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십 년간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전문기술인으로서, 이 문제의 본질과 대안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전세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주택임대차 형태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왜일까?
그 배경엔 금융 시스템의 차이가 있다. 서구 국가들은 주택 구입을 위한 금융이 충분하고, 은행이 자율성과 경쟁을 바탕으로 저리의 장기 대출을 제공한다. 소득만 있으면 누구나 시중은행에서 주택 가격의 80% 이상을 대출받을 수 있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금융 시스템의 제약으로 인해, 목돈을 한 번에 맡기고 거주하는 전세라는 기형적 제도가 뿌리내린 것이다.
전세사기의 구조는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다. 그것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선심성 전세대출 보증제도의 산물이다. 특히 2008년 이후 전세대출 규모는 정권에 따라 부풀려졌고, 공공기관 보증을 앞세운 대출은 위험을 방기한 채 확대되었다.
은행 창구 직원은 임대인에 대한 신용평가도 없이 대출을 실행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명분 아래 임대인의 채무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구조는 결국 대규모 전세사기를 낳았다.
2020년 시행된 임대차 3법 역시 사태를 키운 원인이 됐다. 임대료와 계약갱신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면서 전세 시장의 왜곡을 초래했고, 무자본 갭투자와 ‘빌라왕’, ‘건축왕’ 같은 전세사기범들이 활개를 치게 만들었다. 전세사기의 공범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무자본 임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동산 중개업소, 법률 대리인, 금융기관, 그리고 무엇보다 제도와 관리의 책임을 진 정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나는 오랜 건설업 경력을 통해 확신한다. 부동산 소개업소와 소유주는 대부분 연결되어 있다. 중개업자는 ‘말’로 설득하고, 초년생은 그 말을 100% 신뢰한 채 사기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동산 계약은 철저히 본인의 확인과 검증 없이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이제 피해 예방을 위한 몇 가지 핵심사항을 국민께 제안드린다:
1. 계약 전 서류 확인: 토지등기부등본, 건물대장, 도시계획서 등 관련 문서를 관계기관에서 직접 확인하라.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만 믿지 말고, 본인이 채권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계약서에 명시하라.
2. 중도금 지급 시 반복 확인: 계약 시점과 중도금 시점의 서류 상태가 동일한지 반드시 확인하라. 등기부 상 변동이 없는지를 직접 발품 팔아 체크해야 한다.
3. 잔금 지급은 평일에, 즉시 등기 절차 이행: 잔금을 토요일이나 휴일에 치르면 다음 날 등기까지 공백이 생기며 사기 위험이 커진다. 가능한 한 평일에 잔금을 지급하고, 동시에 등기와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4. 선순위 채권 확인: 본인이 계약하려는 부동산에 선순위 저당이 있다면 그 물건은 위험하다. 소유자나 중개업자의 말이 아닌 서류로 확인하라.
5. 체납 정보·권리관계 검증: 국세·지방세 체납 여부, 전입자 유무, 확정일자 부여 현황 등도 반드시 확인하라. 말로 하는 약속이 아니라, 문서로 증명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단순한 단속이 아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금융 시스템의 투명성과 부동산 정보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 부동산 중개업소의 책임 강화, 전세보증보험 의무화, 임대인의 금융 이력 공개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2030세대와 서민들이 더 이상 전세사기라는 구조적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선 안 된다. "믿을 놈 없다"는 냉소적 자조가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이 개인을 지켜주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제도 개선을 통한 재발 방지책 마련과 함께, 피해자를 위한 실질적인 구제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전세사기는 단순한 사기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암덩어리이며, 그 제거는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책임이다.
김태일 풍수지리학 박사, 토목특급기술사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