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연장은 "불임(不姙) 극장"을 탈피 해야 살아난다

김기수기자 | 기사입력 2008/09/08 [15:40]

한국의 공연장은 "불임(不姙) 극장"을 탈피 해야 살아난다

김기수기자 | 입력 : 2008/09/08 [15:40]
‘문화저널21’은 소극장 춤 기획 활동 20년을 맞는 춤 평론가 김태원 씨를 탁계석(논설주간)이 만나 공연을 통한 창작활동 등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 춤 평론가 김태원(춤 평론가회 회장)     ©김기수기자
탁계석(논설주간) : 춤 기획 20년이란 부제로 그간의 작업을 회고하셨는데요?

김태원(춤평론가회장) :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춤 기획이란 것이 80년대 중반 정확히 1987년 3월 창무 춤 터에서의 ‘시와 무용의 만남’ 이라고 봅니다.

그전에도 춤 공연이 있었지만 협회나 회에서 동인들이 돌아가면서 하는 행사성이 더 강했고 나름대로 고심하고 작품에 고민한 ‘기획’의 의미는 이때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 10 작품 정도가 발표되었는데 유안진 시인의 시로 된 ‘날개옷’ 이 아직도 인상에 남습니다.   

 탁: 평소 소극장 공연을 통한 창작성이 중요하다 말씀하셨는데…….

김: 소극장 공연은 우선 리얼리티가 살아나야 하기 때문에 이에 수반되는 제 요소들이 창작성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즉 거리가 가까워서 리얼리티가 살아야 합니다. 대극장에서는 멀어서 보이지 않을 것이 소극장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대충이란 게 있을 수 없지요. 긴장과 구성에 빈틈을 주지 않으려는 압박이 예술가에는 그만큼 고뇌하게 하고 강도 높은 연습을 요구하게 됩니다.

70, 80년대 한국 무용은 계속 소극장에서 이뤄졌었는데 이의 전환점이 된 것이 88 올림픽 때 볼쇼이 발레단(유리고로비치)이 초청되면서부터입니다.

볼쇼이 공연 이후 이를 고려해 부산문화회관 등 지방 공연장들이 규모를 먼저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무용의 대규모화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지요. 

탁: 규모화의 또 다른 한 축은 기금 지원액의 증가가 아닐까 합니다. 효과도 있었겠지만 역기능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김: 정확하게 dj 정부 시절, 문화산업 논리가 도입되면서 문화부 예산 증액이 문예진흥 기금에도 탄력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창작 행위가 일어날 수 없어서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란 것의 속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역기능을 불러왔습니다.

돈이 없을 때는 소극장에서 ‘정신’으로 했습니다.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작업을 해도 모두가 같은 조건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소위 말하는 ‘펑펑 기금’이 쏟아지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우선 모든 제작비 상승을 가져왔고 돈 받는다 하니 전에는 묵계 적으로 예술가들이나 제작자들과 통하는 그 뭔가가 있었는데 이젠 안면 몰수하고 모두 돈으로 계량화되어 갔습니다.

그 하이라이트는 국립극장이 법인화되면서 무대 스텝을 내몰고 재정자립도 수치를 올린 것입니다. 이를테면 눈속임 행정으로 재정자립도를 높였지만 그 부담이 고스란히 예술가에 부가되는 상하탱석 식의 부담 전가가 이뤄진 것이지요.

모든 것이 돈으로 환치되면서 무용의 규모화, 외형 화가 급속하게 전파되었고 기금을 받지 못한 단체나 개인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 좌절을 느껴야 했습니다.

9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법인화는 모든 공연장의 가격 상승 요인을 가져왔습니다. 심지어 극장이 주차료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익률 올리기에 매달리지 않았습니까. 
 
▲ 작품명:기우는가도 (유정재)     © 이만주 사진작가

탁: 극장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무대 스텝이나 전문인력의 강제 퇴출은 예술가의 경제적 부담 외에도 공연 예술 질 저하라는 심각성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동구의 유서 깊은 극장들은 70 할머니가 조명을 하면서 거장들의 작품해석, 컴퓨터보다 더 손에 익은 기법으로 제작비를 줄이고 무엇보다 작품 완성도를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 절대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법인화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고 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이 수익 논리에 빠져 품격 있고, 예술의 전통을 살리는 철학이 있는 극장이라기보다 뮤지컬 등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하는 체면 상실의 시대가 아니었나 합니다. 국가에서 재정을 투입한 극장이 시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그것도 비윤리적인 방법에 의해 거짓말해가며 돈 번다는 것이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봅니다.

좌석표 하나 표준화되어 있는 극장이 없고 민간사업자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우리 극장의 현주소입니다. 대관료 상승에 각종 시설 사용료를 부가하는 등의 불만에도 예술가는 대관 자체가 어려운 극장 문턱 앞에서 언어장애인 냉가슴 앓듯 말도 못하고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결국, 돈의 논리, 경제력 있는 단체만 전문대행사에 맡겨서라도 기획서를 모양이 나게 하여 기금을 독점하는 쪽으로 흘러가면서 춤 문화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왔지요.

