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와 보낸 한 철

서승석 | 기사입력 2022/02/17 [12:18]

모네와 보낸 한 철

서승석 | 입력 : 2022/02/17 [12:18]

섬세한 붓끝으로 시간을 조각하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1840-1926)와 소중한 한 철을 보냈다. 시적 언어가 해갈시켜주지 못하는 갈증을 풀기 위해 그의 그림을 모작하고, 그의 회화기법을 활용하여 풍경화를 그려보기도 하면서, 마침내 회화의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느껴보았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화폭에 모네의 민첩한 붓터치로 물감을 쌓아 올리는 맛과, 스펙트럼의 다양한 색상을 사용하며 점묘화법으로 화면 전체에 궁극의 화음을 이루는 울림을 부여하도록 하는 기술적 경험은, 점차 몰아지경에 이르러 심장의 박동 소리와 경쾌한 붓터치 소리와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파리 유학 시절에 두 차례 방문했던 지베르니에서, 그리고 여러 박물관에서 자주 만나 보았던 그의 작품들이 던져준 충격들과 2년 전에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 ‘인상-해돋이’를 만났던 벅찬 감동이 새삼 되살아났다.

 

▲ '모네에게경의를' 서승석作, 캔버스에 유채, 2021년, 72.7x60.6cm


모네는 1872년 르 아브르에 체류하며 창문 너머의 안개 자욱한 풍경 ‘인상-해돋이’를 그린다. 그는 이 그림으로 당대 사람들로부터의 차가운 냉대와 조롱을 감수해야 했다. 아카데미는 전통적인 예술 규범을 벗어난 모네를 “서투른 칠장이” 화가라 비하하기도 하고, 미술비평가 루이 르르와는 비꼬는 어조로 그를 ‘인상파’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는 이 제목에서 유래한 인상주의 화풍의 대가가 된다. 그는 살아생전 말년에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1950년대 이후에 추상파의 스승으로 추앙받으며 전세계에서 명성을 누리며 미술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파트리시아 프리드카라사 지음, 김은희·심소정 옮김, ‘회화의 거장들’, 서울, 자음과 모음, 2011년, 294-299쪽 참조.

 

“나는 동일한 빛 속에서의 순간적인 모습, 특히 사물의 겉모양을 각기 다른 효과로 표현한 일련의 연작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열정과 노력을 쏟아부었다”라고 말한 모네는, 같은 주제가 각기 다른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모습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일에 전념했다. 자신만의 미학을 창조해가며, 그는 야외에서 풍경을 연구해가며 자유로운 기법으로 묘사하며 빛의 순간성과 움직임을 부단히 추구하였다. ‘건초더미’(1890-1891)나 ‘루앙대성당’(1892-1893), 그리고 파리 튈르리 정원의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만나 볼 수 있는 ‘수련’(1914-1918/1920-1926) 연작들은 이런 탐구 결과물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체계화의 규범화를 배제하며 그림을 그렸던 그는 오직 ‘나만이 받은 인상’을 중시하고, 자신의 눈과 창조적 직감을 믿으며 작품에 일체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였다. 특히 민첩하고 분할된 붓놀림으로 옅고 두터운 붓터치를 혼용해가며 자유로운 구사를 한 그는,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고 바로 캔버스에 바르는 ‘단일 색채 분할법’과 ‘빛과 색채 음영기법’을 창조한다.

