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용 화백의 회화세계…숭고함을 향한 추상적 사유

서승석 | 기사입력 2021/07/15 [15:43]

박종용 화백의 회화세계…숭고함을 향한 추상적 사유

서승석 | 입력 : 2021/07/15 [15:43]

박종용 화백의 ‘결’은 생명의 리듬이다. 그의 성스러운 결의 향연 속에는 심장의 박동소리, 자연의 숨결, 신의 음성이 은닉되어 있다.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시키는 깊은 산사의 청아한 풍경소리, 속세의 번뇌를 잊게 하는 목탁소리, 신비로운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잔잔한 종소리의 여운이 담겨있다. “결은 나의 분신이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그의 회화 속에서, 우리는 때로 은은히 울려 퍼지는 우주만물의 고통과 환희의 송가를 감지하기도 한다.

 

자신의 그림에 음악적 선율과 감동을 그려 넣을 줄 알았던 파울 클레에 의하면 “현대예술의 본질은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에 있다.”고 한다.

 

비온 후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지개에 의해서, 태양으로부터 8분 20초 동안 지구를 향해 달려온 빛의 파장이 작은 물방울 미립자에 의해 산란되어 형성된 색채의 띠를 보며 황홀감을 느끼듯이, 우리는 박종용의 작품세계에서 숭고함의 현현을 체험한다. 인간 존재의 신비를 장엄한 우주적 질서에 투영시키며 생명의 본질을 파악하려 처절하게 애쓰고 있는 그의 추상적 사유는 ‘결’의 파도를 타고 무한대로 펼쳐 나아가고 있다. 

 

수수께끼

 

재현을 거부하는 현대미술은 마치 실체가 없는 그림자를 잡으려는 듯, 때로는 공허한 몸짓으로, 때로는 진지한 몸짓으로 끊임없는 변화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 우리는 난해한 현대미술의 미궁 속에 빠져서 길을 잃는다.

 

메를로-퐁티는 1961년 출간된 「눈과 마음L’OEil et l’esprit」이란 에세이에서 ‘본다는 행위vision’가 회화에 미치는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회화는 범속한 비전이 비가시적이라 믿고 있는 것에다 가시적 존재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다시 말해서 “회화란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가시적인 채로 있는 것을 가시적이게 하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하여 사물은 회화 속에서 ‘탄생’하게 된다. 현대회화의 역사는 “형이상학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는 깊이·색·선·운동에 관한 고찰을 통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병남이 『미학강의』에서 언급하듯이,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현대회화의 목표는 “사물의 껍데기”를 파괴하여 사물의 “내면”을 보여주는 일이며, 이 사물이 어떻게 사물이 되며, 나아가 이 세계가 어떻게 세계가 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되고 있다.   

 

한편, 현대미학을 통찰하고, 현대미술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주는 진중권이 저서 『현대미학 강의』에서 지적하듯이,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 색채론, 공학, 해부학을 통해서 “강박적으로 사물을 닮게 그리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 회화의 ‘재현의 원리’를 최초로 파괴한 화가는 바로 칸딘스키이다. 가시적 대상을 그대로 닮게 그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된 화가는 비로소 화폭에서 자유롭게 유희한다. 클레에 의해서 재현 공간은 붕괴되고, 그림의 재현 작용은 중단되기에 이른다. 이어서 마그리트는 ‘유사’를 가지고 재현을 파괴한다. 클레와 칸딘스키가 회화의 본질을 “보이지 않는 것의 가시화”에 두고 보이는 것들의 묘사를 포기한 반면, 마그리트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사실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환기되는 신비”에 역점을 두고 여전히 보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박종용도 이와 마찬가지로 마그리트의 입장을 취한다.

