이미 고인이 되어 ‘저승의 오리온 성좌’에서 빛나며 손짓하나 시인은 “조금은 더 머물고 싶다”(「새해 아침」)고 실토를 한다. 

 

읽지도 못할 책이

겹겹이 꽂혀 있는

책장은 우리 집 애물

오래된 나의 슬픔이다

작심하고 사들인 큰 책

이따금씩 펴 보면

청실홍실 밑줄이 쳐 있으나

읽어봐도 도무지 기억에 없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처럼 쓸쓸하게

청실홍실이 가는 소리를 내도다 

 

- ‘청실홍실’ 전문 

 

가장 애지중지했던 물건들이 단지 애물단지로 여겨지는 나이. 보석처럼 아끼던 책들조차 처치 곤란해지는 비애. 솔로몬처럼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전도서에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고, 아는 것이 많으면 걱정도 많더라.”고 하지만, 지식에 목이 말라 열심히 사들여 밑줄을 치며 읽고 또 읽던 책들. 스폰지처럼 지식를 흡수하던 젊은 시절의 총명함은 이제 온데간데없고 모든 것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여수엑스포’ 직전 어느 해, 한국시인협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탄 여수행 버스에서 필자의 앞자리에 앉으셨던 저명한 김병익 교수께서 “대한민국 최고의 기억력을 가진 당대 문단의 3대 천재는 김종길, 유종호, 이근배”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으시던 것을 기억한다. 동서고금의 작가의 명문장을 인용해가며 종횡난무하는 탁월한 지력으로 명 강의를 하시는 그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월은 천재의 기억력에도 타격을 주었나보다.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미술사조인 바니타스(vanitas)란 ‘덧없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해골이 있는 초상화나 정물화를 벽에 걸어놓거나, 가끔은 진짜 해골을 구해다 방을 장식하곤 했던 것을 칭한다.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은 그저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신의 섭리의 상징일 뿐이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신’마저 ‘대자연’으로 대체되어, 바니타스는 대자연의 섭리를 상징하게 되고, 17세기를 정점으로 하여 바니타스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다. 이 허망함에 맞서, 고령화시대에 우리는 과연 노화의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따스한 남향 아파트 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 틀어 놓고

아끼듯 마시는

하루 한 잔의 아침 커피

늘그막의 나른한 나태를

행복이라 우기며

떼쓰는 사이

섣달은 가고 정월이 와 있구나

가차 없이 또 한 살 늙었구나 

 

- ‘다시 또 한 살’ 전문 

 

마치 채도가 낮은 아름다운 마리 로랑생의 한 폭의 수채화 풍경처럼 펼쳐진 이 인용시의 감미로운 아침에는 노인의 비애가 서려있다. 경쾌한 햇살과 바흐의 선율과 커피향이 어우러지는 적막한 평화가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노후에 즐기는 나태의 달콤함을 “행복이라 우기며/떼쓰는 사이” 어김없이 다가와 죽비처럼 시인의 어깨를 매섭게 내리치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에 대한 자각으로 인해 일시 도취되었던 소소한 행복감은 불현듯 전복되고 만다.     

 

시 ‘이 비교문학사-김수영과 알베르 카뮈’에서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최고의 프랑스인”이라 예찬한 말에 동의하며 시인이 “진정한 레지스탕스 활동가”라 칭한 카뮈는 그의 ‘작가수첩’에서 “나는 헤엄을 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듯이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의 육체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유종호도 또한 그러하리라. 어느 날 직립인간이 두 다리로 설 수 없게 되어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 올지라도, 펜을 쥘 여력이 있는 한 시인은 글을 써야 하리라. 고귀한 색이라 불려온 신비스런 보라색은 직관력, 통찰력, 상상력과 연관되어 있고, 우아함과 품위를 상징한다. 

 

글쓰기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희석하며, 빨강과 파랑 사이에 있으면서 어떠한 극단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감각”을 상징하는 보랏빛처럼, 아직도 냉절한 지성과 명석한 통찰력을 간직한 석학의 앞날이 아무쪼록 덜 고달프기만을 빈다. 

 

죽음은 잔혹한 집행자의 얼굴로, 또는 충실한 동반자의 모습으로, 때론 감미로운 위안자의 이미지로 끊임없이 예술작품에 출현하며, 예술가들의 뮤즈로 사랑을 받아왔다. 어차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부디 실존적 공포에서 벗어나서 죽음과 벗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이를 경건하게 받아들이고, 시를 통하여 새로운 죽음의 미학을 펼쳐보는 일도 바람직하리라 생각된다. 시 「썩은 시체Une Charogne」에서 마카브르(*3)를 유미화 하는 방향으로 갔던 보들레르처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4)

 

(*1) Charon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에레보스와 닉스의 아들. 저승으로 가는 내의 나루터를 지키는 늙은 뱃사공으로, 스틱스(Styx)와 아케론의 강을 건너 저승에 이르도록 하여 준다고 한다. (*2) 재인용, in 김화영, 『문학과 상상력의 연구 - 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 파주, 문학동네, 1998, 152쪽. (*3) 마카브르 macarbre : 일반적으로 썩은 시체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을 가리키는 용어. 중세 마카브르의 3대 장르 : <3인의 생자와 사자>, <죽음의 춤>, <죽음의 승리> (*4) 죽음의 상기. 죽음을 항상 생각하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라.

 

서승석(문학평론가, 불문학박사, 한불문화예술협회 회장)

 


평론가(문학·미술)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