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라의 풍류가도] 산타는 어디로 갔을까?

홍사라 | 기사입력 2024/12/24 [09:13]

[홍사라의 풍류가도] 산타는 어디로 갔을까?

홍사라 | 입력 : 2024/12/24 [09:13]

  © 홍사라

 

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다. 어릴 때는 12월이 되면 늘 산타할아버지를 손꼽아 기다렸다. 세상 모든 어린이가 그렇듯 1년 중 몇 안 되게 많이 설레는 날이 크리스마스다, 성탄이 다가오면 산타할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착한 어린이가 돼보려 더 애쓰기도 하고 부모님 말씀도 조금 더 잘 들으려고 노력했다. 번번이 실패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애쓴다고 썼던 기억이 난다. 내가 부모님 말씀 잘 안 듣고 운 적도 많다는 걸 알고 선물을 안 주면 어쩌지 걱정하면서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해 크리스마스도 그랬다. 

 

울면 안 된다고 했는데 많이 울기도 했고, 온다고 해도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오시지….’ 괜한 걱정이 되었던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매해 빠지지 않고 오셨으니까 이번에도 비록 내가 울지 않는 어린이까지는 못되었어도 찾아오시겠지 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매번 내가 사는 집에 오셨으니 굴뚝이 없어도 어떻게든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디로 들어오는지 너무나 신기한 그 할아버지는 아무리 날씨가 안 좋아도 잊지 않고 12월 25일이면 늘 어딘가에 선물을 두고는 사라지셨다. 머리맡이기도 했고,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두기도 했고, 내가 걸어둔 양말 속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해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세상에. 25일이 저녁이 되었는데도 산타할아버지는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해보다 유독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다.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유독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온통 눈에 뒤덮인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는데, 이상하게 산타할아버지가 유독 늦게까지 오지 않으셨다. 평소 같으면 24일 밤에 다녀가셔서 25일 아침에 눈을 뜨면 선물이 있었어야 했는데, 25일 늦은 시간까지 그 어디에도 선물은 보이질 않았다. ‘눈이 많이와서 못 오시나?’, ‘이러다 안 오시는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랑 동생은 창문만 바라보며 눈 빠지게 기다렸던 생각이 난다. 25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산타할아버지는 깜깜무소식이라니. ‘부모님 말씀 잘 듣겠다는 약속도 안 지키고, 툭 하면 우는 어린이여서 올해 선물은 안 주시는 건가?’ 내심 겁도 났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가는데도 산타할아버지가 안 오시자 점점 실망은 커져갔고 이제는 정말 안 오시나 보다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시간만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던 그때, 실망해서 울 것 같은 얼굴이었던 두 딸에게, 어딘갈 나가셨었던 아빠가 들어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가 바쁘셨나 봐, 아빠가 들어오면서 보니까 왔다 가신 것 같은데?! 바빠서 머리맡에 두고 가시지는 못하고 마당에 두고 가신 모양이야.” 

 

하면서 나가 보자고 하셨다. 내복만 입은 채로 동생이랑 슬리퍼를 신고 뛰어나가 보니 마당에 정말 커다란 선물꾸러미가 있었다. 과장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동생 몸만큼 큰 선물이었다. 얼마나 커다랗고 무거운지 들기도 힘든 선물을 둘이서 낑낑거리고 들고 들어와 풀어보니, 몇 달을 가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미미의 집’ 이었다. 우와. 

 

그해는 미미의 집이라고 마론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이층집 장난감이 나왔던 때였다. 처음 출시한 것인지 아니면 n번째 에디션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tv에도 나오고 친구들도 다 가지고 싶어하던 아주 핫한 장난감이었다. 동생과 나는 그게 너무 가지고 싶어서 크리스마스 훨씬 전부터 미미의 집을 사달라고 부모님께 노래를 불렀는데, 부모님은 영 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졸라도 안된다는 말뿐이라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미미의 집이 가지고 싶다고, 울면 선물 안 준다고 했으니까 크리스마스까지 남은 시간 동안 안 울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고 착한 어린이가 되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약속도 했더랬다. 물론 그 약속을 잘 지키지는 못했지만.

 

막상 내 눈앞에 미미의 집이 등장하자 동생과 나는 정말 말 그대로 꺅 돌고래 소리를 내면서 너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 정말이니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그날 밤 눈밭이 추운지도 모르고 뛰어나가던 우리와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부모님, 눈을 가득 맞고 있었던 그 선물꾸러미가 있던 집 마당은 지금도 그리라면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눈이 참 많이도 왔었는데 그 커다란 선물을 몰래 가져다 둔다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그래도 이걸 받고 좋아할 딸들을 생각하며 많이 설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마다 산타할아버지가 내가 원하는 선물을 가져다주신 것은 아니지만, 1년에 딱 하루밖에 없는 크리스마스의 밤은 아직도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김없이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왔다. 조카의 산타는 동생 부부지만, 나와 남동생은 그동안 조카가 가지고 싶어했으나 엄마가 ‘절대로 안 돼’라고 했던 리스트 중에 하나씩을 골라 우리 동네 산타를 자처한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할 때가 되면 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산타할아버지는 애타게 기다리며 편지를 쓰던 그 날의 기분.

 

15살 이후로 산타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왜 안 오시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 집엔 발길을 끊으셨다. 야속해라. 아마 올해도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실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대신 그 어린 날의 설렘이 담긴 추억들을 꺼내어 읽어본다. 정원이 예쁘게 가꾸어져 있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던 그 집에서 살 때는 매해 연말이면 어김없이 선물꾸러미와 함께 산타할아버지가 보낸 카드가 도착했었다. 어떤 해에는 ‘둘 다 공부 열심히 해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축하해, 행복한 하루 되렴.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라고 적혀 있었고, 어떤 해에는 ‘올해는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참 기쁘겠구나. 축하해.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메리 크리스마스 – 산타 할아버지가’라고 적혀 있었다. 그때는 산타를 기다리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읽었던 저 글을 지금은 누군가의 산타가 된 입장으로 다시 읽는다. 아직도 내게 크리스마스는 여전히 설레고 기분 좋은 날이다. 더는 만날 수 없는 산타할아버지가 그립기는 하지만, 언젠가 만날 그날까지 누군가의 산타가 되어주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인 것 같다.

 

캐롤이 넘치는 겨울, 모두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이기를.

 

홍사라

전형적인 이공계생의 머리와 문과생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어릴때부터 음악과 미술, 동물과 책을 좋아했다.

전공과는 다르게 꽃과 공간을 다루는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해 호텔에서 ’꾸미는 사람‘으로 오래 일했고, 세계 최초의 플로리스트 협회이자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AIFD(American Institute of Floral Designers)의 멤버이다.

꽃일을 하는동안 있었던 일들을 ’꽃 한 송이 하실래요’라는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꿈꾸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추구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지독한 ’풍류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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