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 이준석 의원(후보)이 지난달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제21대 대통령 선거 초청 대상 3차 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만약 어떤 사람이 여성에 대해 ‘여성의 어떤 성기나 이런 곳에 젓가락을 꽂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면, 이는 여성 혐오에 해당하느냐”는 질문을 던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발언은 이재명 후보의 장남이 과거 커뮤니티에 쓴 글을 인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성적 혐오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면서 비판이 커졌다.
이튿날인 5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 21명이 공동으로 이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어 6월 4일부터는 ‘이준석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관한 국회 동의 청원’이 시작됐으며, 10일 현재 5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청원에 참여했다. 청원 마감일인 7월 4일까지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회는 청원 결과와 징계안 심사를 바탕으로 징계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 의원과 개혁신당 측은 제명이 현실화될 경우, 1979년 신민당 김영삼 총재의 제명 사례처럼 정치적 존재감이 오히려 커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법상 제명된 의원은 직전 지역구에 재출마할 수 없어 정치적 생명이 사실상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위기 속에서 이 의원이 어떤 대응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징계 수위, 결국 '제명'으로 귀결될까…정국 경색 우려
국회법 제155조는 국회의원의 징계 사유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163조는 징계의 종류를 ①공개회의에서의 경고, ②공개회의에서의 사과, ③30일 이내의 출석정지, ④제명으로 나눈다. 이 중 출석정지는 수당과 입법활동비의 절반이 감액되는 제재지만,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은 미미하다. 결국 논란의 중심은 제명 여부에 맞춰지고 있다.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의원이 실제로 제명된 사례는 1979년 10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가 유일하다. 당시 김 총재는 YH무역 여공 사망 사건 이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정권의 지지를 철회해달라고 요청해 정치적 파장을 일으켰고, 이에 박 대통령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통해 제명을 지시했다. 김 총재는 끝내 해명을 거부했고, 공화당 주도로 제명이 강행됐다. 이는 부마항쟁과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같은 역사적 맥락을 오늘날 이준석 의원의 상황에 단순히 대입하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제명되면 김영삼처럼 정치적 거목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논리 비약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삼 전 총재는 당시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민주화 투사의 상징이었으나, 이준석 의원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표현의 부적절성에서 비롯된 문제로 본질이 다르다.
청원 동참 100만 명 넘을 듯…정치적 생존 기로에 선 이준석
6월 10일 기준, 이준석 의원 제명 청원은 이미 50만 명을 돌파했고, 청원 마감일까지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회 징계안 처리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국회 재적의원은 이재명, 강훈식 의원의 사퇴로 298명이며, 제명안이 가결되기 위해서는 재적의원 3분의 2인 199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개혁신당(3석)과 국민의힘(107석)을 제외한 여권 및 무소속 의원 약 188명이 제명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일부 의원이 추가로 찬성할 경우 제명안 가결이 가능해진다. 특히 단일화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국민의힘 내 일부 의원들이 제명에 동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명안이 통과되면 이준석 의원은 해당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없으며, 정치적 입지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는 곧 정치적 생존 여부가 징계 수위 결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솔한 사과와 자성 필요 보수정치의 거목으로 성장할 기회 되기를
이준석 의원은 지난 3일 대선에서 전국 평균 8.3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1987년 13대 대선 당시 김종필 후보가 기록한 8.06%를 상회하는 수치로, 상당한 정치적 기반을 입증한 결과다. 출마 초기 2% 내외의 지지율에서 시작해 이뤄낸 성과라는 점에서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문제 발언이 없었다면 더 높은 득표율도 가능했을 것이란 분석이 따른다. 전국민이 시청하는 TV 토론회에서 대선 후보로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 것은 명백한 실책이었다.
이 의원이 향후 보수 진영의 리더로 성장하길 기대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다만 그를 향한 국민적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이번 사안을 계기로 진정성 있는 사과와 성찰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1954년 4대 국회에 입성한 김영삼은 39년 만에 대통령이 되었고, 1961년 정계에 발을 디딘 김대중도 37년 만에 대권을 쥐었다. 정치는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다. 이준석 의원이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이번 위기를 보수정치의 거목으로 성장하는 전환점으로 삼기를 바란다.
문화저널21 최병국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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