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전의 방식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63)

홍일표 | 기사입력 2011/10/10 [10:06]

응전의 방식

홍일표의 좋은 시 찾아 읽기(63)

홍일표 | 입력 : 2011/10/10 [10:06]
굿바이 줄리
 
                    이현승
 
 죽은 비둘기 한 마리를 본 후로
 바깥은 없다.
 비 맞는 주검을 보면서부터
 마음은 시종 비를 맞고 있다.
 
 칠월엔 모든 것이 흘러넘친다.
 토사는 주택가를 덮치고
 우듬지까지 뻘로 칠을 한 강변의 나무들.
 강이 토한 자리에선 바닥의 냄새가 진동한다.
 
 맞은 자릴 또 맞는 사람의 표정으로,
 세간은 모두 집밖으로 나와 비를 맞는다.
 씻다 씻다 팽개쳐 둔 흙탕을
 집에 앉아서도 비를 맞는 사람 대신
 조용히 지우는 것도 빗줄기.
 
 혈흔처럼 씻겨내려가는 흙탕물을 본다.
 훼손되는 범죄현장을 지켜보는 수사관의 심정으로
 흔적을 지우는 흔적을 본다.
 
 아픈 자리는 또 맞아도 아프다.
 내려꽂히는 빗줄기.
 쇠창살 같은 빗줄기.
 이제 그만 이곳을 나가고 싶다.
 
 
# 현실 재현에 충실한 시들은 대개 상투성과 평면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단발적인 시적 감흥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사유의 깊이가 결여된 시들이 갖는 한계이다. 이현승은 현실을 충실하게 읽어내면서 그 이면의 풍경까지도 드러낼  줄 아는 눈 밝은 시인이다.
 
폭우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의 암유이다. ‘비 맞는 주검’으로 인해 화자의 마음은 시종 비를 맞고 있는 것. 폭우는 주택가와 나무를 삼키고, 주위에는 온통 바닥의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다. ‘맞은 자릴 또 맞는 사람’은 비극적 정황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사람일 터이고, 집안에 있어야 할 세간은 집밖으로 나와 난폭한 비의 행태를 견디고 있는 중이다. 화자는 그것을 객관적 풍경으로 바라보면서 ‘집에 앉아서도 비를 맞는’ 자이지만,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 흙탕이 되어 현실의 고비를 힘겹게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흙탕물’은 ‘혈흔’의 등가로서 생의 암울한 현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격앙된 모습으로 현실을 대면하지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현실을 응시하는 객관적 시선을 견지한다. 이러한 자세가 ‘훼손되는 범죄현장을 지켜보는 수사관의 심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유를 가지고 살풍경한 현실에 응전하는 삶의 한 방식이다. ‘흔적을 지우는 흔적’을 바라보면서 아수라 같은 생의 저편에 슬쩍 눈길을 보내지만 현실은 여전히 고통의 연속이다. 폭압적 현실의 횡포에 ‘아픈 자리는 또 맞아도 아프고’ 빗줄기는 이제 쇠창살로 나를 가두는 억압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화자는 ‘이제 그만 이곳을 나가고 싶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욕망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시가 고통의 산물이듯 우리의 삶 또한 온갖 이름의 고통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숙명이다. 마지막 행을 보다 적극적인 응전 의지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때 눈앞의 현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온몸으로 끌어안고 가야할 아픈 실체이다. ‘흙탕물’ 같은 현실을 더 이상 관찰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내 삶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극복하고자하는 또 다른 의지의 표현이다. 
 

홍일표 편집위원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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