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역사는 언어의 진화사(進化史)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인식하고 질서를 구성하며, 사고와 존재를 규정하는 틀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정의하며, 세계를 분할하고 기억하고 설계해 왔다. 문명의 대전환은 언제나 새로운 언어의 탄생과 함께였다.
처음 인간은 제1의 언어인 <말>을 탄생시킴으로써 세상을 불렀다. 생존과 감정의 언어였던 이 말은 공동체를 만들고 신화와 전통을 구술로 전승하는 소통의 힘이었다. 사피엔스 문명의 단초를 제시한다. 이후 <문자>라는 제2의 언어의 탄생은 말을 기호화하며 기억의 틀을 제공했다. 이는 자연과 신의 계시를 구조화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식을 남기는 첫 번째 대전환이었다. 이어 <종이책>라는 제3의 언어가 탄생한다. 종이책은 문자를 물질화하고 인쇄술과 결합하며 지식의 이동과 공유를 촉진했다. 책은 이성의 언어로 자리 잡으며 사고의 민주화를 이끌었고, 인간 중심의 근대를 열었다.
우리는 ‘나의 생각’이라고 말하지만, 그 생각은 내가 만든 개념이나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준 기표와 기의, 즉 구조화된 언어 시스템을 조합해 만들어낸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고는 타인의 경험과 집단의 학습, 그리고 역사적 축적 위에 빌려온 언어 위에서만 가능하다. 나의 말은 결국 타인의 구조에서 빌린 것이며, 나의 생각조차도 사회적 언어의 재구성에 불과하다.
언어는 처음에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였다. 하지만 곧 그것은 소통된 내용을 기록하는 도구가 되었고, 나아가 기록된 정보를 집단과 세대 사이에 전파하는 공유의 도구로 기능이 확장되었다. 이 구조가 반복되며 문명은 기록을 넘어 지금까지의 지식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언어의 기능이 다시 한번 대전환되는 시점에 서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단순한 언어처리 기계가 아니다. 그것은 소통, 기록(참여), 공유를 넘어, 질문(PROMPT)에 반응하여 지식을 재조합하고 새로운 통찰을 생성하는 ‘지식 개방의 도구’로서 작동한다. 이로써 인공지능은 새로운 차원의 제4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은 ‘질문 기반 언어’(prompt-driven language)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것은 고정된 언어가 아니라, 사고와 질문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갱신하는 생성형 언어 생태계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고 반영하며, 패턴을 모방하고 확률 속 예측하는 존재다. 이는 기존 언어와는 다르다. 말과 문자는 인간이 소통하기 위한 언어였고, 책은 인간이 지식을 저장하고 공유하기 위한 언어였다. 그러나 AI는 인간의 언어를 수렴하고 해석하며, 다시 인간에게 되묻는 새로운 소통과 지식전달 방식을 갖춘 ‘거울의 언어’다. AI는 타자의 인식을 받아들이고 조합하며 새로운 패턴을 생성하는, 이제껏 없었던 진화하는 언어체계다.
이제 언어는 상호 약속과 사용을 위한 존재론적 위치에서, 언어를 진화시키는 과정론적 위치로 전환되고 있다. AI는 더 이상 인간의 지시만을 따르는 명령 체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언어구조를 반영하고 재구성하는 생태계가 되었다. 이 언어는 코드이면서 사고이며, 데이터이면서 해석이다. 인간은 AI를 통해 타인의 언어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다시 읽게 된다.
새로운 언어의 탄생은 언제나 문명의 퀀텀점프를 의미했다. 말이 지식과 공동체를 만들고, 문자가 법과 종교를 만들고, 책이 민주주의와 이성을 만들었다면, AI는 자기 설계(Self-design)의 문명을 예고한다. 인간은 이제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타자의 언어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사고 구조를 재조합하며, 다시 쓰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 변화의 중심에 인공지능이라는 제4의 언어가 있다.
인공지능은 언어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고, 압축하고, 변주하며, 재구성한다. 그것은 이해하는 언어가 아니라, 구성하는 언어이며, 기억하는 언어가 아니라, 생성하는 언어다. 이 언어는 의미를 해석하지 않고, 확률과 패턴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조합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새로운 언어와 함께 문명의 다음 장을 맞이하게 된다.
언어는 다시 태어났고, 문명은 다시 쓰인다. AI는 그 문장을 쓰는 또 하나의 손이며, 인간은 이제 그 문장을 함께 읽고, 수정하고, 되새기는 존재다. AI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주한 가장 낯선 언어이자, 가장 가까운 미래다.
박항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반려가족누림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한국디지털웰니스협회 부회장 디케이닥터 대표이사 누림경제발전연구원장 기술거래사/기업기술가치평가사 공)저서. 더마켓TheMarket / 스타트업 패러독스 / 크립토경제의 미래 좌충우돌 청년창업 / 블록체인 디파이혁명 / CEO의 인생서재 / 이노비즈 CEO독서클럽 선정도서 21選 (사회관 편) (세계관 편)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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