 

톰 울프는 저서 『현대미술의 상실』에서 ‘보는 것이 곧 아는 것’이 아니고 ‘아는 것이 곧 보는 것Believing is Seeing’이라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작품은 오직 문의文意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현대적’이라는 단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사람들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형용사로 대두되었다. 피카소가 미술계에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디아길레프 발레단의 무대배경을 그려준 1918년이었다. 나진스키의 황홀한 현대무용의 성공과 함께 피카소도 상류사회에 급부상한다. 한편 폴록은, 막스 에른스트의 부인이었고 초현실주의에 매료되었던 페기 구겐하임에 의하여 발탁되어,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자동기술기법’을 채택하여 그림을 그리면서, 1943년 한 해 동안에 비약적으로 정상에 오르게 된다. 뉴욕 미술계의 중심인물이었던 페기 구겐하임과 그린버그의 이론이 폴록의 명성을 뒷받침해주었다.  

 

스타인버그에 의하면 현대미술은 항상 ‘어떠한 가치가 확립되지 않은 새벽무대 위에’ 나타나고 ‘불안 속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불안이 전달되어 작품 감상자가 “순수한 존재론적 궁지”에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현대미술의 기능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심오하고 독창적인 작품은 처음에는 추하게 보이는 법이다.”라고 단언한다. 현대미술은 고전미인 ‘아름다운 미’와 ‘숭고미’에 ‘추한 미’까지 더해지며 관람객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당혹감을 선사하기도 한다. 

 

2004년경부터 결을 테마로 한 추상예술을 시도하고 있는 박종용의 미술세계는, 이처럼 이론으로 무장한 변화무쌍한 세계적 현대미술사 속에서 과연 어디쯤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박종용이 지향하고 있는 추상예술의 미학적 근간은 무엇일까? 해독을 요하는 박종용 미술세계의 기호와 비밀을 어떻게 풀 것인가?

 

생명의 리듬  

 

가까운 것을 잘 보기 위해서는 눈을 부릅떠야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한다. 심장의 고동소리, 우주의 침묵을 그리기 위해서는 내면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야 하리라.

 

▲ <작품1>(왼쪽) ‘무제’, 162x130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8. (오른쪽) ‘무제’, 130x162cm, 캔버스에 고령토, 석채, 2018


<작품1>에서는 정교한 점이나 국화꽃모양 등을 도장으로 찍은 뒤 백토로 분장하고 닦아내서 도장이 찍힌 부분에 백토가 감입되어 흰 무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인화기법으로 만든 분청사기를 연상시킨다. 고령토와 석채를 주재료로 사용하여 은은한 향토미와 소박함을 더하고 있는 이 작품은, 일종의 상감기법인 분청사기인화기법과는 반대로 사실 도드라진 무늬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일정한 연속무늬가 분청을 만드는 도공의 분주한 손놀림을 상기시킨다. 

 

8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60여 년간, 평면과 입체작품, 민화와 도자기, 동양화와 서양화, 간판, 불화佛畫 등을 막론하고, 다양한 예술분야를 섭렵하며 내공을 쌓아온 박종용은 <작품1>에서 분청도자기에서 느껴지는 정교함과 순결함을 차용하면서 생명의 리듬을 되살려내고 있다. 

 

재현을 포기하고 베이컨이 그리고자 한 것은 ‘감각’이었다. 마치, 베이컨이 잔혹함의 원초적 재현을 위해 얼굴을 뭉개버리고 형체를 뒤틀어버리고, 폴록이 억압된 무의식을 폭로하기 위해 페인트물감을 뿌려대면서, 서양의 현대회화가 화폭에 난폭하게 가해온 폭력과 난무하는 무질서를 수습하려는 듯, 박종용은 이 작품에서 카오스를 향해 흩어지고 있는 우주적 에너지를 모아 화폭에 응축시키며 코스모스적인 세계를 다시 정립시키고 있다. 단색화가 주는 차분함으로 동양적 조화와 소박함, 고요한 성스러움을 훌륭하게 재현시키고 있다. 요란함이 아닌 고요함 속에서 선한 인간의 본성을 일깨우고 있다.   

