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

홍사라 | 기사입력 2025/12/17 [10:06]

[홍사라의 풍류가도] 할머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

홍사라 | 입력 : 2025/12/17 [10:06]

  © 홍사라

 

유튜브를 보다가 오래전에 많은 사람이 즐겨 보았던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시트콤 영상을 우연히 보았다. 거기에 윤호, 민호의 할머니 역으로 원로배우이신 나문희 님이 나오신다. 그 역할의 나문희 님은 외모도 외모지만, 핸드폰을 목에 걸고 다니며, 깔깔거리며 웃으시는 모습이 우리 할머니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며칠 전 화장대 서랍을 정리하다 구석에 있던 금팔찌를 발견했다. 20년도 더 된 금팔찌라 사용하기에는 디자인도 너무 구식이고 옷에도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언젠가부터 한쪽 구석에 넣어놓고 잊어버리고 있던 팔찌다. 그 오래된 옛날 디자인의 팔찌를 다시 꺼내어서 하고 다닌다.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지방에 있던 할머니 댁에 내려갔던 날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어딘가 갈 곳이 있다며 밖으로 나서셨다. 도착한 곳은 시내에 있는 금은방이었는데, ‘우리 손녀, 금팔찌 하나 해주려고’ 생각만 하고 계시다가, 내가 집에 오니 나서셨던 것 같다. 거기서 금은방 가게 사장님과 한참을 이게 좋네, 저게 더 좋네, 18k로 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순금이 나을까 한참을 이야기하시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당시 유행하는 디자인의 금팔찌를 하나 팔목에 걸어주셨다. 그때는 그냥 예쁜 금팔찌가 생겨서 좋았지, 그렇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우리 할머니는 ‘안녕’이라고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갑자기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뭐가 그렇게 급하셨던 건지 그냥 갑자기. 어디가 특별히 아프신 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되었다. 내가 연락을 받고 내려갔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보며 나는, ‘ 아 저기에는 우리 할머니가 이제 없구나…‘‘, ‘이제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공기 중으로 흩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그곳에 누워계신 할머니가 마치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낯설었고 지구상의 한 공간이 텅 빈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살가운 손녀는 아니었지만, 집안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덕에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돌아가신 후로도 가끔 할머니 생각을 나곤 했다. 유쾌하신 분이기도 했고, 티브이에 나문희 님이 나오면 닮은 그 모습에 무슨 연관검색어처럼 그렇게 떠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조금씩 덜 생각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조금은 희미해졌던 할머니가 얼마 전에 꿈에 나타나셨다. 거실에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를 보며 나는 너무 반가워 “할머니~~~!!!” 부르며 뛰어가 안으면서 잠에서 깬 것 같다. 꿈속에서 할머니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꿈에서 깨고 나서 그게 그냥 꿈인 게 아쉬울 만큼 많이 반가웠었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던 걸까? 그 꿈 이후로 요즘 할머니가 자주 생각난다. 정말 해맑은 소녀 같았던 우리 할머니 웃는 모습이 왠지 자꾸 보고 싶어진다. 이제까지 살면서 우리 할머니만큼 해맑게 웃는 할머니를 본 적이 없다. 가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웃음이 가끔 그립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운 날이면 할머니 좋아하시던 곳에 할머니가 주신 금팔찌를 하고 가서 한 바퀴 돌고 온다. 그냥 그렇게 한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고 돌아온다. 아마 ‘어딘가에서 듣고 계시겠지!’ 하면서. 김상욱 박사님이 그랬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니 사람이 죽으면 원자로 돌아갈 거라고. 원자는 영원불멸하기에 형태만 바뀌는 것이니, 그렇게 원자로 어딘가에, 나무에, 별에, 우주에 존재하는 걸 거라고. 

 

어릴 때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도 나이가 드나 싶기도 하고, 철없었던 내 모습에 누군가 상처가 되었을까 미안해지기도 한다. 조금 더 잘할 걸 후회되기도 하고. 할머니 뵈러 가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좋았던 무심한 손녀에게 금팔찌를 둘러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는 나이가 되니, 요즘 유난히 할머니가 보고 싶다. 밤하늘의 밝고 반짝이는 별만큼 웃는 모습이 제일 예뻤던 우리 할머니, 그곳에서도 그렇게 활짝 웃고 계시겠지. 우리가 다시 만나려면 내가 별이 되는 날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할 테니, 그 사이의 아쉬운 시간 동안은 지금 내 팔목에 있는 이 금팔찌를 보며 가끔씩 할머니를 기억하려고 한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그렇게 서로를 지켜볼 수 있다 생각하면서.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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