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벌써 9월이라 가을로 향하는 중이지만, 낮 시간의 제주는 아직도 한여름처럼 덥다. 덥긴 해도 여름의 제주는 참 예쁘다. 사실 사계절이 모두 예쁜 섬이지만, 여름의 제주는 정말 맑고 파랗다. 초록도 일 년 중 가장 강한 녹색을 뿜어내고, 장마가 지나가고 난 자리의 하늘은 한번 눈이 마주치고 나면 계속 쳐다보게 되는 마력이 있다. 그만큼 제주의 여름은 생기가 넘친다.
그런 계절에 오랜만에 외국에 사는 동생이 왔다. 동생이 오면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가 바빠진다. 매일 한 번씩 물놀이도 가야 하고, 맛있는 식당도 찾아다니며 먹어야 하고, 필요한 물건들도 사러 다니고, 구경할 곳 많은 제주를 이리저리 열심히도 돌아다닌다. 특히 가장 들떠있는 건 우리 조카다.
조카는 우리 집 식구 중 막냇동생을 가장 좋아한다. 갓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 이제 막 눈 맞춤을 시작한 아기가 막내동생만 보면 까르르까르르 연신 웃어댔다. 마치 원래 알던 사이였다는 듯, ‘난 네가 너무 좋아.’라는 눈빛으로 그렇게 방긋방긋 예쁜 웃음을 보였다. 열 살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막내동생이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날로 카운트다운 달력까지 만들어서 하루하루 지워갈만큼, 그렇게 동생이 올 날만을 기다린다.
하도 좋아하길래 한번은 이런 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니, 00이가 왜 그렇게 좋아???”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랬다. “어……. 좋으니까 좋지!” 참 내. 그래서 질문을 바꿔 물었다. “그러니까 뭐가 그렇게 좋냐고….” “음…. 그거는 바깥도 좋고…. (외형이 좋다는 말이다)…. 안에도 좋고…. (성격도 좋고, 말투며 자신을 대하는 것도 다 좋다는 말이다) 몰라. 그냥 다 좋아.”
그래서 내가 막내동생에게 그랬다. 넌 참 복 받은 아이다. 이렇게 너를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다니. 이만큼이나 맹목적인 사랑을 어디 가서 받겠냐고. 막내도 100% 수긍하는 눈치다.
막내동생은 지금 외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1-2주 정도 들어와 잠깐 시간을 같이하고 돌아간다. 그래서 조카에게는 그 잠깐의 시간이 더욱더 소중해진 모양이다. 동생이 오면 정말 껌딱지도 그런 껌딱지가 없다. 이제는 키도 제법 큰 어린이인데, 매미처럼 그렇게 팔 장을 꽉 끼고 종일 붙어 다닌다. 그뿐인가. 중간중간에 계속 사랑표현을 한다. 뽀뽀하기도 하고 꽉 끌어안기도 하고, 안아달라고 하기도 하고, 삼촌에게 누가 제일 좋냐고 답정너같은 질문을 날리기도 한다. 막내동생을 바라보는 조카의 눈은 늘 하트가 뿅뿅이다.
