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풀씨 은행 / 최명길

서대선 | 기사입력 2018/05/21 [08:46]

[이 아침의 시] 풀씨 은행 / 최명길

서대선 | 입력 : 2018/05/21 [08:46]

풀씨 은행

 

하루 동안 맨 밭이랑

사흘 후 가보면 또 풀

풀이 한이 없다.

 

할머니가 평생 쓰시던 나비호미로 긁어놓지만

며칠 후 가보면 또 풀

진저리치게 하는 풀

 

새로 돋은 풀을 보다가 끄덕인다.

 

풀씨은행? 흙알갱이를 뒤쳐 보면

아무것도 없으나

부산히 문 여닫는 소리

 

밭이랑 은행 문고리에 어른대는

하늘의 손톱자국

 

엄지손가락 지문자국 

 

# “하루 동안 맨 밭이랑/사흘 후 가보면 또 풀”, ”진저리치게 하는 풀”은 살기 좋아 보이는 전원생활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잡초처럼 보이고, 뽑아버려야 한다고 생각되는 풀들이 사실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의 먹거리이며, 약초이고, 독한 농약과 폐기물로 오염된 지구를 자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흙 속에 “풀씨은행(Seed Bank)”이 존재한다. 흙은 묵묵히 우리의 ‘미래를 저축하고’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현재 약 2,000만 종으로 추정되는 생물이 살고 있다. 그러나 매년 약 3만종의 생물들이 멸종되고 있다고 보고되었다. ‘식물 없이 인간의 삶이 가능 할까?’ 식물이 없다면 인간은 물론,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대부분의 생존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세계 최초 씨앗은행은 러시아의 식물학자, 바빌로프(Nikolai Vavilov, 1887-1943)가 만든 바빌로프 씨드뱅크(Seed Bank)이다. 바빌로프의 씨드뱅크는 씨앗의 수명을 연장 시키고, 다시 발아시켜 씨앗을 틔우고, 그 상태를 기록하며, 보관법과 사용 매뉴얼을 상세히 남겨 놓으므로써 오늘날 씨드뱅크의 기틀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1987년 농촌진흥청 농업 생명공학 연구원 주도로 종자은행(현 국립 농업 유전자원센터)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씨앗은행”은 지구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노아의 방주’와 같다고 한다. “새로 돋은 풀”들이 다시 보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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