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녘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착해요. 엄청 착해요’ 확성기 소리에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들이 다가갔다. 재래시장 장날,장터 한쪽에 ‘못난이 농산물’ 번개 장마당을 연 청년 농부가 확성기를 잡고 목소리의 볼륨을 높이고 있었다. 겨울을 건너려 재래시장 신발가게에서 털신을 사고, 장마당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가격도 착하고 맛도 좋은 못난이 농산물’이란 플랭카드를 붙인 트럭 곁에 대형마트에서 팔리기는 조금 미흡해 보이는 농산물들이 펼쳐져 있었다. 길이가 조금 짧거나 굵기가 가는 흙당근, 마트 매대 위에서 붉은 띠에 나란히 묶여 있는 시금치와는 다르게 햇살 아래서 마구 뛰어논 아이처럼 이파리와 줄기가 자유분방한 시금치, 짱구 모양의 옥파들, 개구쟁이 아이 이마에 난 상처의 딱지처럼 거뭇한 부분이 있는 대봉감, 탁구공보다 조금 큰 밀감들과 모양이 울툭불툭한 감자들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물가가 오르니, 서민들은 상품의 외양보다는 가격의 차별화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알뜰 소비를 하려는 소비자들은 대형마트의 심사 자격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는 ‘B급’ 농산물인 ‘못난이 농산물’도 기꺼이 선택하고 있다. 겉모습은 ‘못난이’여도 맛이나 신선도는 좋다. 만약 ‘못난이 농산물’이 일반 소비자에게 소비되지 못한다면, 가축들의 사료가 되거나 폐기 처분될 것이다. 외양이 좋고, 흠 없는 농산물들은 더 많은 농약이나 비료가 사용되거나 인력이 더 들어 판매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텃밭에 자급자족을 위한 오이나 고추나 채소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은 안다. 대형마트에 전시된 가지런하고 예쁜 외모의 농산물은 유기농에선 별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운동은 제품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낭비를 줄이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소비자들이 기꺼이 ‘못난이 농산물’을 소비해 준다면, 생산자들은 비싼 노동력과 비료의 남용을 줄일 수 있으며, 폐기물도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뿐이랴, 애지중지 돌본 농산물들이 뜻밖의 재해를 당해 ‘B급의 못난이 농산물’이 되는 바람에 한숨짓는 생산자들을 위해, 소비자는 착한 가격에 싱싱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살 수 있고 생산자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는 상생의 방법인 것이다. 나도 시금치와 흙당근과 대봉감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무거워진 장바구니를 들고 장터를 돌아 나오다 팥죽집에 들렀다. 동지(冬至)가 머지않았다. 정치 과열화 현상으로 민생의 문제가 뒷전으로 밀렸어도 서민들이 살아가는 생존 현장은 치열하다.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는 장터에서 액막이 동지 팥죽을 먹는다. 팥죽 속 동동 떠 있는 하얀 새알 단자(團子)를 바라보았다. 누군가 나에게 세상을 이끌어 가는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장터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있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그런 사람들이/이 세상에서 알파이고/고귀한 인류이고/영원한 광명이”이고, 이런 사람들의 삶이 곧 시라고 대답하고 싶다. 화합과 단결을 소망했던 옛 선인들의 마음을 빚은 하얀 새알심을 숟가락으로 떠 올린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저작권자 ⓒ 문화저널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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