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 쇼크와 전세가 하락 갭투자 붕괴와 보증금 사고 정부 대책, 실효성 논란
2022년부터 본격화된 ‘역전세난’은 단순한 시장 혼란을 넘어 전세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나게 했다. 이로인해 업계에선 한국 주거 시스템에 대한 재설계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고금리와 공급 과잉, 갭투자 붕괴로 전세 시장이 흔들리고 여기에 더해 전세사기피해 사례가 급증하면서 월세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 마저도 월세 가격 상승으로 서민들의 생계비 부담이 늘어나 '월세 대란'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연 4~5%대까지 상승하면서 같은 보증금으로 월세로 전환할 경우 오히려 경제적 부담이 줄어드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세입자들의 월세 선호를 가속화시켰고 전세 수요를 빠르게 위축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공급 측면에서도 전세 시장을 압박하는 요인이 나타났다. 주택산업연구원이 올해 1월 발표한 주택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부터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를 중심으로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증하며 전세 공급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격이 10~30% 이상 하락했고, 특히 연립·다세대주택은 최대 30% 이상 급락한 사례도 확인됐다. 그 결과 집주인들이 기존 보증금보다 낮은 금액에 재계약을 맺어야 하는 ‘역전세’ 상황이 현실화됐다.
전세 시장을 떠받치던 투자 구조도 흔들렸다. 저금리기 무자본 갭투자자들이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을 대거 매입했으나, 금리가 오르고 가격이 하락하면서 자금 조달에 실패한 경우가 속출했다. 금융감독원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 금액은 2023년 4조 3000억 원, 2024년에는 5조 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5년 상반기 현재도 사고 규모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주택 시장의 구조적 붕괴'로 해석하며 단기적 대응을 넘어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역전세난과 전세사기 문제에 대응해 2023년 5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4년에는 피해 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주택 매입 지원 요건을 완화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피해자 단체와 일부 시민단체는 ‘선구제 후회수’ 방식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구제 절차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HUG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 완화, 역전세 대출 상품 확대 등도 시행됐지만, 임대인의 신용도나 부채구조 문제가 발목을 잡으며 실효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25년 2월 보고서에서 “정부의 대응이 단기적 미봉책에 그치고 있으며, 임대인의 투명성 확보와 정보 비대칭 해소 같은 구조적 과제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교통부가 2025년 5월 발표한 전월세 실거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국 전월세 거래량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를 넘어섰고 서울 아파트의 경우 일부 월에는 70%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보다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선호하는 임대인, 고금리 상황에서 전세 부담을 회피하려는 세입자의 선택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서울대학교 부동산연구소는 2025년 3월 보고서에서 “전세 제도는 임대인의 신용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로, 과거에는 집값 상승과 저금리가 이 위험을 은폐했지만, 지금은 제도의 근본적 불안정성이 드러난 상태”라고 분석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024년 말 보고서를 통해 “선진국 대부분이 월세 중심의 임대차 시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 같은 방향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단순히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투명성과 세입자 보호 장치를 갖춘 ‘안정적인 월세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전월세 신고제 정착 ▲표준임대차계약서 의무화 ▲보증보험 가입 의무 확대 ▲공공임대주택 확충 등 종합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한국 주거문화의 상징이었던 전세는 점점 그 실효성과 지속 가능성을 잃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관행’에 의존한 전세 시스템이 아닌, 새로운 시대에 맞는 주거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이는 단지 주택 가격이나 수익률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삶과 권리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화저널21 배소윤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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