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생명의 약동을 위한 발돋움…황두승의 ‘혁명의 기원(起源)’에 부쳐

서승석 | 기사입력 2021/12/06 [11:17]

찬란한 생명의 약동을 위한 발돋움…황두승의 ‘혁명의 기원(起源)’에 부쳐

서승석 | 입력 : 2021/12/06 [11:17]

헌법재판소의 연구관으로 근무했던 헌법학자 황두승 시인이 이번에 76편의 신작시를 모아서 다섯 번째 시집 ‘혁명의 기원(起源)’을 상재한다. 그는 2005년에 문학세계 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그동안 ‘혁명가들에게 고함’(2005), ‘나의 기도문’(2010), ‘혁명시학’(2015), ‘고상한 혁명’(2015) 등을 출간하며 왕성한 시작 활동을 계속해왔다. 시집 ‘혁명의 기원(起源)’은 ‘인간의 존엄과/생명과/자유’를 ‘혁명의 원리’(혁명가는 누구인가)로 생각하며 세상을 바꾸기를 희망하고, 끝없이 산을 오르고 여행을 하며 우주만물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고, 시간과 역사의 뿌리를 찾으려 치열하게 진리를 탐구해온 시인의 인생여정을 수록하고 있다. 깊은 철학적 사유를 담고, 찬란한 비약의 꿈을 펼쳐 나아가는 이 시집에서 우리는 한층 더 다듬어지고 부드러워진 그의 시세계를 엿볼 수 있다.

 

‘혁명’이라 하면 우리는 우선 유혈이 낭자한 동학혁명이나 5·16혁명을 생각한다. 그리고 프랑스대혁명과 그 혁명정신의 상징이 된, 신고전주의 프랑스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의 그림, ‘마라의 죽음La Mort de Marat’(1793년)을 떠올린다. 장-폴 마라Jean-Paul Marat는 급진적 성향의 정치인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온건파 지롱드당의 지지자인 젊은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Charlotte Corday)에게, 자택의 욕조에서 칼로 처참히 살해당한 혁명의 순교자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마라의 친구였던 다비드가 이 그림을 주문받아 그리고 나서 옥살이를 하고 나온 이후, 그 유명한 그림 ‘나폴레옹의 대관식Le Sacre de Napoléon’(1807년)을 그렸다는 것이다. 황두승 시세계에서 혁명이란 이런 붉은 혁명이 아니라 녹색혁명이 주조를 이룬다. 그는 “변(變), 동(動), 혁(革)은 인간과 자연에 속하는 것으로 변하는 것이 만물의 본질이고, 움직이는 것은 생명의 본질이며, 이러한 변화와 움직임의 과정에 방향을 가지고 바꾸는 것이 혁명의 본질”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혁명의 뿌리는 베르그송과 바슐라르의 철학에 닿아있다. 인문과학 분야에서 혁명이란 곧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 황두승 새 시집 '혁명의 기원'


소르본느대학 과학철학 교수였던 바슐라르는 20세기 철학과 비평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해주었다. 그는 과학의 역사 속에서 ‘부정의 정신’을 발견하였고, 부정에 대한 일반화를 ‘변증법적 일반화’라 부르며 칸트사상이나 실증주의를 부인한다. 그에 의하면 과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성지식이나 체계가 아니고 창조적인 활동이다. 정적인 것이 아니고 동적인 창조활동을 포착하는 것이 바로 바슐라르 과학개념의 요점이다. 또한 그는 베르그송의 ‘시간론’에 반대하여 “시간은 비연속적이고 고독한 순간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은 순간의 도전에 대항하여 세계의 깊은 잠과 그 고독에 대해서 이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싸우는 존재”라고 보았다. 바로 여기서 과학과 시가 탄생한다. 하여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그는 “몽상이라는 심리적 현상에 눈을 돌릴 때 시적 이미지의 해명을 위한 중요한 관심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라고 진술한다. “과학 분야에 있어서 객관적인 인식의 장애가 되는 주관의 축은 문학 분야에 있어서는 시의 이미지를 낳는 몽상의 작용이 된다”는 것이다.

 

황두승의 시적 몽상은 녹색혁명을 불러일으킨다. 시 ‘초록혁명’에서처럼 모진 겨울을 이기고 봄을 맞는 새 생명들은 그저 살아있음으로써 아름다운 눈부신 혁명이다.   

 

겨울을 벗는 바스락 소리!

그대 그 향기를 듣는가

 

재잘거리는 새소리 마냥

연둣빛으로 움트는 소리,

오로라 너울거리듯 솟구치는데

 

연둣빛 숨결은 레퀴엠으로 번지고

오늘은 성삼일 전 수요일!

