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김진묵 평론가의 다큐멘터리 에세이 ' 새'

박명섭 기자 | 기사입력 2022/09/30 [21:07]

[신간] 김진묵 평론가의 다큐멘터리 에세이 ' 새'

박명섭 기자 | 입력 : 2022/09/30 [21:07]

새가 되어 하늘을 날지 않는 것보다 큰 치욕이 있을 수 있을까? 

너희들이 있을 곳은 새장 속이 아니다. 훨훨 날아라

 

우리 집 새들은 갇혀 살지 않는다. 새장을 자유로이 드나들며 새장을 집으로, 둥우리를 침실로 살고 있다. 어떤 방문객은 새가 나왔다고 걱정스레 일러주기도 한다. 

함께 사는 새들이라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맞지 않는 논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야성과 지성, 두 날개의 균형만 맞으면 날 수 있다

 

▲ 김진묵 음악평론가 다큐 에세이 ‘새’    

 

음악평론가이자 트로트밴드의 리더인 김진묵 작가가 마흔 무렵에 쓴 자전적 다큐에세이 ‘새’를 펴냈다(출판:김진묵의 음악작업실). 이 책은 작가 나이 마흔 무렵, 어느 별 아래 이름 모를 나무 그늘에서 잠들던 시절의 이야기다.

 

88올림픽 끝나고 보통 사람들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길을 떠났다. ‘어떻게 되겠지. 산목숨 죽기야 하겠어?’ 그리고 평생을 웃고 즐기는 가운데 일흔이 되었다. 이 책은 서른 끝에서 마흔 끝까지 10년간의 비행(非行) 기록이다.

 


 

눈을 감고 내 속을 들여다본다. 

밑바닥에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두려움의 씨앗에서 욕망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욕망이 없다면 정체될 우려가 있고

두려움이 없다면 눈이 멀 수 있다.

욕망은 엔진이고 두려움은 핸들이다. 

그 사이의 긴장이 삶을 빚어낸다.

 

 내 나이 서른일곱이던 해 가을, 내게 물었다. 

그대는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가. 

잘 모르겠고 우선은 쉬고 싶습니다. 

누가 쉬지 말라고 말리던가?

그래, 일단 쉬고 보자. 

삶은 진행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보류한단 말인가? 

우선 잠을 실컷 … 

아냐, 갑자기 생활의 변화가 오면 병이 나는 수도 있으니까 여행을 가자. 

인도에도 가보고 아프리카에도 가보고, 월든 호수에도 가자.

 

너무나도 하고 싶은 것이 많구나! 

버드나무 몇 그루 심고 

오두막 짓고 벽난로 만들고 

먹거리 자급에 술도 빚고 

사다리로 오르내리는 나무 위 독서방 만들고 

셰익스피어와 사기(史記) 다시 보고, 

가톨릭 금서 모두 보고 

모든 오페라, 판소리, 산조 들어보고

낮잠 밤잠 늦잠 여행은 기본일 터이니

 

잠깐! 직장생활보다 더 바빠지는 거 아닐까?

참! 무인도에서의 생활도 재미있겠다.

 순간,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왔다.

 

- 본문 중

.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 <새>는 길을 떠나 느낀 이야기이지만 여행기는 아니다. 작가는 불쑥 인도 여행을 떠났다. 인도음악이 서구화되지 않았었기에 첫 여행지로 택했다. 케냐를 지나 스웨덴까지 무수한 여행객들과의 만남으로 순례자의 밤이 지나간다.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각종 기행들도 만나볼 수 있다. 

 

『이제 어디로 간다? 이 야밤에 남의 나라 공항에서 어디로 갈까? 천장 조명으로 흐트러진 내 그림자를 본다. 여러 개의 그림자 가운데 어느 그림자를 따라가야 할까? 그림자는 빛의 반대 방향에 드리우는 법, 컨베이어벨트처럼 정해진 삶의 방식을 내던지기로 했지만 만만치는 않겠지 … 골드문트가 수도원 담을 넘어 세상으로 나갈 때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처음 새장을 벗어난 새처럼 몸서리쳤다. 나는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 충만한 자유 … 내 인생에서 처음 마셔보는 자유의 잔이 넘치고 있다. 그런데  … 그런데 … 이 야밤에 남의 나라 공항에서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고 했다. 이 잔을 거두어달라고 할까? 이때 흐트러진 내 그림자에 오버랩되는 그림자가 있다.』  - 1장 ‘어디로 가는가’ 가운데

 

2부 <숲 속의 오두막>은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사는 이야기다. 살던 오두막 인근에 터널이 생기자 어둠과 고요가 있는 더 깊은 오두막으로 향한다. 작가는 2000년 5월부터 통나무를 쌓아 새로운 오두막을 짓기 시작했다. ‘숲 속의 오두막’에서 20분 정도 걸어 들어가는 산속이다. 새로운 오두막에서는 전기 없이 살았다. 편리함 대신 밤의 상념을 택한 것.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았다. 

 

『빈 지게의 무게 … 등에 붙는 감촉이 좋다. 지게를 지고 나가 나무를 해오는 노동은 운동량이 부족한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작업이다. 땔감을 많이 실으면 힘이 들어 재미가 없고, 조금 실으면 가난하다. 재미와 풍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 많이 싣고 낑낑거린다. 다시는 이런 바보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매일 반복한다. 가난하게 살겠다고 이 두메로 들어왔는데도 욕심이란 녀석은 매사에 태클을 건다.』 - 22장 ‘찌르 찌르 .. 못 듣던 새소리다’ 가운데

 

▲ 자기를 가두었다고 모이를 주러 닭장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공격하던 수탉 (김진묵 그림 / 21장 ‘하늘의 이치에 따라’ 중)

 

음악평론가이자 김진묵트로트밴드 대표인 김진묵 작가는 1980년 ㈜성음 클래식 음악 기획 담당(도이치그라모폰, 데카, 필립스 레이블 매니저)으로 근무했으며, 1981년 국내 최초로 재즈 평론을 시작했다. 1983년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 ‘객석’ 창간 동인이며, 1990년부터 프리랜서로 세계를 떠돌며 현장 음악 탐구에 몰두했다. 2000년부터 세계 각지 음악인과 공연 및 음반 작업을 했으며 2013년 김진묵트로트밴드를 창단해 데뷔(춘천시립교향악단 협연 / 지휘 : 백정현)했다. 2015년 / 2016년 대한민국 대학국악제 집행위원장 겸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현재 남과 북의 ‘이질감 극복’(동질감 회복)을 위해 민족이 함께 노래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문화저널21 박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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