 

▲ Claude Monet 클로드 모네 (1840-1926)


모네의 빛에 대한 탐색은 시간에 대한 탐색으로 귀결된다. 모델이었던 그의 첫 번째 아내의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단말마의 고통을 담은 ‘카미유의 임종’(1879)은 시시각각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는 과정을, 흰색과 검은색이 주조를 이르며 거칠게 종횡무진하는 숨 가쁜 필치로 파스텔화와 흡사하게 묘사하고 있다. 필자는 오르세 박물관에서 섬뜩한 이 그림 앞에 처음 선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어쩌면 모네는 32세에 자궁암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아내를 보며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사경을 헤매는 아내를 한낱 그림의 오브제로 대하는 화가가 자못 잔인하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모네는 그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어느날 무척 사랑했던 사람이 죽어갑니다. 점점 창백해지는 그녀의 얼굴, 그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 얼굴을 관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도 스스로 놀랬습니다. 내가 그토록 아꼈던 그녀의 모습을 붙잡으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기질적으로 변화하는 그녀의 얼굴빛들에 대한 전율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르장티유의 양귀비꽃’(1873), ‘양산을 쓴 여인’(1875), ‘기모노를 입은 카미유’(1875-6) 등에 영감을 준 화가의 영원한 뮤즈는 이렇게 또 한편의 마지막 불멸의 그림을 남겨주며 사라졌다. 이처럼 모네의 집착에 가까운 빛에 대한 탐색은 결국 파괴력과 창조력을 오가는 시간의 위력에 대한 탐색과 다름이 아니리라.

 

독일의 문호 괴테는 1810년에 최초로 ‘색채론’을 발표하여 화가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인상주의의 선구자 터너는 괴테의 색채론에 심취해 있었다고 한다. “색은 바로 빛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며, 터너는 그의 색채론을 적용하여 빛이 가득한 공간을 채우며 수많은 작품을 통해 빛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분위기ambiance를 뜻하는 불어 단어 ‘아트모스페르 atmosphère’ 속에는 공기air가 들어있다. 화폭에 빛을 끌어들이고, 생동감 있는 대기 중의 공기를 표현하고자 한 ‘외광파’의 움직임은 그 당시 과학과 철학의 발달로 기존 가치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특히 막스 보른의 ‘양자역학’과 “사물의 실체를 정확하게 관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물리학계뿐만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전에 입자로만 생각했던 빛의 실체가 비로소 파동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 서승석 '파리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에서


알베르티는 ‘회화론’에서 “자연을 모방하는 것보다 미로 향하는 더 확실한 길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어두침침한 화실에서 벗어나, 창문 너머의 세계로 시선을 돌리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생동감 있는 우주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 인상파 화가들의 업적은 위대하다, 현대회화의 아버지라 칭송되는 폴 세잔은 파리에서 피사로·모네·드가·르누아르 등과 사귀었고, 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며 서양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주었다. 특히 말년에 심혈을 기울여 그린 ‘셍트 빅트와르 산’ 연작은 독특한 색채와 터치로 하늘과 산과 들판에 충만한 대기의 진동을 느끼게 해준다. 재현을 포기한 현대 화가 베이컨은 ‘감각’을 그리려 하였다. 그리고 클레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려 하였으며, 들뢰즈는 회화가 가시화해야 할 이 ‘비가시적인 것’을 ‘힘’이라 일컬으며 결국 “궁극적인 것은 리듬과 감각 사이의 관계”라고 결론지었다. 이렇게 현대회화는 그를 이어 새로운 이론을 전개하며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나는 내 삶을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이 내 직분이고 내 사업이다”라고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고백했다. 교육자이셨던 필자의 아버지는 은퇴 후 서예에 몰두하셨다. 붓을 잡은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이 굽어져서 펴지지 않을 정도로! 비록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야 그의 손을 주물러드리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시서음화詩書音畫’로 자신을 수양하던 옛 선비들처럼 그는 생명이 다할 때까지 자기완성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셨다. 아마도 이런 아버지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받들어, 보다 나은 내일의 내 모습을 위해 정진하는 길만이 이 질식할 것만 같은 코로나19 시대의 현실을 넘어서는 길이리라. 자신의 소명을 다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붓을 든다.

 

서승석(문학평론가, 불문학박사, 한불문화예술협회 회장)

▲ 서승석 미술평론가

 

평론가(문학·미술)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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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ri 2022/02/17 [19:46] 수정 | 삭제
  • 새로움의 디테일까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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