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 이지엽

서대선 | 기사입력 2011/10/16 [23:38]

이 아침의 시 / 이지엽

서대선 | 입력 : 2011/10/16 [23:38]
저 사람 때문에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된 거야?
 
추호의 의심할 바 없이 나는 그를 지목했다
엄지는 하늘을 가리키고
검지는 늘 굼뜨기만 한 그를 의기양양하게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
나머지 세 손가락, 분명 구부렸는데
 
그 구부린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바로 나였다
 
 
# 쫒아가서 벼락을 맞으면, 네 탓일까 내 탓일까 벼락 탓일까요? 사람들은 어떤 일이 터지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를 따져보게 되지요. 어떤 사건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찿는 것을 귀인(attribution)이라고 한답니다.
 
Weiner(1972)는 어떤 행동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후속행동이 어떻게 달라지는 가를 알아보았지요. 즉, 행동의 원인을 개인 내부에서 찿는 가, 외부에서 찿는 가에 대한 인과소재(locus of causality)의 차원과 그 원인이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알아보는 안정성(stability)의 차원, 그리고 그 원인이 통제가 가능한가를 알아보는 통제가능성(controllability)의 차원에 의해 결과 행동을 알아볼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귀인의 결과는 정서 반응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답니다. 예컨대, 어떤 원인을 자신의 내부귀인으로 돌리면, 양심적이지만 지나치게 되면, 수치심과 우울증을 동반할 수 도 있다는 군요. 또한 모든 사건을 외부귀인으로만 돌리게 되면 뻔뻔해지고,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한 성향으로 흘러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된 거야?/추호의 의심할 바 없이 나는 그를 지목했다/엄지는 하늘을 가리키고/검지는 늘 굼뜨기만 한 그를 의기양양하게 가리”켜,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고 신중하게 알아보기보다는 이렇게 외부귀인을 쓰는 것이 현실 속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나머지 세 손가락, 분명 구부렸는데/그 구부린 손가락이/가리킨 곳은/바로 나”일 수 도 있거든요. 그 원인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안정적이고 변하지 않는 상태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선 “인과소재(locus of causality), 안정성(stability), 통제가능성(controllability)”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필요하겠지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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