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이대흠

서대선 | 기사입력 2011/11/07 [11:13]

이 아침의 시 / 이대흠

서대선 | 입력 : 2011/11/07 [11:13]
옛날 우표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먼 데 있는 그대에게 나를 태워 보낼 때
우표를 혀끝으로 붙이면
내 마음도 찰싹 붙어서 그대를 내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지 혀가 풀이 되어
그대와 나를 이었던 옛날 우표
 
그건 다만 추억 속에서나 있었을 뿐이지
어떤 본드나 풀보다도
서로를 단단히 묶을 수 있었던 시절
그대가 아무리 먼 곳에 있더라도
우리는 떨어질 수 없었지
 
혀가 풀이었던 시절이 있었지
사람의 말이 푸르게 돋아
순이 되고 싹이 되고
이파리가 되어 펄럭이다가
마침내 꽃으로 달아올랐던 시절
 
그대의 손끝에서 만져질 때마다
내 혀는 얼마나 달아올랐을까
그대 혀가 내게로 올 때마다
나는 얼마나 뜨거운 꿈을 꾸었던가
 
그대의 말과 나의 꿈이 초원을 이루고
이따끔은 배부른 말 떼가 언덕을 오르곤 하였지
세상에서 가장 맑은 바람이 혀로 들고
세상에서 가장 순한 귀들이 풀로 듣던 시절
 
그런 옛날이 내게도 있었지
 
 
# 그래요. “그런 옛날이” 있었지요. “뒤 돌아 보면 머물러 있을 것만 같은 청춘”의 갈피 속에 우체부가 간절하게 기다려지던 날들. “그런 옛날이” 있었어요. 하루에도 여러 번 우편함을 열어보던 날들, 그리운 이 에게서 오는 편지를 들고 대문을 들어서는 우체부 아저씨가 그리도 반갑고 고마웠던 그런 날들이 있었어요. 다른 우편물들 속에서 갸웃 얼굴을 내민 그리운 이의 글씨체가 담긴 편지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편지가 그 사람인 듯 가슴에 꼬옥 안아 보았던 시절, 밀물처럼 차오르는 그리운 이의 숨소리에 두근거리며 얼른 방으로 들어가 풀 대신 "혀"로 붙였을 우표에 가만히 입술을 눌러보던 “그런 옛날”이 있었지요.
 
우표가 없던 시절에는 편지를 받는 사람이 우편요금을 현금으로 지불 했다는군요. 교통 시설도 원활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우편요금이 너무도 비싸서 웬만한 사람들은 우편을 이용 할 엄두조차 내지 못 했었다는 데, 1840년 5월 6일 근대 우편의 아버지라고 불리 우는 영국의 교육학자 출신의 로랜드 힐(Rowland Hill, 1795-1879)에 의해 우표 사용이 실용화  되면서 일반 사람들도 편지를 보낼 수 있는 멋진 날이 도래 했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표가 최초로 발행 된 것은 1884년 11월 18일이랍니다. 그 당시는 우표란 용어 대신 한글로 “대조선국 우초”, 영문으로는“COREAN POST"라고 표기 하였답니다.
 
”먼 데 있는 그대에게 나를 태워 보낼 때/우표를 혀끝으로 붙이면/내 마음도 찰싹 붙어서 그대를 내 쪽으로/끌어당길 수 있었지 혀가 풀이 되어/그대와 나를 이었던“ 우표를 붙인 편지보다는 메일이나 트위터, 페이스북등과 같은 매체의 발달과 지구 반대편에서도 서로 화상 통화가 가능한 세상에서, “기다림과 두근거림”이 직조되는 “우표 붙인 편지”의 역할이 거세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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