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골목이 없다 / 나석중

서대선 | 기사입력 2018/04/09 [10:00]

[이 아침의 시] 골목이 없다 / 나석중

서대선 | 입력 : 2018/04/09 [10:00]

골목이 없다

 

언제부턴가 아기 울음소리 사라지고

성대를 수술한 늙은 강아지가

뒤뚱뒤뚱 골목 산책을 하고 있다

 

다닥다닥 조립한 연립의 건반에서

꼬리에 불붙은 짐승처럼 뛰어나오는

소리의 직류直流는 금세 방전된다

 

아기 울음소리가 나팔꽃처럼 피어나

기나긴 곡류曲流로 귀를 찾아가던

새 소식 같은 모퉁이를 돌고 돌아서

 

다시 돌아오던 골목이 없다

 

# 유모차 두 대가 나란히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다. 유모차 안에 아기는 없다. 할머니 두 분의 보행용 보조 기구가 된 유모차 안에는 약간의 간식거리와 간절기 겉옷이 실려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시골 동네도 “언제부턴가 아기 울음소리 사라지고” 아기가 된 노인들만 유모차에 의지해 골목길을 지나신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인구 동향에 따르면, 출생아 수는 2015년 12월 이후 25개월 째 감소 추세라고 보고되었다. 인구 자연증가의 폭이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저출산 고령화 추세가 현실이 되고 있다. 취업절벽 앞에서 좌절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내 집도 마련하고, 일과 육아도 양립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구축되는 때는 언제쯤 일까?

 

“아기 울음소리가 나팔꽃처럼 피어나”는 소식을 들은 이웃들이 젖내 폴폴 나는 나팔꽃 향기 맡으려, 산책길에 일부러 들려 보고 싶은 “골목길”이 자꾸 자꾸 생겨났으면 좋겠다.

        

문화저널21 편지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