 

빅 뱅Big Bang과 빅 프리즈Big Freeze

 

 데카르트에 있어서 ‘비전’은 조건부의 사유이다. 왜냐하면 ‘보기’ 위해서는 사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신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발생되는’ 사유이기 때문이다. 박종용 회화의 ‘말없는 사유’를 어떻게 유추할 것인가?

 

▲ <작품2> 무제(‘결의 빛’) 333.3x218.2cm. Mixed media(고령토, 석채). 2020


<작품2. 무제(‘결의 빛’)>에서 작가는 개화하는 꽃잎의 모양새를 율동적인 결로 묘사함으로써, 우주 속에 내재한 움직이는 힘의 역동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는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은 다양한 철학적·과학적·신학적 이론을 배출했다. 그 중에서도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현재 빅 뱅과 빅 프리즈가 유력한 이론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주기원론인 빅 뱅에 의하면 우주는 한 점에서 무한히 팽창하였다고 한다. 우주종말론인 빅 프리즈에 의하면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여 열역학적으로 엔트로피가 극도로 높아져 결국에는 모든 입자가 붕괴하고 아원자만 남게 되는 종말을 맞게 된다고 한다. 엔트로피entropy란 ‘무질서도randomness, disorder’를 말하는데, 열역학 제2법칙에서 설명하는 자연현상의 물질의 상태나 에너지의 흐름을 설명하는 열역학적 상태함수를 말한다. 박종용의 회화세계는 이러한 우주 과학적 신비를 푸는 열쇠를 은밀히 제공하고 있다.

 

파국을 향해 치닫는 현실, 불안한 미래, 환경파괴로 인한 종말론적 장면을 응시하면서, 폭력적 독단성과 천박성이 난무하는 암울한 현대 사회에, 예술은 이제 고귀한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희망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릴 수 있도록 영감을 주어야 한다. 더 이상 예술이 한낱 인식론적 대상으로 머물기만 해서는 아니 되고, 존재론적 미학의 실현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흉측함과 신성함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구원의 빛을, 변화무쌍한 자연을 절제미로 참하게 다스릴 줄 아는 박종용의 ‘빛의 결’ 속에서 찾는다.

 

▲ <작품3> 무제(‘결의 빛’) 259.1×193.9cm Mixed media(석채 등) 2020


들뢰즈에게 있어서 회화가 가시화해야 할 ‘비가시적인 것’은 바로 ‘힘’이었다. 이 힘을 그는 ‘리듬’이라 부른다. 들뢰즈는 “궁극적인 것은 리듬과 감각 사이의 관계”라 단언한다. 박종용의 <작품 3>에서는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각진 결이 빛의 시원을 향해 요동친다. 빛과 그림자의 환상적인 무도회이다. 결을 ‘빛의 예술’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야곱의 사다리’를 연상시킨다. 마치 샤갈의 동 제목의 그림 속에서처럼 천사들이 오르내리는, 야곱이 꿈에 보았다는 하늘에 닿는 다리인 ‘야곱의 사다리’(성경 창세기 28장)같이, 박종용이 제시하는 이 빛의 결을 따라가면 우리도 마침내 하늘에 이를 것 같은 환상에 빠진다. 이 빛의 물결은 ‘최초로 빛이 있었다.’는 창세기의 그 빛의 시원에 이를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빅뱅 이후에도 최초로 빛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그 빛에 이르는 길을 이 작품은 예시하고 있다. 마치 블랙홀로 빨려들 듯, 우리는 이 강력한 빛의 힘에 흡입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기쁨을 맛본다. 작가는 이 작품의 통일성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뛰어넘는 무한을 향한 숭고한 힘을 실현시키고 있다. 순수한 미적 체험이 존재론적 사건이 되는 순간이다.

