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김무성 출마, 그리고 불세출 정치 6인

최병국 기자 | 기사입력 2024/01/22 [14:04]

[심층분석] 김무성 출마, 그리고 불세출 정치 6인

최병국 기자 | 입력 : 2024/01/22 [14:04]

국민의힘 상임고문이자 한국현대정치사에서 6대 정치명인으로 꼽히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부산 중‧영도구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김 상임고문은 보수정치의 상징적 존재로 소통과 협치, 선거 명수로 지칭되곤 하는 인물이다. 특히 진퇴가 깔끔하고 특별한 조언 외에는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등 보수진영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의 출마를 계기로 6대 정치명인을 다시 살펴본다.

 

▲ 김무성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부산 영도구 출마를 선언했다.   © 문화저널21 DB

 

대한민국 현대정치 불세출 6인

3김, 김윤환, 박근혜, 김무성 등

정무 감각이 뛰어난 선 굵은 정치인

 

한국 헌정사는 그야말로 파란의 연속이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조선 고종황제 시절 내란음모 등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5년 7개월간 옥살이 후 도미해 1~2차 도합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미국, 상해 등지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1961년 5.16 정변으로 18년 동안 집권한 박정희는 나름의 철학으로 산업화의 기반을 구축했고, 이후 전두환 철권 통치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의 영웅들인 김영삼, 김대중이 순차 집권함으로써 민주화를 개화시켰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건국 및 철권통치시대에 민주화의 열망이 끊어지질 않았고, 이 시대에는 김영삼, 김대중이라는 불세출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국민은 희망을 안고 살았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이 당선된 김영삼은 이승만의 3선 개헌에 분연히 반대해 탈당한 이후 30여 년간에 걸친 줄기찬 민주화 투쟁을 전개, 결국 1993년 제14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1961년 강원도 인제군에서 제5대 민의원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은 동경에서 납치 및 2번에 걸쳐 도합 5년 7개월의 수감생활 및 3년 6개월간 가택연금을 당했으나 기어이 집권해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다. 

 

1961년 5.16을 설계한 김종필은 두 번의 실세 총리를 역임했고,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김대중을 박해한 것에 대해 박 대통령 대신 화해(용서를 구함)를 한다면서 김대중 후보를 지원해 충청도 표를 밀어주는 등 나름의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은 난세의 영웅으로 김영삼은 '불굴의 민주투사', 김대중은 '늪 속에서 핀 꽃', 김종필은 '자의 반 타의 반의 풍운아'로 지칭되기도 한다. 어쨌든 3김은 민주화, 산업화를 일궈낸 당대의 정치 명인들이다.

 

이들 3김 시대에 이들과 협력·견제를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또 다른 정치명인은 타협과 조정의 명수 허주(虛舟) 김윤환이다. 김윤환은 제10대 국회에 등원(유정회)한 이래 전두환 비서실장, 당 원내대표·대표, 사무총장, 3번의 정무장관 등을 역임하는 등 명실상부한 정치 명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 이회창 총재에게 버림당해 암으로 타계했다.

 

허주(虛舟) 김윤환이 이회창 총재에게 천거해 1998년 달성군 재·보궐선거에서 입성한 박근혜는 천막당사를 설치해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켰고, 제19대 총선에서 패색 짙은 새누리당을 압승시켰으며, 기타 각종 재·보궐 선거에서 연전연승하여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들을 얻게 됐다. 국정농단과는 별개다.

 

이들 5인 외 또 다른 정치명인은 보수정치의 상징적 존재인 일명 '무대(무성 대장)'다. 정치권에서는 그를 가리켜 정무 감각이 뛰어난 선 굵은 정치인으로 평가한다. 김 상임고문은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전남방직 창업주(김용주)의 아들로서 1978년 경북 포항에서 출마하려 했으나 (신민당) 공천받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고,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회원으로 정계 입문했다.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을 거쳐 제15대(1996)부터 국회에 진출한 후 내리 6선을 했다.

 

정치입문 시절 상도동계 막내였고, 김영삼이 특별히 총애했기에 YS 곁에서 결단과 타이밍의 정치를 익혀 정무감각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활동은 순탄치 못했다. 

 

  © 문화저널21 DB


이명박 정부 시절인 제18대 총선(2008년)에서 친박이란 이유로 공천 배제돼 무소속 출마하여 당선됐다. 제19대 총선에서는 박근혜 후보 총괄 선거 대책본부장이었음에도 선거에 나가지조차 못했고, 제20대 총선(2016년)에서는 유력한 대권후보이자 당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이한구 공관위원장으로부터 공천심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과도한 공천개입 등으로 일시 잠적하는 나르샤 파동(일명 '옥새 파동')까지 벌어졌고, 결국 엉망 공천이 도화선이 돼 박근혜의 탄핵으로 연결됐다.