탁: 실은 제가 99년 4월부터 세종문화회관 법인화를 주도한 한 사람으로서 늘 이럴 때마다 죄지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법인화의 정신이 왜곡되어 돈 벌어 점수 내고, 그 점수로 한 자리 차지하는 출세의 수단으로 극장이 활용되어 가슴 아팠습니다. 늘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돈에 눈이 어둡고, 출세에 눈이 어두운, 탐욕은 눈에 보이지 않은 것들을 막무가내로 대했지요.

그러던 것이 이제야 현장 예술인 출신인 유인촌 장관이 ‘근본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친 것 아닙니까. 많은 예술계 사람들이 일단은 손뼉을 치고 있는데 시행 과정을 주시해야겠지요.

김: 돈이 유입되면서 가장 큰 문제는 정신의 타락입니다. 예술에 재원이 필요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 때문에 기금의 역할을 백분율로 보면 저는 6/4 정도로 봅니다. 4 정도는 역기능을 하는 셈입니다. 공공 인프라의 조건을 바른 위치로 돌린다 해도 누가 정신을 가지고 예술 흐름의 맥을 짚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지요.

지금은 거의 그런 맥이 끊어져 가는 상태라고 봅니다. 대표적인 예가 연극입니다.

그래서 지금 작품이 남아 있지 않고 작품이 잘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런 한편에선 축제다 뭐다 해서 모두 판만 벌이는 이벤트로 환경이 급하게 바뀌어 버렸어요. 양심적인 예술가나 작가 정신을 가진 작업자들은 점점 소외되는 것이 문제지요.

탁: 그런 점에서 최근 포이동에 있는 소극장 m 극장을 보면서 창작 에너지와 작품성을 느껴 바로 이런 작업이 우리 창작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들이 모두 전문가 수준에서 감상하고 극장 친화력이 창조성과 밀접해 보였습니다. 유 장관이 연극 쪽만 가시지 말고 이런 춤 소극장도 한번 방문해 주기를 개인적으로 부탁합니다.

김: 네, 잘 보셨습니다. 무용은 대형 공연도 필요하고 소극장 공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선은 소극장에서 ‘자기’를 만들고 훈련하고 가다듬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신경 세포처럼 소극장들이 살아 있게 해야 하는데 수백 개의 극장이 빈사상태로 존재했지만 운영을 못 하고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요. 결국, 극장주인이 어떤 창조를 지향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주도해 나가느냐는 것이지요.
 
▲ 작품명:해피앤드(이현주)     ©이만주 사진작가

놀라지 마십시오. 이 m 극장에서 한 해에 70단체에, 150회 공연을 하고 새로운 신작이 70, 80 작품 정도를 생산해 냅니다. 서로 경쟁이 되어하다 보니 작품의 질이 좋아지고 내용 있는 작품이 나오니 관객이 몰립니다. 그렇다고 극장 수익과 관계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차피 공연예술이 특정한 능력이나 투자가 없다면 순수예술이 돈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역설이 이래서 가능한 것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이 정도의 공간에서 이만한 성과를 올리기는 전혀 쉽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이런 극장에 문예진흥기금이 이전까지는 1,500이었고 올해 인상되어 2,500만 원입니다. 평균적으로 나눠주는 것이고, 작은 것의 가치를 공간 크기로 재단하는 탁상행정이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형평성이 아닙니다.

탁: 작품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일시 포장만 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클래식 창작계도 심각합니다. 수십 년 지원했지만 국민이 인지하는 작품이 하나 도 없고 오페라의 경우 합하면 수백억 이상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상설 레퍼토리가 없습니다. 지금 저는 이런 문제를 국감에서 한 번 짚어 보게 하려고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 그렇습니다. 예전의 관료들은 전문가들을 형식적으로나마 눈가림 예우라도 했는데 세대가 바뀌면서 신엘리트주의, 즉 신관료주의로 바뀐 기분입니다. 예전에는 공무원과 예술인의 경계가 확실해 서로 욕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이제 어느새 모두가 문화인이 돼버렸고 전문가입니다. 그 경계마저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는 관 주도 예술을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제 모든 게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탁: 소위 이벤트 업자들만 사는 세상이 온 것 같아요. 행사를 주는 공무원 쪽에서는 책임 문제가 따르니 편의주의로 거래하는 이벤트 업체 명단 하나만 있으면 자기 부서는 끝나는 것 아닙니까. 모든 게 이벤트 외형화 규모가 이래서 확대일로에 있습니다. 10억짜리 프로젝트라 해도 총감독 떼고, 뭐 떼고 하면 예술가들은 늘 그래서 배고픕니다. 옛날 군대 부식 나올 때 하고 똑같다는 생각을 해보아요. 예술가와 예술은 죽고 행사만 규모를 키워가는….