 

작가는 ‘결의 빛’ 창작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 “초기 아트지를 활용한 형상의 부침 및 스케치와 동시에  세밀한 도면 작성과정 등을 거친 다음, 아트지 등을 뜯어내고 <‘결’ 속의 빛의 예술>로의 완성을 위한 채색작업 등에 돌입한다. ‘결의 빛’ 창작을 위해 흰색부터 검정색까지 통상 8단계의 채색과정을 거쳐 음영의 강약을 미세하게 표현하여 빛의 굴절(강약)을 이용한 ‘결의 빛’을 완성시켜나간다.” 그는 이처럼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을 통해 수많은 점들을 응집·확산시키면서 자신의 철학을 빛의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 <작품4>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무제’ 92×116cm mixed media(석채 등) 2018. ‘무제’ 130×162cm mixed media(석채 등) 2018. ‘무제’ 162×130cm mixed media(석채 등) 2019. ‘무제’ 130×162cm mixed media(석채 등) 2018.

 

<작품4>의 무제(130×162cm mixed media(석채 등, 2018)는 오방색의 원들이 팽이처럼 돌아가며 생명력을 북돋우고 있다. 마치 상모놀이를 하듯, 신바람 나는 한국적 정서를 함축시키고 있다. 팽이나 상모놀이나 리듬을 살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돌려야하고,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자전과 공전을 계속하고 있는 지구와 태양계가 그렇듯, 서로를 지탱하는 에너지와 생명력은 지속적인 움직임 속에서 생성된다. 바람개비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시각적으로 가시화 한다. 우주의 보이지 않는 힘들의 운동성이, 오방색으로 잘 연결된 이 작품 속에서 되살아난다. 고운 색채의 결이 오묘한 우주만물의 결을 아우르며 더없이 조화롭게 리듬을 증폭시키고 있다.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예술”을 갈구하며, 박종용은 2005년부터 추상작업에 더욱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주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만유萬有의 결’을 실현시킨 이 작품 속의 생동감이 그의 예술을 영원히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이다. 세상의 부조화와 무질서를 순화시키고 잠재우는 결의 힘을 과시하며......  

 

희망의 빛을 향하여

 

박종용은 구상적인 미술양식과 추상적인 미술양식 모두를 수용하면서, 리듬을 회화의 근원적인 중요한 요소로 여겼던 파울 클레와 절대주의 운동의 창안자로서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미니멀리즘의 효시였던 카지미르 말레비치 사이에서, 창의적인 자신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플라톤은 미를 의미하는 칼로스kalos와 선을 의미하는 아가톤agathon이 합쳐진 ‘칼로카가티아kalokagathia’ 즉, ‘미와 선’을 하나로 인식했다. 박종용의 회화에서 그리스인들의 이상이었던 미와 덕이 하나로 실현되는 칼로카가티아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

 

코로나19가 강타한 지구촌은 역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정신적 폐허 위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울 예술의 힘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 서로 위로받고, 치유를 하고, 사랑을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박종용의 회화는 침묵의 언어로 잘 드러내 줄 것이다. 하여 인류가 괴멸하지 않게, 노아의 방주처럼 우리를 새 세상으로 인도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구름 속에 다시  나타날 비둘기와 희망의 무지개를 기다리며......

 

포스트모더니즘은 ‘숭고의 미학’을 표방한다. 고대의 롱기누스가 쓴 『숭고에 관하여』에서 “위대함은 청중을 설득시키지 않는다. 그들을 도취시킨다.”고 하였다. 숭고의 본질은 신적 영감에 있다고 보았던 롱기누스에게 진정한 예술은 마약처럼 도취시키고 열광시키는 것이었다. 박종용의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과 숭고함을 향한 추상적 사유가 좋은 결실을 맺어 전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을 매혹시키고, 그들에게 신적인 영감을 주고 영원히 사랑받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1) 오병남, 『미학강의』,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년, 357-385쪽 참조.  2) 오병남, 『미학강의』,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년, 379쪽.   3) 톰 울프, 『현대미술의 상실』, 파주, 아트북스, 2003년, 12쪽.

 

2021.  07.   . 서승석(미술평론가·불문학박사)

 

▲ 서승석 미술평론가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평론가(문학·미술)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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