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늙어갈수록 연기는 농익는 법”

톨스토이의 늙은 말 ‘홀스또메르’가 말하는 ‘산다는 것’

이영경기자 | 기사입력 2014/02/28 [09:20]

유인촌 “늙어갈수록 연기는 농익는 법”

톨스토이의 늙은 말 ‘홀스또메르’가 말하는 ‘산다는 것’

이영경기자 | 입력 : 2014/02/28 [09:20]

[문화저널21 = 이영경 기자]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홀스또메르>가 2월 28일부터 3월 30일 한 달간, 영등포 타임스퀘어 내 CGV신한카드아트홀 무대에서 공연된다. <홀스또메르>는 1997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된 작품이다.
 
<홀스또메르>는 한 때 촉망 받는 경주마였으나 지금은 늙고 병든 말의 입을 빌려 인생의 희로애락을 이야기하는 음악극이다. 죽음을 앞둔 한 거세마의 회상으로 시작해, 그 회상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변화무쌍한 시간과 공간을 구성한다. 그리고 말의 시각에서 관찰한 인간의 모습을 들려준다.
 
혈통 좋은 말이나 몸에 있는 얼룩으로 인해 사랑에 실패하고 급기야 거세까지 당하는 명마. 세르홉스끼 공작을 만남으로써 최고의 기쁨을 누리게 되지만 결국 늙고 병든 초라한 말이 되는 홀스또메르 역은 오랜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유인촌이 맡았다.
 
1997년 국내 초연 이후 2000년과 2003년, 2005년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유인촌은 주연으로 함께했다. 그는 초연 당시 공연을 생각하며 “제작비를 많이 들였으나 흥행에 실패했다. 생소한 작품인데다가 제목도 어려워 보여 그랬던 것 같다”면서 “<홀스또메르>는 연기자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만날 수 있게끔 만드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이다. 삶에는 고통이 있고 상처가 있다. 고통은 사라지지만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들여다보면 과거 고통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잃어버린 과거, 현재, 미래까지 상처처럼 내려다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했기에 이 작품에 참여했다. 늙어갈수록 연기는 더 농익는 법이다. 이왕이면 ‘힘들지만 과거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배우로써 연기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공연할 때 힘이 있었다. 연기를 하면서 너무 힘이 넘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젊은 말을 연기할 때 힘이 부족하다. 예전에는 힘을 주어 연기했다고 하면, 지금은 디테일하고 섬세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무대는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데 힘썼다. “고전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 ‘원작의 냄새를 그대로 전하느냐, 현대적인 느낌으로 바꿀 것이냐’애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느낌은 현대적일지 몰라도 고전의 틀을 살리려고 했다. 좀 길고, 교육적이고, 훈계하는 공연이라고 생각될 지라도 많이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작품을 보고 자살의 생각을 바꾼 관객의 편지를 받은 기억은 잊을 수 없다. “IMF 당시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쯤 돼 보였는데 중소기업이 부도나서 자살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이 연극을 보고 ‘삶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성공해서 돌아오겠다’는 내용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연극의 가치는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극 중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도 들려줬다.  ‘인간들은 내 집이라 하면서 거기서 살지 않고, 내 땅이라 하면서 그것을 밟아 보지도 않으며, 내 사람이라 하면서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또 내 여인이라 하면서 다른 여인과 산다.’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톨스토이는 종교, 소유와 무소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테마라 할 수 있는 ‘어떻게 늙을 것인가?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가련하게 늙을 것인가, 추하게 늙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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