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황금빛 가을에 / 고영민

서대선 | 기사입력 2024/10/28 [09:01]

[이 아침의 시] 황금빛 가을에 / 고영민

서대선 | 입력 : 2024/10/28 [09:01]

황금빛 가을에

 

이젠 단풍나무가 단풍나무로만 보인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도

그냥 은행나무로만 보인다

예전엔 물든 나무에게서

의미심장한 시상(詩想)도 보이곤 했는데

이젠 그저 서 있는 나무로만 보인다

그동안 나는 너무 속아왔다

다 떠나버린 저 나무 주위를

철없이 나 혼자만 맴돌고 있었다

정작 상대는 기억도 못하는 일에

혼자 미안해하고 있었다

바닥을 쓸던 미화원이

빗자루를 들어 가지에 매달린 노란 은행잎을

왜 털어내는지 이젠 알 것 같다

그는 낙엽을 커다란 자루에 담고

길가 여기저기에 무덤덤 세워둘 뿐이다

그새 나는 너무 삭막해졌나

그렇다며 오늘은 양손 가득 은행잎을 담아

머리 위에 뿌리며 부러

낙엽 샤워라도 즐겨볼까

두고두고 꺼내 볼 인생 숏이라도 한 컷

멋지게 찍어볼까 

 

# 호박 덩굴을 걷어내고, 노랗게 익은 호박과 걷어낸 덩굴에서 딴 호박꽃 대여섯 송이를 바구니에 담았다. 작년 농사로 말려 두었던 호박씨가 봄날 싹을 틔우고, 잎을 내고, 줄기를 벋고, 꽃을 올리며, 벌도 나비도 곤충들도 불러들여 텃밭에서 가열차게 열매를 맺었다. 덕분에 우리 식탁엔 애호박나물, 호박전, 된장찌개, 비빔국수 고명으로 올라 기쁨을 주더니, 늦여름엔 어린 호박 이파리를 쪄서 강된장에 쌈까지 싸 먹을 수 있도록 푸른 잎도 무성했다. 버릴 것 하나 없는 먹거리였던 호박이 구절초 흐드러지고, 텃밭 산감나무 열매가 노랗게 익어가자, 줄거리가 시들시들 말라갔다. 여름내 먹고도 남은 대여섯 개의 호박이 노오란 보름달처럼 익고 있는데,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조그맣게 피는 호박꽃은 더는 열매를 맺기 어려워 보였다. 노랗게 익은 호박을 얇게 썰어 전을 부치고, 호박꽃은 튀겨 아침 식탁을 차렸다. 

 

감정도 늙을까? 무엇을 보아도 시큰둥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즐겁지 않거나, 오늘이 어제 같고 그날이 그날 같다면, 당신의 감정은 늙은 것이다. 감정의 노화는 신체적 노화보다 먼저 일어난다. 감정이 늙으면 삶의 전반적인 질에 영향을 미치며 신체도 빠르게 쇠퇴한다. 시골 생활의 좋은 점은 감정이 늙을 시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씨앗들의 성장과 잡초들까지 생명 있는 것들이 건네는 다채로운 감정들이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되찾아 준다.  “예전엔 물든 나무에게서/의미심장한 시상(詩想)도 보이곤 했는데”, “이젠 단풍나무가 단풍나무로만 보인다/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도/그냥 은행나무로만 보인다”는 시인은 감정이 늙은 것일까, 아니면 무슨 사연이 따로 있는 것일까? 그런 우려는 다음 행간에서 사연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동안 나는 너무 속아왔다/다 떠나버린 저 나무 주위를/철없이 나 혼자만 맴돌고 있었다/정작 상대는 기억도 못하는 일에/혼자 미안해하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해결되지 못하고 전두엽(前頭葉) 깊숙이 저장되어 있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억은 독특한 감정을 수반한다. ‘응축(凝縮)’된 채 남아 있던 기억이 불러일으킨 감정은 늙지도 않는다. 되살아난 기억은 마치 현재의 사건처럼 새롭게 재생되어 생생한 아픔이나 회한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시인은 저 단풍나무 아래서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던 어떤 사연을 기억 속에 품고 있었던 듯하다. 감정은 모든 선택의 원동력이다. “정작 상대는 기억도 못하는 일”이었건만 시인은 혼자 그날 단풍나무 아래서의 사연을 선택하였다. 시인이 전두엽 깊숙이 저장해둔 그 기억을 재생시키며 “미안해”하고, 단풍나무 아래를 “하염없이 맴도는” 행동을 반복했던 시간 동안 홀로 아파했던 시인은 “바닥을 쓸던 미화원이/빗자루를 들어 가지에 매달린 노란 은행잎을/왜 털어내는지 이젠 알 것 같다”고 한다. 

 

감정은 기억의 산물이다. 텃밭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혼신의 힘으로 살아내는 호박의 일생이 주는 다채로운 삶에 대한 기억이 해마다 고맙고, 즐겁고, 새로워진 감정으로 남는 반면에, 시인은 은행나무 앞에선 늙지도 않고 새록새록 “미안했던” 감정으로 재생되었던 기억을 이제 미화원이 빗자루로 은행잎 털어내듯 털어내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오는 기억은 육신의 나이가 늙어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이 좋겠지만, 시인의 기억처럼 미안하고 아픈 감정을 불러오는 기억은 은행잎 털어내듯 기억에서 걷어내는 것도 건강한 삶을 위해선 바람직하리라.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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