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지난 26일 2020년에 이어 또 다시 총파업을 예고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이 9.4 의정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코로나19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팬데믹을 겪으면서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이 제기됐고 윤석열 대통령은 필수의료 개선 방안으로 이를 경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여론도 '의대 증원'에 동의하는 분위기로 돌아서는 만큼 의사들이 다시 병원을 닫고 거리로 나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은 팬데믹 기간 동안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 부족 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제기됐다. 당시엔 부족한 인력을 감당하기 위해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의료봉사를 자원하는 전직 간호사도 많았다.
이에 여·야를 막론하고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것에 동의했다. 향후 감염병 등 국가재난사태가 다시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여전히 도농복합도시나 농어촌 산간 지역 등은 제대로 된 소아과나 산부인과가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협은 의대 정원을 늘리면 오히려 의료 인력의 질 관리 어려움으로 의료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지역별 의료 격차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시설, 장비, 인력 등의 의료자원이 불균형하게 분포되고 있기 때문이지 의사 수가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아직까지 전국 의대 신입생 정원은 3058명으로 노무현 정부였던 2006년 이후 '18년 째' 동결 중이다.
코로나19 대응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논의 여·야 총선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의대 정원은 2020년 4.15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의 핵심 공약이기도 했다. 보건의료 공약에 실린 주요 키워드는 '감염병 대응', '보건의료인력', '공공의료' 등이었다.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2학년도부터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정부 관계자는 "현행 의대 정원을 우선 늘리되 공공의대 등 의대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의대 신입생 증원 인원은 단기적으로는 각 대학 여건을 고려해 결정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현행 대비 500명 이상으로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당시 민주당에 제출한 '공공의료 인력 부족 사태 관련' 보고서를 보면 의사 인력 수급 차이(공급-수요)가 올해 -1837명에서 2030년에는 -7646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로 인해 2030년에는 의사 인력이 2405~7727명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한국의 활동 의사 수는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2.3명(한의사 포함)으로 3.4명이 평균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반발…의료계 총파업 21일 만에 협의…문 정부, 의대 정원 확대 무산
하지만 이러한 정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에 대한의사협회는 곧바로 반대 성명을 냈다.
박종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지금도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다"며 "단순히 숫자만 늘리면 필수의료에 인원이 충원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근본적인 해결책은 의료제도의 정상화"라며 "현재 의사 수가 OECD 꼴찌라고 하지만 증가속도는 최고 수준으로 2030년이 되면 OECD 평균을 넘어선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반박했다.
결국 의료계는 2020년 8월 총파업이라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여의대로에서 '4대 악(惡) 의료 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를 열고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 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 육성 등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에 나섰다.
의사들은 정부가 4대 의료정책(원격의료,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을 의료계와 상의 및 동의를 거치지 않고 밀어 붙였다는 점을 총파업의 이유로 들었다.
전례없는 의료계 총파업은 21일간 이어졌고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중단하는 것으로 9월 4일 협상을 매듭지었다. 양측의 합의안에는 '공공의료 정책을 추진을 중단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한의사협회와 협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윤 대통령, 의지 관철 "필수의료 인력 확충" 대한의사협회 "증원 시 총파업 불사"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19일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사안으로 정부·여당은 이를 강력히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의료 남용을 초래할 수 있는 보장성 확대에 매몰돼 의료서비스 전달체계를 개선하고, 인력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구조 개혁이 지체돼서 많이 아쉽다"며 "무너진 의료서비스의 공급과 이용 체계를 바로 세우고 지역 필수의료 인력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의사 수를 늘려 필수의료 공백 해소, 초고령사회 전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윤 정부 출범 후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는 전문가의 의견 등을 받는 방식으로 추진됐고 증원이 바람직하다는 연구 용역들이 속속 제출됨에 따라 윤 대통령이 획기적 증원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야당도 "정부·여당의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소아과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붕괴를 막고 지역 의료 격차의 해소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환영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한개원의협의회 등 관련 이익단체대표들은 11월 17일 오후 서울 의협회관에서 긴급 의료계 대표자 회의를 열고 "정부가 의대 증원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할 경우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은 모든 수단을 동원한 강력 투쟁에 들어갈 것"이라며 "2020년 파업 때보다 더 큰 불행한 사태가 나올 수 있다"고 반발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선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의 논의 속도를 더 높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학들의 높은 수요가 확인된 데다 정치권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어서다.
의대 40곳 정원 확대 희망…최대 2847명
교육부가 2022년 말 17개 시·도 별로 2024학년도에 의대 신·증설 수요를 조사한 결과 전국에서 의대 신설 또는 증설을 원하는 대학이 13곳으로 파악됐다.
또 보건복지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40개 의대에서 제출한 2025학년도 증원 희망 인원은 2151~2847명으로 집계됐다. 이번 수요조사를 통해 의대들이 이전에 제시됐던 정원보다 더 큰 폭의 정원 확대를 희망하는 것이 확인됐다.
국민의힘은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야당과 의사협회의 대승적 협조를 촉구하고 나섰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역 필수의료 혁신 태스크포스(TF)' 첫 회의에서 의협을 향해 "국민들의 고통과 불편을 외면하지 말고 지역 필수의료 살리기에 함께 머리를 맞대주길 간곡히 요청드린다"라고 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야당에서도 지역 필수 의료 확충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만큼 의사 정원 확대 문제만큼은 정치적인 고려 없이 대승적으로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다"며 "의사협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도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힘을 보태주기를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의협은 지난 26일 전국의사대표자 및 확대 임원 연석회의를 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증원을 추진하면 파업에 대한 전회원 찬반투표를 즉각 실시해 파업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필수 의협 회장은 이날 회의에 앞서 삭발을 하고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해 의료계가 단일대오로 적극 행동을 시작할 때"라며 "다음주 초 비상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저널21 이한수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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