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희곡만의 짜릿함, 연극 ‘무대게임’

프랑스어 희곡의 진수 보여주는 극단 프랑코포니

이영경기자 | 기사입력 2014/03/12 [12:41]

프랑스 희곡만의 짜릿함, 연극 ‘무대게임’

프랑스어 희곡의 진수 보여주는 극단 프랑코포니

이영경기자 | 입력 : 2014/03/12 [12:41]
▲(왼쪽부터) 극단 프랑코포니 임혜경 대표, 배우 김시영· 임선희, 연출 까띠 라뺑

“이 작품은 연극에 관련된 학술회나 토론회 등지에서 내가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들, 프로그램 책자에 적힌 공연 의도 에서 읽은 것들, 그리고 40여 년 동안 연극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직접 보고 경험했던 모든 일들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코미디다.” - 빅토르 아임
 
[문화저널21 = 이영경 기자] 유명 여성작가이자 연출가 제르트뤼드와 화려한 재기를 꿈꾸는 여배우 오르탕스가 공연 연습을 위해 빈 극장의 무대 위에서 만났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이들은 서로에 대한 칭찬과 감탄의 말을 쏟아내지만 대화가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상대를 무시하는 속내가 드러나고, 두 사람의 대화는 유머로 무장한 전투가 되고 만다.
 
연극 <무대게임>은 ‘잘난 체 하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를 통쾌하게 이뤄낸다. “죽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는 작가는 글쓰기 행위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진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난해한 작품과 언어를 자기과시처럼 늘어놓는 촌스러움을 보여준다. 연극은 많은 문학상을 수상하고 30개 언어로 번역된 작품을 쓴 작가의 “어마어마하고 소화하기 힘든 두꺼운 책”을 비꼬며 “그런 책들은 병원에 나누어서 불치병 환자들에게 억지로 읽게 해야 해. 빨리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이라는 한 방을 날린다. 이 ‘적절한’ 펀치를 날리는 주인공은, 정치와 사회에 무심하고 국가정보원장이라는 권력을 가진 남성을 동경하며 늙지 않기 위해 애쓰는, 본능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여배우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제르트뤼드와 오르탕스의 쉴 새 없는 대화의 향연은 연극 <무대게임>만의 재미다. 약 100분 내내 등퇴장 없이 쓰러지지 않고 무대에 서서 끊임없이 말을 쏟아낸다. 자신의 정당성과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말을 뱉어내는 동안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나약함, 두려움 등이다. 동시에 표현의 자유, 평론가들의 허식 등을 고발하는 연극은 그 방식을 분노의 외침이 아닌, 유머로 택했다.
 
연극에는 보이지 않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두 여자의 아름답도록 날카로운 심리전을 비추는 조명 스텝 바티스트다. 무대에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두 인물의 갈등과 폭로를 관찰한 유일한 목격자다. 연극 <무대게임>은 회자되지 않는, 그러나 꼭 필요한 조명디자이너를 조용히 무대로 불러낸다. 묵묵하면서도 가장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존재다.
 
프랑스어 희곡의 진수 보여주는 극단 프랑코포니
 
▲ 임혜경 대표, 까띠 라뺑 연출
창단 이후 우수한 프랑스어 희곡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 온 극단 프랑코포니의 이번 작품은 까띠 라뺑이 연출을 맡았으며 불문학자 김보경이 번역, 극단 대표 임혜경이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다.

시작은 작은 한불 그룹이었다. 2001년부터 극단 이름 없이 프랑스어권 희곡(프랑스, 캐나다 퀘벡, 콩고)을 소개하고 무대화하는 작업을 해왔다. 극단 프랑코포니라는 명칭은 ‘불어권 극단’을 의미한다. 지난 20년 간 한국 대표 희곡을 불역하며 프랑스에 소개하는 작업을 해온 불문학자 임혜경, 까띠 라뺑(Cathy Rapin)이 중심이 되어 있는 이 극단은 2009년 <고아뮤즈들>을 계기로 극단 이름을 갖게 됐다.
 
임혜경 대표 한국 연극을 번역해 소개하는 작업을 주로 했었어요. 그러다 거꾸로 불어권 작품을 한국에 가져와 번역하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번 힘들다 하면서도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극단을 만들어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빅토르 하임의 연극 <무대게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연출 까띠 라뺑은 “연극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연극을 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죠. 동시에 연극은 인간 본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워, 권력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무대에서는 연출가가 독재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연출의 파워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인간 전체를 아우르는 파워, 극장 밖 정치적 독재의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번역을 한 김보경은 자신이 번역한 작품이 처음 무대에서 공연되는 순간의 기쁨을 맛봤다. “소설, 시와 달리 배우들이 희곡은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걸 목적으로 하잖아요. 번역할 때 문자언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무대언어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 되었을 때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번역을 하면서 저 나름대로 제르트뤼드가 되고 오르탕스가 되어 보는 등 수천 번 수만 번 수정하며 번역을 했어요. 그러다 작년 11월 이 작품으로 희곡 낭독공연을 했어요. 아무리 제가 수많은 상상을 하며 번역을 해도 그것이 무대 위에서 배우들 입을 통해 나왔을 때는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 발견되더라고요. 텍스트와만 씨름해서 되는 작업이 아니란 걸 알았습니다.”
 
▲ 연습 중인 임선희(왼쪽)와 김시영

 
연출가와 번역자가 프랑스어 희곡을 한국 무대에 올리기 위해 그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면, 이제 무대 위에서 그것을 오롯이 전해야할 이들은 두 명의 배우 김시영(오르탕스 역)과 임선희(제르트뤼드 역)이다. 무대에서 의지할 건 오로지 서로뿐이다.
 
임선희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는 짧은 경험으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습을 거듭할수록 작품이 굉장히 깊더라고요. 숨겨진 의미도 많고 찾아낼 것도 많고 그 안에서 제가 발견해내야 할 것도 많았어요. 힘들었지만 모든 배우가 작품에 임할 때 그러하듯, 깊숙한 것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극의 완성도가 높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두 사람의 호흡이 원만하지 않으면 공연이 힘들어지기 때문에 김시영 씨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죠.”
 
김시영 텍스트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2인극을 처음해보는 데 임선희 씨 말 대로 의지할 곳이 서로밖에 없어요. 프랑스 희곡도 처음이에요. 말로써 다 표현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매력적으로 느끼며 작업을 했고 앞으로 더 즐겁게 공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극 <무대게임>은 작가와 연출가, 배우가 각자 가면을 벗을 때 무대 뒤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그 실체를 특유의 유머와 예리함으로 보여 준다. 연극에 대한 생각은 다르지만 서로의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 갈등을 해결할 것인지, 팽팽하게 맞서는 두 사람 사이에서 힘의 균형이 어떤 식으로 역전되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공연은 3월 30일까지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된다.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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