 

김 상임고문은 40년에 가까운 정치역정에서 원칙을 중시하는 소통 주의자로서 면모를 보였으며,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마저 "김무성 대표는 갈등을 부드럽게 만드는 통합의 리더십 갖췄다"고 극찬한 바 있다. 이렇듯 여·야 진영을 떠나 김무성의 리더쉽 및 화합과 조정 능력 등을 적극 평가하고 있다. 

 

김무성 상임고문이 왜 다시 총선에 나오려고 하는지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진다.

 

이미 6선을 하였기에 한 번 더 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고, 대선 출마를 할 것도 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왜 나오려고 하는지, 공천을 받을 수는 있는지, 공천받지 못하면 탈당 무소속 출마를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수많은 의문부호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진퇴가 분명하고 권력과의 극단적 충돌을 피하려는 정치 신조 및 더해 양보를 미덕으로 삼는 김 상임고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 문화저널21 DB


상향식 공천제도 확립 위해

당원·국민 참여하는 경선 시스템

김무성의 꿈은 이뤄질까? 

 

정치인 김무성의 필생의 꿈은 '상향식 공천제도'의 확립이다. 국회의원 공천을 대통령이나 당 대표가 단수공천, 전략 공천을 할 것이 아니라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국회의원 후보자를 정하는 상향식 공천제도(일명 ‘오픈프라이머리’) 확립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이유 없이 공천 탈락하고 박근혜 비대위원장으로부터 불출마 요청을 받은 아픈 기억 등으로 상향식 공천제도 확립은 필생의 정치 신념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당선을 위해 상당히 노력했고, 윤 정부 출범 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서 정치 초년생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하려고 했으나, 부의장 내정 발표 직후 여러 언론에서 갖가지 태클을 거는 바람에 뜻을 접고 자신이 설립한 마포 포럼 행사 등에 치중했다. 

 

전·현직 국회의원 40여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마포 포럼은 수시로 회합하면서 정치적 의견들을 나눴고, 특히 상향식 공천제도 실현을 위해 의기 등을 투합하기도 했다. 작년 여름경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포럼에 참석해 상향식 공천을 약속하기도 했다.

 

김기현 전 대표가 포럼에 나와 상향식 공천을 약속했으나 미덥지 못해 자신이 상향식 공천제도를 통해 다시 한 번 국회에 진출, 이를 제도화할 것을 작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작년 가을부터 출마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출마 의지를 다지면서 무소속 출마까지 각오하고 있다.

 

▲ 지난 1월 17일 김무성 상임고문이 서울 여의도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케치 자료사진)  © 문화저널21

 

김무성 상임고문은 부산 남구 을에서 4선을 했고, 중·영도구에서 재선을 하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황보승희에게 물려줬으나 황 의원이 불법 정치자급 수수 혐의로 기소돼 불출마하게 되는 바람에 현재는 무주공산이다. 이에 조승환 전 해양수산부 장관, 박성근 전 국무총리비실장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여기에 김무성 상임고문까지 가세해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부상 중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극심한 갈등을 빚는 등 난장판과 같은 상황이다. 애초의 공천기류가 영남권 3선 이상 감점 규정 적용 등 이들을 몰아내는 데 초점이 맞춰졌으나 대통령과 비대위원장이 갈등으로 공천 가닥이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김 상임고문도 참여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탈당 무소속 출마는 별개의 문제다.

 

김 상임고문은 2014~2016년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을 역임하면서 문재인과 차기 대권 구도 양 강을 상당 기간 유지하기도 했다. 김영삼을 잇는 부산의 대정치인 탄생을 시민들이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연유로 '울산의 이후락', '포항의 박태준'처럼 무소속으로 출마해도 승산이 가능한 인물임은 틀림없다.

 

중·영도지역은 보수정당 후보들의 무조건 당선이 보장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김 상임고문이 공천에 참여하지 못해 탈당 무소속 출마를 한다면 상황은 꽤 복잡하다. 어쨌든 김 상임고문에 대한 향수가 아직은 남아 있는 상황이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홍준표, 권성동, 김태호, 윤상현을 낙천시켰으나 그들 모두 탈당, 무소속 출마해 당선됐다. 이와 같은 상황이 김 상임고문에게 닥친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몹시 궁금해지는 상황이다.

 

김 상임고문은 지난주 부산시의회 기자회견실에서 현재의 정치 상황을 극한의 진영 대립으로 인한 정신적 분단 상태라고 진단하면서 "정치와 국회가 나라를 망치는 만악 근원으로 생각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어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가 출마 이유 등으로 주장하는 상향식 공천제도는 정치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시대적 요청사항임은 틀림없다. 상향식 공천제도 확립을 위해 탈당, 무소속 출마 결기까지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 예사롭지만은 않아 보인다. 김 상임고문의 다음 행보가 더욱 주목된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