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이리저리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 봄맞이 대청소를 시작했다. 작년에 떨어져 내렸던 낙엽을 긁어모았다. 텃밭, 마당, 집 둘레, 정원, 서재, 연못가. 연꽃밭, 그리고 둔덕과 둔덕을 오르는 계단과 쉼터에서 겨우내 폭설과 비바람을 견디었던 낙엽을 긁어내 대형 주머니에 담아 퇴비가 되도록 묶어 두었다. 텃밭도, 마당도, 집 둘레도, 둔덕도 깨끗하게 세수한 듯 훤하다. 산벚나무와 오리나무가 서있는 남서향 둔덕이 폭설에 무너져 내려 생토를 들어냈다. 백년도 넘은 산벚나무와 오리나무 아래는 잡풀도 잘 자라지 못했다. 500mm가 넘는 폭설의 무게가 버거웠던지 나무 아래 낙엽을 걷으니 푸슬푸슬 생토가 허물어져 내렸다.
큰 나무 아래는 반그늘이 지는 곳이라 화사한 꽃밭은 만들기 어렵지만, 토양과 햇살의 정도를 생각하며 심을 수 있는 식물을 찾아보기로 하고 허물어진 둔덕 생토를 평평하게 만들었다. 흙 속에 듬성듬성 고개를 내민 잔돌들을 골라내고, 딱딱하게 뭉쳐있던 흙덩어리는 호미로 잘게 부수었다. 생토에 부엽토와 퇴비를 섞어 주며 땅의 배수 상태를 살폈다. 화려한 꽃은 아니지만 큰 나무 아래서도 푸른 이파리를 씩씩하게 올릴 수 있는 산마늘 모종을 심었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면, 만들고 싶은 꽃밭의 땅 상태를 살펴야 한다. 만약 한 번도 파헤친 적이 없는 생땅이라면 우선 그 땅을 꽃이 자랄 수 있는 토양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그다음 물이 빠지는 배수 상태를 알아보아야 한다. 만약 진흙땅이라면 진흙이 뿌리에 엉겨 붙어 뿌리가 제대로 잔뿌리를 내릴 수 없을 것이고, 마사토만 있는 땅이면 물이 너무 쉽게 빠지고 영양분이 적어 이런 토양에 맞는 꽃을 골라야 할 것이다. 만들려는 꽃밭의 방위와 햇볕이 드는 정도를 살펴 따로 배수로를 설치하여야 봄장마, 여름 장마, 가뭄 등을 견딜 수 있다. 생토에 처음 꽃밭을 만든다면 씨앗을 발아시키기보다는 모종을 심는 것이 실패를 줄일 수 있으며, 한두 포기보다는 충분한 양을 심는 것이 좋다.
한철 피우고 사라지는 꽃보다는 수선화, 튤립, 글라디오러스, 백합, 달리아 같은 구근식물을 심어보는 것도 좋다. 만약 꽃밭 주변에 침엽수가 있다면, 조그만 꽃밭에는 화려한 색상의 꽃을 심어 포인트를 주는 것도 좋다. 처음 만드는 꽃밭에는 유실 수보다는 병충해나 날씨에도 강하고 씨앗도 많이 맺는 봉숭아, 채송화, 메리골드, 꽃잔디, 맥문동 등도 잘 자란다. 이렇게 시작해서 꽃밭 가꾸기에 자신이 붙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꽃을 심어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자신만의 꽃밭을 가꿀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을 가꾸는 것도 꽃밭 가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잘 가꾸어진 남의 꽃밭은 쉬워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꽃밭의 크기를 정하고, 꽃밭의 토양을 고르고, 꽃밭의 배수로를 설치하고, 꽃밭의 방위와 햇빛의 정도를 살피고, 꽃의 종류를 선택하고, 수시로 잡초를 뽑아주고 돌보아야, 꽃들도 자신을 꽃피어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과 웃음을 담아 말을 건넬 것이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 책도 손에 안 잡히고, 사람도 만나기 싫을 때, 당신의 마음속에 꽃밭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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