초록혁명으로 부활을 기다리고

 

봄을 입는 바스락 소리!

그대 그 향기를 듣는가

 

초록 혁명(Greem revolution) 전문

 

시 ‘벼와 인삼’에서 시인은, 벼는 땅을 죽이지 않고 사람을 먹여 살리고 인삼은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땅을 죽이고, 또 그 흙은 세월이 흐르면 다시 또 다른 생명의 흙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처럼 “사람이 위대한 기적”임을 입증하는 벼와 인삼을 가꾸는 농부의 얼굴에서 ‘성자의 후광’을 본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인가! 뜨거운 생명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수없는 산행과 여행을 통해 찾은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빛깔고운 피륙을 짠다. 때로 산을 오르며 들길을 걸으면서 시인은 혁명가의 절규를 듣는다.

 

화악산 조무락골에서,

“혁명가의 절규”가

동지의 우정 어린 대화 속에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다.

 

“나는 자유다!”

 

혁명가의 절규> 전문

 

황두승 시세계의 혁명은 향기롭다. 유독 이 시집에는 두드러지게 꽃에 대해 노래한 시가 많다. 황두승 시인의 서정적 안목이 돋보이는 시편들 ‘동백꽃’, ‘불두화 예찬’, ‘코스모스’, ‘감꽃 목걸이 그리워’ 등에서처럼 꽃에 대한 예찬이 곧 혁명 예찬이 된다. 그는 시 ‘때가 되면, 꽃은’에서 꽃은 때가 되면 항상 말없이 피고 지고, “때가 되면,/씨앗은/항상 꽃을 피우기 위해/뿌리가 된다”는 사실은 감지한다. 세상을 향한 긍정적 시선이 여기서 시작된다.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가며 겨울에 핀 꽃, 순교자의 꽃인 동백꽃은 “혁명가의 꽃”이다. 황두승 시세계의 혁명은 둥글다. 시 ‘불두화 예찬’에서 시인은 모나고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둥글게” 소망의 혁명을 꿈꾼다. ‘빗금과 동그라미’에서도 시인은 빗줄을 동그라미로 엮어 희망의 혁명이 되기를 간구한다. 둥근 것은 공격성이 아니라 방어성의 표식이다. 그런데 그런 혁명의 기원은 과연 무엇일까?

 

스잔한 오얏가지에 걸린 겨울을 보내고,

모두 함께 입춘공화국을 건립한

혁명의 뿌리는 양심이었다.

 

초록 혁명(The origin of revolution) 부분

 

황두승의 시에서는 따스한 인간적 온기가 느껴진다. 혁명가는 ‘바람길’을 홀로 가도 결코 고독하지 않다. 왜냐하면 “홍익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혁명가”의 고독은 “수도사의 기도”와 같기 때문이다(혁명가의 고독). 또한 혁명이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위하여/신에 대해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혁명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결국 황두승의 혁명가의 길은 “생명과 사랑과 평화를 위하여” 신의 품안에서 “자연의 빛으로 퍼지는 당신의 로고스”, “당신의 숨결”을 온 몸과 온 마음으로 전하는 길이다(바람길). 황두승 시세계 도처에서 묻어나는 겸허함은 시인의 천주교도로서의 경건한 구도자의 자세에 기인하리다. 종교적 사유의 바탕에 깔린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보듬어 안는 지순한 사랑을 선사한다.    

 

알베르 까뮤Albert Camus는 “우리는 불행한 세상에 대항하기 위하여, 행복을 창조해야한다 (Il faut créer le bonheur pour protester contre l’univers du malheur)”라고 말했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황두승의 혁명적 사유가 빛을 발하여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 되고, 창조적 삶의 표상이 되리라 믿는다. 부디 이 찬란한 생명의 약동을 위한 발돋움이 코로나19로 짓눌린 어두운 세상에 희망의 등불이 되길 간절히 빈다. 

    

서승석(문학평론가, 불문학박사, 한불문화예술협회 회장)

 

▲ 서승석 미술평론가 ©문화저널21 DB / 자료사진


평론가(문학·미술)이자 시인 서승석 불문학 박사는 1995년 시집 ‘자작나무’ 출간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해 2013년 ‘유심’ 평론부문에 등단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4-소르본대학교에서 비교문학 석사,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수원대학교 겸임교수 및 서울대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자작나무’, ‘흔들림에 대하여’, ‘사람 사랑’, ‘그대 부재의 현기증’과 번역서로 파블로 피카소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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