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작약에 대한 단상 / 복효근

서대선 | 기사입력 2025/06/23 [09:18]

[이 아침의 시] 작약에 대한 단상 / 복효근

서대선 | 입력 : 2025/06/23 [09:18]

 

작약에 대한 단상

 

모든 폭약 속의 작약炸藥*을 쏟아내고 꽃병을 만들어서**

 

작약芍藥을 꽂는다면 

 

신께서도 환호작약歡呼雀躍하실 텐데

 

*작약炸藥: 폭약 속에 장치하여 폭발시키는 작용을 하는 화약

**움베르토 에코 「폭탄과 장군」

 

# ‘이 새벽에 어디 가는 걸까요?’ 희부연 새벽, 삽과 곡괭이를 둘러멘 일단의 군인들이 화천 천문대 옆 소로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유골 발굴단이라 했다. 육 이오 동란 때 전사하였으나 아직도 집으로 돌아 가지 못 한 채, 산속이나 능선 아래 어딘가에서 영면에 들지 못한 전사들의 유골을 찾으러 가는 군인들이었다. 우리은하에서 아직 만나지 못했던 별들을 찾아보러 화천 천문대를 방문했는데, 아득한 우주 속에서 반짝이던 별들과 눈 맞추었던 새벽, 뜻하지 않게 조국을 지키려다 별이 된 채, 어느 산골짜기에서 가물가물 수신호를 보내고 있을 영혼을 찾아 나선 군인들을 보게 되었다.      

지구가 속해있는 우리은하의 크기는 10만 광년(light year)이라 한다. 광년은 빛이 진공 속에서 1년 동안 진행한 거리를 의미한다. 우리은하에는 약 4천억 개의 별들이 있고, 태양계는 이 별들 중에서 극히 평범한 항성일 뿐이다. 지구는 태양계에서 세 번째 행성이다. 우리은하에 비해 지구의 크기를 유추해 본다면, ‘태양 53개를 일렬로 세운 길이를 지름으로 하는 면적 안에 1mm 짜리 모래 한 알과 같은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창백한 푸른 점’으로 불리는 지구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면적은 약 29% 정도이다. 이곳에서 현재 약 82억 명(2025년 2월 28일 기준)의 인간과 동물들과 식물들과 다양한 생명체가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런 지구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범유행 전염병, 기근, 자연재해와 더불어 인류 역사에서 빠진 적이 없는 재난 중 하나다. 전쟁은 왜 일어날까?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Kenneth Neal Waltz, 1924-2013)는 전쟁의 원인을 개인의 심리, 국가 내부의 정치, 국가 간의 정치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이든지, ‘인류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인류를 끝낼 것이다(Mankind must put an end to war, or war will put an end to mankind)’라던 존 F. 케네디의 말을 되뇌면 섬뜩해진다. 시인은 “모든 폭약 속의 작약炸藥을 쏟아내고 꽃병을 만들어서” “작약芍藥을 꽂는다면” “신께서도 환호작약歡呼雀躍하실 텐데”라며 인간에겐 전쟁 무기조차도 아름다운 꽃과 꽃병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자유의지(Free will)와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가 있음을 일깨운다. 

 

1990년 2월 14일 명왕성을 지나던 보이저 2호가 카메라를 돌려 찍었던 지구는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은하 속에서 빛나는 약 4천억 개의 별들 중 하나일 뿐인 태양을 따라 도는 행성인 지구 곳곳에서는 오늘도 전쟁으로 소중한 목숨이 들판에서, 산골짜기에서, 능선 아래서 가족을 그리며 스러지고 있다. 시인의 소망처럼 “폭약”이 가득 찬 무기마다 “꽃병”으로 만들고, 삽과 곡괭이를 멘 우리의 젊은 자손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받쳤으나 아직도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유골(遺骨)을 찾는 대신, 산골짜기와 능선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심는 날을 기원해 본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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