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던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 국내 환수에 성공, 108년 만에 한국에서 실물이 공개됐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라이엇게임즈는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 왕실의 뿌리를 되찾다-경복궁 선원전 편액 환수 언론공개회'를 열었다. 이날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扁額)의 유산으로서의 가치와 돌아온 과정이 소개됐다.
'선원'은 '옥의 근원'이란 뜻으로 중국의 역사서 '구당서'에서 왕실을 옥으로 비유한 것에서 유래했다. '왕실의 유구한 뿌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만큼 이 공간에 쓰인 편액도 상당히 가치가 높은 유산이다.
조선 왕실의 궁궐 건물은 역할과 성격에 따라 위계의 차등이 있었는데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인 '전(殿)'에 걸렸던 편액으로 ▲바탕판의 옻칠 ▲글씨는 금을 사용한 금자(金字) ▲테두리를 연장한 봉의 구름무늬 조각 등 격식 높은 현판 양식을 보여준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조선왕실의 뿌리와 전통의 계승을 상징하는 경복궁 선원전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며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이 유물을 3·1절 106주년을 앞두고 공개할 수 있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고궁박물관이 소장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라며 "일반 공개도 계획 중으로 국민과 함께 가치를 공유하도록 다양한 기회를 만들겠다"고 더했다.
국가유산청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경복궁 선원전 편액'의 정보를 입수해 문헌 조사, 전문가들의 평가와 직접 조사하는 실견을 거친 끝에 지난해 2월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받아 국내로 환수하는데 성공했다.
선원전은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現 덕수궁)에 있었다. 조선 왕실 최초의 선원전은 1444년 창건된 경복궁 선원전으로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가 이후 1868년 고종 때 재건됐다.
이번에 환수된 유물은 각 궁궐에서 선원전 건립 및 소실과 관련된 정황과 관련 문헌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재건(1868년)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으로 추정된다.
구본능 단청기술연구소장은 "현판의 형식 중 가장 위계가 높은 '사변형'의 형태를 간직한 점, 현재 남아있는 창덕궁 선원전에 걸기엔 크기가 제대로 들어맞지 않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현판에 적힌 글씨체도 이를 뒷받침한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1868년 재건된 경복궁 현판을 쓴 서사관은 당시 서승보로 기록돼 있으며 환수 유물 글씨의 필획과 결구 등 서체 특성상 서승보의 글씨로 추정된다.
서준 전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유물의 서체는 기본적으로 해서체에 일부 행서체가 가미됐다"며 "필획의 끝부분이 약간 위로 솟구쳐 오른 모양새가 서승보의 간찰(편지)에서 나타난 필체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행방이 묘연했던 선원전 편액은 2023년 11월 일본의 한 경매에 출품되면서 존재가 확인됐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서 해당 사실을 확인, 경매사 측을 상대로 경매 중지를 요청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경매가 시작하면 정부에서 환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경매 중지를 요청하고 소장자와 협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유물이 어떻게 일본으로 유출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경매사 측에서 유물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을 지낸 테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가 1916년 한국을 떠나면서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설명한 것이 전부다.
경매사의 설명자료에 따르면, 데라우치 총독은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경복궁 건물 일부를 가져와 ‘조선관’이라는 건물을 지었고 해당 유물을 보관했다. 이후 태풍으로 인해 '조선관'이 파괴됐고 해당 건물을 철거하는 과정에 참여한 한 건설업자가 유물을 수거, 소장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물 환수 과정에서 발생한 구입 대금은 라이엇 게임즈 코리아의 지원으로 마련됐다. 라이엇 게임즈는 2012년부터 국가유산청과 '한국 문화유산 보호 및 지원'을 위한 후원약정을 체결, 12년째 국외소재문화유산 환수를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석가삼존도(2014년)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2018년) ▲척암선생문집책판(2019년) ▲백자이동궁명사각호(2019년) ▲중화궁인(2019년) ▲보록(2022년) 등 해외에 있던 우리 문화유산 7건의 환수를 도왔다.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후원금을 매년 지정 기탁하는 방식으로 누적 기부금은 93억 원에 달한다.
조혁진 라이엇 게임즈 한국 대표는 "소중한 문화유산 환수에 함께할 기회를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많은 분들이 외국계 게임사가 왜 한국 문화유산 환수에 나서는지 묻는데 게임도 문화의 일부이며, 현대 문화를 만드는 기업으로서 한국의 소중한 유산을 보호하는 것이 우리 플레이어분들과 라이엇 게임즈에게도 매우 뜻 깊은 일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현재 경복궁 선원전 자리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있는데, 국가유산청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세종으로 이전하는 시점에 맞춰 2030년부터 선원전 일대 복원에 나설 예정이다. 향후 경복궁 선원전을 복원하게 되면 편액도 제 위치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저널21 이한수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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