그런 동생이 휴가를 마치고 있던 곳으로 떠났다. 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보게 될 날까지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공항에 마중을 나갈 때마다, 아니 사실은 그 전부터 조카는 이미 눈물 바람이다. 헤어짐이 슬퍼서 울겠지만, 그야말로 대성통곡 수준이다. 공항에서 삼촌을 보낼 때까지는 꾹꾹 눌러 참았다가, 삼촌이 출국장 안으로 떠나고 나면 정말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저 집에 무슨 일이 있나 싶은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볼 만큼 그렇게 슬퍼한다. 집에 돌아와서도 며칠을 울면서 지낸다. 뭘 해줘도 웃지 않고, 뭘 봐도 즐거워하지 않고, 자려고 누워서도 “삼촌이 보고 싶어 ㅠㅠᅲᅲ”라면서 눈물을 흘린다.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한 이별인데도, 조카는 영 익숙해 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전생에 사이가 좋아도 너무 좋은 남매였으려나... 나와 둘째도 동생이 떠나면 아쉽기는 매한가지지만, 우린 어른이니까, “아, 헛헛하네..” 하며 빈구석이 있는 집 공기를 서로 조금씩 채워보려 노력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집들도 이럴까? 어릴 때는 서로 부비적거리며 한 집에서 부모님이랑 같이 살다가, 나이가 들어가면 학교 때문에 집을 떠나야 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게 되어 또 다른 가족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는 환경은 생기기 마련이고, 때로는 지역이 아주 멀어져서 명절 때나 간신히 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사람의 일생이 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그 상황에 적응해 가면서 산다. 그런데 우리 집은 어떻게 보면 조금 유난한가 싶기도 하다. 좋게 생각하면, 가족끼리의 우애가 좋은 거지만, 또 가끔씩 너무 슬퍼하고 있는 조카나 허전한 마음을 채우지 못하는 나를 보면 ‘아, 좀 오반가.’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난 유난히 물건을 잘 못 버린다. 많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서 그런가. 20년 전에 여행에서 받아온 팸플릿이며, 어릴 때 받았던 편지들,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바닷가에서 주어온 돌멩이까지 아주 잘 보관 중이다. 요즘 자주 보이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사람도 그렇지만 물건에도 어떤 에너지가 서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래된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하고 가끔 꺼내보면서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저 돌멩이로 치부해버리고 돌려보내도 그만인데, 나도 참. 그래서 미니멀리스트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맥시멀리스트라면 모를까.
이별도 비슷하다. 이별이라는 게 해버리고 나면 그만일 때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별이 어렵다. 지나고 나면 다시 일상에 적응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깊이 한때의 감정에 빠진 내가 적응이 잘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직 나만의 가정을 꾸리지 않고, 가족 같은 강아지 두 마리와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나란 인간이 그런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이별에 단단한 사람을 보면, ‘참 건조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단단함이 매우 어른스러워 보여 부럽기도 하다. 그 사람들은 이별이 정말 익숙한 걸까, 아니면 익숙한 척 연기를 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어른이 된다는 건, 여러모로 참 신경 쓰이고 재미없는 일이다. 어른 같은 어른이 된다는 건 더 그렇고. 노력해도 잘 자라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에게는 영원한 숙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 사람들은 진짜로 헤어짐에 아무 느낌이 없는 무감각한 인간이거나, 아니면 사실은 슬픈데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있는 중일 거라고. 사실은 나랑 비슷할 거라고. 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나니 좀 편하다.
처음 막내가 외국으로 떠날 때는, 고생하러 멀리 떠나는 아버지를 보내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 식구들은 공항에서 다 엉엉 울었다. 그 모습을 본 제부, 형부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뭘 저렇게까지….’ 했을 거다. 아 물론, 조카보다는 어른이니까 잘 다녀오라고 어깨 한두 번 툭툭 쳐주고 출국장안으로 동생이 사라지고 난 뒤에 울었다. 하하. 그래 어쩌면 우리 가족이 좀 유난스러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조카도 동생이 가는 날엔 슬프고 아쉬웠고, 다음번에 만날 날을 벌써 기다리면서 자기 자리에서 하루씩 시간을 채워가며 산다. 가끔씩 그리우면 다자통화로 수다도 떨면서 그렇게 빈자리를 채워간다. 조카도 여전히 삼촌을 보고 싶어 하지만, 때때로 삼촌 전화보다 자기 할 일이 먼저가 돼가며 그렇게 잘 적응하고 있다.
며칠 전 둘째 동생과 차 한잔하러 가는 길에 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말야, 형제가 많고, 이렇게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게 인생에 있어서 참 큰 복인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그랬다. “그치?”
좀 유난스러우면 어떤가. 가족이란 게 다 그런 거지. 막내는 자신이 누구든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좋고, 조카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삼촌을 가져서 좋고, 나나 둘째는 든든한 동생이 있어서 좋고. 다들 그렇게 조금씩 이유야 다르겠지만 그저 마냥 서로 좋은 것. 그래서 난 우리 가족의 이런 유난함이 참 좋다.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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