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finder] 붓질 한 번에 담겨 있는 비극, 연극 ‘레드’

이영경 기자 | 기사입력 2016/06/09 [11:42]

[VIEWfinder] 붓질 한 번에 담겨 있는 비극, 연극 ‘레드’

이영경 기자 | 입력 : 2016/06/09 [11:42]
▲연극 ‘레드’가  7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 이영경 기자

 

[문화저널21=이영경 기자] 여전히 짜릿하다. 유쾌하면서 고독하고 정적이면서도 생동한다. 추상표현주의 시대의 절정을 보여준 마크 로스코가 조수 켄과 벌이는 논쟁은 다시 봐도 흥미롭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로스코의 색들, 켜켜이 쌓여가는 색들에 담겨 있는 운명적 비극이 내면의 폭발 후에야 만날 수 있는 빛을 보게 한다. 마크 로스코가 다시 묻는다. “뭐가 보이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야만 해. 그림이 고동치게, 너에게 말을 걸도록.”

 

연극 ‘레드’의 작가 존 로건은 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작품을 집필했다. 1958년 6월, 캐나다 주류회사 시그램은 사옥 빌딩이 완공되자 로스코에게 1층에 있는 ‘포시즌즈(Four Seasons)’ 레스토랑 벽면을 장식할 벽화를 의뢰한다. 연작이 다 되어갈 무렵 로스코는 돌연 계약을 파기한다. ‘그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한 존 로건은 실제 로스코가 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가상 인물 켄을 탄생시켜 재구성했다.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로스코와 켄, 두 사람의 대화로 진행된다.

 

▲마크 로스코 역의 한명구와 켄 역의 카이  ©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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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코와 켄이 쏟아내는 격렬한 논쟁 속에는 철학, 예술, 종교, 미술, 음악 등을 넘나드는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낯선 미술사조와 니체, 피카소, 잭슨 폴락 등의 이름들이 언급되고 현학적이고 미학적인 수사들이 쏟아진다. 독불장군처럼 보이는 로스코가 독설을 내뱉는 동안 켄은 성장한다. 단편적으로는 시그램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은 궁극적으로 아버지와 아들, 이전 세대와 앞으로 올 세대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생성되고 소비되고 소멸된다. 피카소의 입체파를 몰아낸 마크 로스코의 추상표현주의가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 의해 위기를 맞는 것처럼,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을 누르는 것은 역사,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종교 등 인류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져 온 현상이다. 극 중 마크 로스코는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 해. 존경하지만 살해해야 하는 거야.” 옛 것이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새 것이 탄생했고 인류는 그렇게 생존해 왔다.

 

▲마크 로스코 역의 강신일과 켄 역의 박정복   © 이영경 기자
© 이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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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견고한 성처럼 새로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마크 로스코와 그의 편협하고 닫힌 사상을 당돌하게 지목하며 변화를 종용하는 켄. 마크 로스코로 대표되는 구세대와 켄으로 대표되는 신세대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충돌하며 벌이는 논쟁은 비단 예술이라는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의 치열한 논쟁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며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2011년 초연을 비롯해 2013년 무대에 오르며 ‘마크 로스코는 강신일’이라는 정의가 내려질 만큼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던 배우 강신일과 지난 시즌 새롭게 합류해 뿌리 깊은 연기 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로스코를 탄생시켰던 한명구가 ‘마크 로스코’ 역으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을 함께했으며 연극계가 주목하는 배우로 성장한 박정복과 첫 연극무대에 도전하는 뮤지컬배우 카이가 ‘켄’ 역으로 함께한다.

 

연극 ‘레드’는 지난 5일 개막, 7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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