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식당 문화는 음식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나를 소개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이야기가 오고 가는 자리다. 즉, 가장 작은 문화 교육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 브랜드 수인(수:in)의 오세인 한국전통자수 작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은 12월 1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KCDF 갤러리' 3층 1전시관에서 2024 공예매개인력양성 큐레이터 결과전 '미미한 수저집'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는 '전통 자수 수저집'이라는 일상적 공예품을 통해 현대의 식문화를 재조명하는 기획전이다. 대한민국 자수공예 명장 유희순(제345호), 대한 명인 장옥임 자수장(제09-299호 동양자수), 한국전통자수 오세인 작가가 참여해 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세 작가의 개성 있는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다. 유희순 자수장은 사라져가는 전통 기법을 세심하게 복원했고 장옥임 자수장은 전통 오방색을 넘어선 새로운 배색을 선보였다. 오세인 작가는 사직물에 고려시대 기하문양을 수놓아 현대적 해석을 시도했다.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한 오세인 작가를 만나봤다.
수저집은 단순한 식기 보관함을 넘어 우리의 '식(食)' 문화를 담아내고 그 의미를 되살린다. 집이 몸을 쉬게 하고 숨결을 깃들게 하듯, 수저집은 수(壽)와 복(福)을 담은 수저가 머무는 공간이다.
오세인 작가는 우선 고려시대 기하문양을 활용한 것에 대해 "전통을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조선시대를 많이 떠올린다"며 "하지만 전통은 그 이전부터 아주 오랫동안 쌓여온 것이기에 조선시대 이외의 다른 전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문양사를 배울 때 고려시대를 보면 심플하고 멋있는 느낌이면서 요즘에 사용하더라도 이질감이 들지가 않는다"며 "그래서 전통이 항상 이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려시대 문양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용한 직물은 '옥사(쌍둥이 누에고치가 만드는 비단의 한 종류)'인데 조선시대 혹은 근현대에 많이 나온 직물"이라며 "고려시대 문양을 가져와서 현대에 많이 사용되는 직물에 놓고 지금 바로 사용해도 어우러지게끔 시도했다"고 밝혔다.
오 작가는 '담' 시리즈 수저집 3종을 전시했다.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의미와 이야기 담(談)을 써서 수저집에 담기는 다양한 이야기를 뜻한다.
첫 번째는 한국식 수저집 '소담'이다. 음식이 풍족해 먹음직하다는 뜻의 우리말 '소담하다'와 '작은 이야기를 담은 수저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육각형의 기하문양을 가장자리를 따라 한 줄로 연이어져 진행되게 배치했다.
이 문양은 우리나라 전통 문양인 '구갑문'으로 서산 문수사의 금동 아미타불 복장물(불상 안에 봉안하는 물건)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직물의 문양을 활용했다. 구갑문 속 작은 구갑문을 배치해 이중 구갑문이 연속되도록 했으며 전통 문양을 수놓고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제작했다. 특히 장수를 의미하는 거북이의 등껍질 문양을 사용한 만큼 '건강'의 의미를 담았다.
두 번째는 서양식 수저집 '다담'이다. '세계 식문화를 모두 담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대표 문양은 '구문'으로 고려시대의 불화 '아미타삼존도'에 그려진 직물 문양이다. 접힌 상태에서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방향으로 문양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한국적 문양인 구문 세줄을 연이어 배치했으며 서양 식탁 문화에서 한국 문화가 잘 어우러지고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세 번째는 디저트 수저집인 '차담'이다.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대표 문양은 '연꽃'으로 고려 시대에 사용된 연꽃 문양 중 하나를 차용했다. 식사를 한 후 카페에 가서 차를 한잔하듯이 '연이어 생긴다'는 연생의 의미를 가진 연꽃을 수놓았다.
이번 작품은 기존에 선보였던 문양이나 색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심플하고 담백한 느낌이다.
오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해오면서 곡선과 꽃, 자연물 등 조금은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문양들을 작업했었다"며 "하지만 기하문양은 일정한 간격과 크기를 통해 직선적인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것이 특징인데 꼭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초점을 맞췄던 부분은 자수 기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과 바탕 직물과 색의 조합이었다"며 "문양에도 주-문양이 있고 이를 받쳐주는 부-문양이 있는데, 주문을 뚜렷이 보이게도 표현해야 하지만 부문이랑 어우러져야 해서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2025년에는 스카프와 넥타이에 한국 전통 문양을 넣는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는 "요즘은 상황에 맞는 옷을 연출하는 TPO(Time, Place, Occasion)가 중요한데 이를 완성하는 것이 넥타이라고 생각한다"며 "스카프의 경우 자체로도 멋을 내지만 최근 명품 브랜드 스카프를 가방에 메는 것이 유행이었던 것처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전통 직물과 문양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멋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전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하는 '2024 공예매개인력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미미한 수저집'을 포함한 3가지 전시가 함께 진행된다. 4개월간의 공예 큐레이터 교육 과정을 통해 내일의 공예계를 조명하고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를 탐구한 결과다.
'spiral flow - 기다림을 기약하는 마음가짐'은 공예 속 시간의 가치를 조명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현대사회의 속도전 속에서 잃어가는 '기다림'의 의미를 공예작품으로 재조명한다. 전시 제목의 'spiral flow(나선의 흐름)'는 자연의 순환처럼 공예에 깃든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공, 상, 품 工, 想, 品'은 공산품이 공예가의 창의적 해석을 통해 완상(玩賞)의 대상으로 변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일상의 공산품이 공예가의 상상력을 만나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는 특별한 전시다. 전시의 제목 '공, 상, 품(工, 想, 品)'은 '공산품'이 공예가의 상상이 더해진 '공예 생산품'이 될 수 있다는 중의적 의미를 내포한다.
문화저널21 이한수 기자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열린보도원칙' 당 매체는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홈페이지 하단 메뉴 참조 (ad@mhj21.com / cjk@mhj21.com)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