물론 예술가들이 행정력도 어둡고 그만큼 불안정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술가들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보살피는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일본 관료들이 이걸 잘하지요. 나서지 않고 정성으로 뒤에서 양심적으로 지원하는 것 말입니다.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어요.

김: 이번 유 장관이 현장 출신이어서 이번에 나온 예술정책들이 어느 정도 모양새는 갖추었다고 봅니다. 우리 중견 평론가들이 기금 심사에 배제된 것이나 기금 평가에 전문성이 없고 하는 등 근본적인 문제 접근은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한 때는 아르바이트 평가 요원까지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보다 못한 동료 예술가를 예술가가 평가하고 재단하며 심지어는 손자뻘 되는 제자가
선생의 작품을 뒤적거린다면 돈의 위력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요.

현행 지원 방식이라면 장이예모나 국수호같은 무용가를 누가 심사하고 이렇다저렇다 해야 합니까. 고만고만한 평준화 의식에서 작품다운 작품을 기대할 수 없고, 한 때는 잘하는 사람 준다 하니 기획사들이 모두 그쪽으로 쏠려 기금지원 안타도 충분히 활동이 넘치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까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탁: 나도 언젠가 기금 신청 한 번 내 본 적이 있는데 낙방하고 평생 30년 동안 기금 한번 타보지 못했어요. 평론가를 누가 재단하면 내가 무슨 낯으로 글을 씁니까. 비평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은 후진성을 고치지 않으면 늘 그런 상태이고 맙니다. 금융감독원처럼 예술감독원이라도 있어야 정리가 되는데 비평이 정실에 빠지도록 公共은 지금껏 방조를 했고, 집단이기주의 방어막은 아직도 튼튼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지금 비평 다 죽어 가고 있어요.

합당한 감시와 건설적인 대안 제시 없이 고품격 국민, 국가로 가는 것 효율성이 떨어집니다. 거리에 신호등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비평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 그래요 관 주도, 관 문화 아무리 외쳐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유인촌 장관이 잔 자크 루소가 외친 ‘자연으로 돌아가자!’ 스트라빈스키가 ‘바흐로 돌아가자!’라고 외친 것처럼 ‘근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名言으로 남으려면 말 한마디 훅 던지고 지나가서는 어렵다고 봅니다. 담당자는 늘 바뀌고 아직도 우리 관료 유연성이 크게 부족합니다.

하루아침에 물이 빠지긴 어렵겠지만 조금씩 서로 대화하고 노력해야겠지요. 하나 분명한 것은 이 정부 때 틀을 바로 잡지 않으면 문화 어렵다고 봅니다.
 
탁: 우리 세대가 희생을 해서라도 뭔가 바꿔 놓아야 합니다. 해방 이후 지식인들이 자기희생에 부족했어요. 그보다는 기득권 유지, 자기 이익에 골몰해 제도 개선이 없이 변죽만 울렸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나라 상황을 빗대어 ‘대한민국은 임시 건물 공화국’이라고 말하더군요.

김: 공감이 갑니다. 정말 전문성을 가지고 파고들면 제대로 된 게 아무것도 없이 겉만 화려해요. 그래서 나는 소극장 기획 20년을 통해 나름대로 무용가들에 정신을 가르치려고 애썼고, 소극장을 통해 소재 개발, 작품 전개, 서로 협동하고 협력하는 방법에 대해 서로 격의 없이 토론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게 나의 기획 20년의 보람이라고 하겠습니다.

탁: 얼마 전 김 교수께서 ‘자유남성춤 작가회’도 발족하도록 하셨지요?

김: 춤이 여성 혼자 하는 게 아닌데도 파트너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너무 없어요. 남성 무용수들의 심각성이 경제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서구교육을 받은 이들이 사회성 결핍으로 가정 경조사가 있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겹쳐, 우선 네트워크를 통해서 무용 이전에 서로 친화력을 통해 힘겨운 사회 일원으로 좀 원만하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생각한 겁니다. 서로서로 좀 알고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부터 하자 하는 그런 모토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탁: 아무튼 기획 20년으로 춤의 성장동력을 이끌어 오신 김 회장께 박수를 보냅니다. 더 할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은 첫 시작이니 조금만 하고 앞으로 좀 더 심도 있게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지요. 긴 시간 대화 감사합니다.

▲ 춤 기획활동20년 관계자 기념촬영     © 사진제공:m극장
 
※ 춤평론가 김태원(춤평론가회 회장)
1980년도부터 춤평론 활동, 「한국일보」문화평자, 「공간」지 전문위원, 「문화예술」자문위원, 국립극장 레퍼토리 자문 및 운영심의위원, 동아대학교 무용과 교수(1992~2005)를 역임했으며, 현재 「우리시대의 춤의식과 운동」과 같은 8권의 무용평론집과 다수의 무용이론전문서를 펴냈다.  <정리: 김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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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21 김기수 / 문화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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