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레밍의 날들 / 이건청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5/31 [09:24]

[이 아침의 시] 레밍의 날들 / 이건청

서대선 | 입력 : 2021/05/31 [09:24]

레밍의 날들

 

떠돌이 쥐 레밍 떼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걸 본 적이 있다

TV 화면이었는데

들판을 떼 지어 달려온 것들이

벼랑 아래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풍덩 풍덩 뛰어내리는 것들 뒤에

뛰어내려야 할 것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툰드라에 굴을 파고

나뭇잎이나 새싹, 줄기, 뿌리를

잘라 먹고 살던 것들이

자꾸 자꾸 새끼를 길러내서

들판을 그득 채울 때가 되면

다른 들판을 찾아 떠난다는데

키가 작고 다리가 짧아서

들판도 하늘도 보지 못한 채

앞장 선 것들만 일심으로 따라가다가

벼랑을 만나 풍덩 풍덩 떨어져 죽는데

멈출 곳에서 멈추지 못한 것들이

돌아서야 할 곳에서 돌아서지 못한 것들이

앞선 것들의 뒤만 쫓아가다가

풍덩풍덩 벼랑으로

밀려 떨어져 내린다는데, 

 

# ‘브레이크(brake)’라고 ‘혼자말’을 하면서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멈추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운전 교습 선생을 쳐다보자 ‘참 잘했어요’ 하는 표정이다. 긴장되었지만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어린이가 된 기분이었다. ‘운전할 때 제일 중요한 게 뭐지요?’ 도로연수 첫날, 운전석에 앉은 내게 운전 교습 선생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브레이크입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한다면 운전할 자격이 없어요.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혼자말’과 같은 ‘내적 발화(發話)’란 ‘외적 발화가 내면화(internalization) 된 형태’이다. 아이들은 혼자말을 통해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스스로 안내하고 통제한다. 자기통제력(self-control) 발달에서 언어의 역할은 지대하다. 비고츠키(Vygotsky, 1986)에 의하면 유아는 양육자의 언어적 지시나 통제를 내면화하여 자기통제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외적 통제에서 내적 통제의 단계로 이행한다고 보았다. 자기통제 능력은 생후 2년이 지나면서 발달한다. 선행조건은 아동이 자기 자신을 자율적이고 분리되어있는 존재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양육자의 지시나 대화를 기억하여 그 기억을 자신의 행동에 적용시키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초기 자기통제의 행동은 ‘순응(compliance)’이다. 순응하는 능력은 곧 사회규칙을 배울 수 있다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초보 운전자가 횡단 보도 앞에서 사람이 있건 없건 우선 멈출 때, ‘브레이크’라고 혼자말을 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게 되고, 이런 자기통제 능력은 타인과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행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통제 능력의 발달유형에는 ‘유혹 저항능력’ ‘만족 지연능력’ ‘충동 억제능력’ ‘행동 억제능력’ ‘정서 억제능력’ ‘결론 억제능력’ ‘선택 억제능력’ 등이 있다. “떠돌이 쥐 레밍”은 “자꾸자꾸 새끼를 길러내서/들판을 그득 채”우게 되면 결국 먹이가 부족하여 “다른 들판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게 된다. 살던 지역을 떠나게 되면서 “앞장 선 것들만 일심으로 따라가다가/벼랑을 만나 풍덩 풍덩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멈출 곳에서 멈추지 못한 것들이/돌아서야 할 곳에서 돌아서지 못한 것들이/앞선 것들의 뒤만 쫓아가다가/풍덩풍덩 벼랑으로/밀려 떨어져 내린다는” 것이다. “레밍 쥐”들은 앞장선 리더가 제대로 길을 인도하는지에 대한 모니터링도 조망능력도 지니지 못했기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들도 앞장선 사람의 뒤만 바라보고 자기 통찰 없이 쉽게 결론을 내리고 선택해 버려, “들판도 하늘도 보지 못한 채/앞장 선 것들만 일심으로 따라가다가” “멈출 곳에서 멈추지 못한다”면 결국 “레밍 쥐”처럼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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